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5. 09:24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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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과정에서 건물의 구석구석까지 가능한 모든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디자인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많은 건축사가 그런 것처럼 나 역시 건축물의 뼈대와 공간구성은 물론, 조명기구 하나의 종류와 크기, 타일 한 장의 질감, 마루 한 장의 기준점 위치 등등 온갖 요소들이 조화롭게 모일 때 완성된 공간이 빚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주택 프로젝트에도 역시 마찬가지의 고민과 노력이 들어갔다. 설계 단계에서 계획되고 결정된 사항들이 그대로 잘 들어맞아서 문제없이 시공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하고, 비록 소규모 건축물 감리분리 대상에 해당하여 공식적인 감리 업무를 시행할 수는 없어도 시공 중 발생할 변수들과 실물을 보면서 생길 건축주의 변경 요구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갈 계획이었다.
많은 건축사가 겪는 일이겠지만, 단독주택의 경우 실내외 마감 공사 단계에 들어가면서 건축주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재료 등이 변경되는 일이 흔하게 발생한다. 전체적인 공간 컨셉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때로는 마음 아프게 그 이상의 범위가 되더라도, 실제 이 집의 삶을 누릴 주인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경 요구가 생길 때마다 우선은 각 재료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택되었는지, 왜 그런 방식으로 시공되는지, 그 결과가 공간의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일상생활에 반영될지를 우선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런데도 건축주의 의도가 그와 다르다면, 대체로 내 의견을 굽히고 받아들이는 방향을 취했다. 하지만 한두 번의 설득 과정마저 포기하지는 않았고,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건축사사무소 개업 후 처음 겪는 일이 발생했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해서 원래의 디자인을 어필하는 내게 돌아온 것은, “그 재료를 사용해서 따로 이득을 얻고 있으니 그러지 않느냐, 그렇지 않다면 그 디자인을 자꾸 고집하고, 내가 그 디자인을 꼭 따라야 할 이유가 없지 않냐”는 뉘앙스의 건축주 반응이었다. 건축주가 암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건축·건설업계의 관행에 대한 것이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리베이트’ 문화 말이다. 자신과 계약한 건축사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건축주의 선입관에 의해, 몇 달에 걸쳐 애써 만든 디자인이 설득력을 잃어버렸고, 그 디자인은 나의 의지가 아닌 자재회사와의 뒷거래에 의한 것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우리 사무소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얼마나 퍼져있을지도 모를, 어쩌면 건축주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오래되고 널리 퍼진 ‘리베이트’ 관행의 피해자가 되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관행의 문제점은 ‘리베이트’라는 단어의 원래 뜻과는 다르게 비용이 지불자에게 금액 일부가 되돌려지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 여기서는 건축사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관행을 만든 분들은 건축주에게는 좋은 품질의 결과물이 돌아간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상대방이 먼저 건넨 경우건, 건축사가 먼저 요구한 경우건 간에, 돈은 오고 갔고, 결국 건축주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재회사, 혹은 시공사를 통해서 건축사에게 ‘계약 외 비용’을 지출한 셈이 된다. 계약 ‘외’ 비용이니, 여기서는 ‘웃돈’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맞을 듯하다.
건축사의 업무 대가가 하는 일의 양이나 책임 대비 정상적인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은 동의한다. 나도 겪었고, 겪고 있는 일이다. 처음 개업했던 30대 때에는 가장 헤쳐나오기 힘든 장벽이기도 했다. 어쨌건 이런 상황 때문에 이 ‘웃돈’이 정당히 받아야 하는 비용이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동의한다. 단, 건축주에게 이 비용의 필요성에 대해 당당히 말하고 ‘웃돈’이라는 용어가 아닌 다른 용어를 사용해서 당당하게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공사를 통해서 돌아서 올 것이라면, 설계계약을 통해 받는 것이 당연히 훨씬 건전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결과적으로 ‘시공사 또는 자재 회사의 수주를 도운 것이기 때문에’, 혹은 ‘시공과정에서 문제해결 등 시공사에 도움이 되는 일 또한 많이 하게 되기 때문에’ 등등, 이 계약 외 비용에 대한 건축사들의 합리화 논리는 생각보다 많다.
그런 합리화 논리들에 대해서는 나 또한 수긍이 가는 부분들도 있다. 그런 관점들에서 동료 건축사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 다른 측면이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 의료인들의 윤리적 지침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인류, 스승, 환자,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윤리, 명예에 대한 다짐이다. 우리 건축사들 또한 건축사법에 규정된 윤리선언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따라 의사와 마찬가지로 사회 전반, 공공의 발전, 의뢰인, 동료 건축사와의 관계에 대한 의무와 윤리에 대해 개인과 집단의 명예를 걸고 선언한다.
이 건축사 윤리선언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보다 조금 더 강조된 곳이 있는데, 바로 동료와 사무소 경영에 대한 윤리 부분이다. ‘정직하게 업무를 수행하며 동료 건축사의 수임 업무와 지식 재산을 존중’하며, ‘정당하게 사무소를 운영’할 것이 건축사법 시행규칙을 통해 명시되어 있다. 웃돈 문화와 건축사 윤리선언이 부딪히는 지점들이 많고, 그중 상당수는 논의를 통한 제도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동료 건축사’와 관련된 부분은 다르다. 쉽거나 작은 문제가 아니다.
내가 웃돈을 받는다면, 이를 통해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았다면, 이를 거꾸로 보면 본 설계의 계약비용은 적당한 수준이 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건축사 업무의 가치와 보상에 대해 건축주와 논의할 기회를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은 것으로, 이는 곧 정당한 계약을 하려 노력하는 동료 건축사에 대한 피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현상이 위에 서술한 것처럼 전반적으로 퍼지게 되고, 건축주들도 인식하는 지경에 이르면, 이는 건축사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의 문제가 되고, 동료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 ‘신진 건축사’. 표현은 달라도 일반적으로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까지의 건축가, 혹은 건축사들을 부르는 말들이다. 개업 후 만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때로는 ‘젊은 건축가’라기보다는 ‘값싼 건축사’로 소비되기도 하며 40대 초반을 맞았다. 주변도 조금 돌아보고, 정당한 설계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나가야 할 시기에 맞이하게 된 상황이 신뢰와 명예가 실추된 건축사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무척이나 씁쓸하다.
건축사협회 의무가입 법제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건축계의 문제점들을 건축사 스스로 바로잡으려는 시도라고 알고 있다. 그중에 ‘동료 건축사에 대한 윤리’와 건축사의 명예를 지켜나가려는 노력 또한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들,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 않은가?
글. 신현보 Shin, Hyunbo BO.PUB. / 신현보건축사사무소<서울특별시건축사회>
신현보 BO.PUB. / 신현보건축사사무소
한국(KIRA)과 네덜란드(BA) 등록건축사이며, 고려대학교와 네 덜란드 TU Delft에서 수학하였다. 공간종합건축사무소와 기오 헌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2013년 디자인밴드요 앞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설립하여 5년여 간 활동한 후, BO.PUB. / 신현보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건축물의 기본적인 소명과 공 공성에 대해 탐구해왔다. 현재 한남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SOBO 건축사사무소와 함께 건축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ailoflu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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