03 설계기술혁신 어디까지 갈 것인가? 2019.10

2023. 1. 5. 09:2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How far will design technology innovation go?

 

세기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현재 40대 중반 이후의 건축사들은 손도면에서 CAD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몸소 체험한 세대이다. 필자가 대학 입학 당시 출시된 WIN95는 DOS 시대의 막을 내린 매우 획기적인 운영체제였고, 1980년대 DOS 시절부터 사용돼 왔던 원시적인 CAD도 이때부터 현재 시스템의 기반을 구축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WIN98로 운영체제가 업그레이드되고, 우리나라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무렵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초고속 인터넷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고, 각종 소프트웨어가 쏟아져 나오면서 개인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PC 보급률은 엄청나게 올라가게 된다. 대학에서도 앞다투어 CAD 과목을 개설하고 강의를 시작했으며, 건축사사무소의 상징이 되었던 그나마 남아있던 제도판도 하나둘씩 없어지고, 그 자리를 온전히 PC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불과 20여 년 전,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손도면 시절에는 사무소 유지 인원이 최소 3~4명 이상 되어야 했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도면을 그리는 절대 시간이라는 게 있기에 설계 기간도 그만큼 길었으며, 그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1990년대 초 CAD가 보급되긴 했지만 기능의 제약 때문에 손도면과 병행하였고, 1998년 이후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CAD가 온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인지 IMF 때문인지 안타깝게도 사무소 구조조정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규모가 적은 아틀리에는 2~3명으로 줄고, 1인 사무소도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인원이 줄어든 만큼 여러 건축사가 한 공간을 쓰는 공유 사무소도 늘어났다. 현재 4~5명 규모의 건축사사무소는 제법 규모가 있는 셈이다. 기술혁신으로 인해 사무소의 구조와 풍경, 설계의 방식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90년대 말 CAD의 본격적 보급과 동시에 Photoshop, Illustrator와 같은 2D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등장해 결과물의 비주얼을 개선하였고, 한글, PowerPoint, Excel과 같은 문서 소프트웨어는 행정 시스템을 디지털화 시켰다. 또한 3D Max, Maya, Lightwave와 같은 3D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손으로 그리던 투시도는 점차 사라졌고, 그림자와 재질이 더해진 디지털 이미지로 실사와 같은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손으로 도면을 그렸다는 사실이 점차 잊혀질 무렵, 2007년 정부 주도로 세움터라는 건축행정시스템이 시범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이후로 전국에 빠르게 정착되었으며, 기존에 몇 번을 방문해야 하는 수고가 없어지고, 지역에 상관없이 디지털 파일로 도면을 검수하고 공인인증서가 인감도장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확장자 dwg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설계를 하는 데 있어 지역 제한이 사실상 사라졌다. 민간건물의 경우 서울에 있는 건축사가 제주도에 있는 현장을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사진이나 로드뷰를 통해 현장을 확인하고 인허가까지 진행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행정과 만나 이룬 성과이다. 변화가 오기까지 준비 기간은 길지만, 정작 필요한 변화의 시점이 오면 수용하는 속도는 순간이다.

2D에서 3D로...

설계의 기본 감성은 아날로그이다. 다만 이를 표현하는 툴(tool)이 진보하고 있다. 초기엔 스케치의 보조수단으로서 3D가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3D로 건물을 설계하고 이해하는 시대에 와 있다. 요즘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설계하면서 3D 툴을 사용하지 않고 설계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그렇다고 2D 자체가 사라지진 않으리라 본다. 3D는 소점에 의해 정보가 왜곡되지만, 2D는 똑바로 된 사각형, 원형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2D에서 3D로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는 2D가 사라지는 게 아닌 3D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단계에서는 건물의 전체적 형태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고, 실시단계에서는 시공과정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보는 것과 같은 효과로 2D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 평입단면도의 커넥션, 타 공정과의 간섭여부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존재한다. 이 선두주자에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있다. 앞으로의 설계 패러다임을 또 한 번 바꿀 굉장한 시스템이다. 객체기반 모델링이 가능한 Revit, ArchiCAD, Rhino3D 와 같은 소프트웨어로 3D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2D도면 추출이 가능하며, 국제표준파일인 ifc확장자로 내보낼 수 있다. 

허나 아직까진 진정한 BIM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여긴다. 대부분 3D 모델링하여 결과를 확인하고 2D도면을 추출하고 내역에 수량 데이터를 활용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하지만 BIM의 가치는 단순히 설계를 3D로 진행하는 그 이상이며, 건축생태계 자체를 3D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다. 자재정보 3차원 DB가 구축되고, 해당 모델을 사용할 경우 시방과 단가데이터가 업데이트되어, 모델링이 완료되면 각종 분석이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도면, 내역, 시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인허가단계 또한 3차원으로 검증하여 불필요한 검토시간을 줄이고, 시공과정에서도 시공자나 감리에게 BIM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어, 이 파일이 준공 후 건물관리자에게 전달되어 추후 유지보수 및 관리에 활용되게끔 제도화가 되어야 비로소 BIM 시스템이 완성된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지만, 행정에서 추진하면서 점차 인식이 바뀌고 있고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이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글. 이원규 Lee, Wonkyu 건축사사무소 이움건축<광주광역시건축사회>

 

이원규 건축사사무소

 

이움건축 전남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였으며, 동대학교에서 박사 수료 과정을 마쳤다. 정림건축 비정형디자인연구팀에서 설계와 연구를 병행하였으며, 광주로 내려와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 고 전남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디지털 건축 강의를 하고 있다. 광주·전남·전북 건축사회 신문 ‘건축문화사랑’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단독주택, 근생, 다세대, 업무시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최근 도시재생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ium-arc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