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세션맨이 아닌 프로듀서 2019.10

2023. 1. 5. 09:19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al perspective Producer, not a sessionman

대중음악(POP)을 만드는 국내외 대형 기획사에서 가수들의 곡을 만드는 방식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음악성 있는 작곡가 한 사람의 영감으로 메인 멜로디가 시작되고, 각 악기 세션(session)들이 더해져 음악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 때 작곡가 개인의 음악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 곡을 만드는데 여러 명의 프로듀서가 같이 참여한다. 멜로디 라인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A, 귀에 맴도는 Hook을 전담하는 B, 베이스 라인을 만들며 비트메이킹 하는 C, 여러 악기 소스를 첨가하여 소리를 채워주는 D 등 여러 명의 프로듀서들이 각 파트로 세분하게 나뉘어 음악을 만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사운드 엔지니어 역할에 머물렀던 이들 또한 좀 더 적극적으로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때 완성된 곡의 작곡가는 과연 누구일까? 서류상 누군가 대표로 표기 될 수 있지만, 단순히 한 명의 창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곡 작업에 참가한 모두가 로듀서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였다. 기획된 대중음악에서 이제 작곡가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더 이상 작곡가 한명이 아닌 여러 명의 프로듀서가 팀을 이뤄 음악을 만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아티스트 포지션을 갖는 원맨 밴드와 원맨 프로듀서는 당연히 예외이다.
이러한 음악씬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최근 건축씬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작은 규모의 주택이나 근생건물 등과 달리 대규모 프로젝트들, 각 나라별 이슈가 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들에서 완공된 건축물은 이제 더 이상의 스타 건축사 한 명의 작품이 아니다. 특정 누군가의 초기 아이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명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섞이고 통합된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발전해 나가면서 건축물이라는 최종적인 결과물로 구현된다. 여기에는 비단 대표 건축사뿐 아니라 다수의 파트너 혹은 직원들의 노력이 들어간다. 대지분석과 사례조사를 통해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는 A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디자인 감각을 더해 초기 계획안을 만드는 B팀, 타분야와 협업을 통한 실무적인 사항, 발주처의 요구사항, 기타 특기사항 등을 반영하여 좀 더 다듬어진 계획안으로 발전시키는 C팀, 인허가 과정에서의 변경사항, 각종 심의를 통해 전달된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하여 최종 계획안을 만드는 D팀, 그리고 건축물이 지어지는 동안 현장여건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계획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E팀 등 매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하는 팀이 구성된다. 그들은 단순히 대표 건축사를 서포트 하는 세션맨이 아니다. 나눠진 각 파트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감각을 가지고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더 이상 건축에서 지리적 한계로 인한 경계가 없다. 이미 많은 해외 건축사들의 작품들을 한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기업 발주처의 요구로 반드시 외국 건축사사무소(이상 해외사로 표기)와 공동응모를 해야만 하는 지명설계공모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해외사가 계획설계한 국내 프로젝트의 경우 로컬 건축사사무소(이상 국내사로 표기)의 역할은 어떠할까? 단지 인허가 업무와 단순 실시설계 작업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발주처의 예산에 맞게 기본 설계개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디테일을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현지 상황에 맞는 디자인적인 제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재료와 디테일의 경우 현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사가 전문가적 시각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해외사에 의견을 전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해외사와 협업하는 국내사의 경우 수동적으로 계획안에 대한 실무적 절차만 수행하는 역할이 아닌, 공사 편의성과 예산을 위한 단순 변경만 해주는 것이 아닌, 해외사가 생각하지 못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프로듀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더 이상 한명 혹은 한 회사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는 시대다.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더욱 그렇다. 많은 파트너들과의 협업은 필수다. ‘누구의 작품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흐릿해질 것이다. 다양한 파트에 참여한 많은 프로듀서들이 완성된 건물을 보고 ‘저 건축물은 나의 작품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현재 대다수의 건축사들은 소위 ‘원맨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해외로 시장이 확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다른 나라 원맨 프로듀서 또는 대형 건축사사무소와 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협업은 반드시 각 프로듀서들의 주체적인 역할이 전제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프로젝트의 디자인 저작권을 특정 건축사 개인만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을까? 이제는 함께 작업한 파트너와 공유하게 될 것이다. 최근 많이 진행되는 해외사와 국내사의 협업 역시 마찬가지라 본다. 국내사가 해외사의 실무적인 일만 대행해주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당당한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면 디자인 저작권 공유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려면 반드시 국내사는 해외사의 세션맨이 아닌 공동 프로듀서임을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글. 이중희 Lee, Junghee 투엠투 건축사사무소, 본지 편집위원<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이중희 투엠투 건축사사무소

이중희는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2014년 투엠투 건축사사무소(2m2 architects)를 설립하여 준공 후 건축사 와 건축주, 시공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으 로 건축을 하고 있다. 건축뿐 아니라 street culture에 관심 이 커 DJ, 미디어 아티스트, 스트릿브랜드 들과 협업을 통한 전시 및 파티를 기획하며 다른 분야와의 접합을 실험 중이 다. 최근 단편영화 <젊은 건축가의 슬픔>의 감독을 맡아 다 수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됐다. 2middl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