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자, 다시 남자 2019.11

2023. 1. 6. 09:03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A Woman Again, A Man Again

 

“나는 몇 년 전부터 와이프가 무서워….”
거의 30년 만에 만난 선배가 말했다. 선배는 몇 달 전에 23년 동안 운영하던 사업을 접고 은퇴한 상태였다.
“왜요?”
“자꾸 지적질하고, 큰소리로 야단치고 그래서.”
“하하 설마 무섭기까지야 할까?”
“정말이야, 그래서 몇 달 전에는 진지하게 얘기했어. ‘난 네가 무섭다’고.”
“그랬더니 뭐래요?”
“깜짝 놀라더라고. 내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이야기 하고 나서는 야단 안 맞아요?”
“며칠은 좀 덜하더니 다시 마찬가지야.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자유롭게 내가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겠다고 선언했어.”
“자유롭게 사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요?”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갔어, 미리 말 안 하고.”
“호호 사춘기 애도 아니고 뭔 반항을…. 또?”
“친구들이랑 2박 3일 골프 여행 갔어. 그건 말 하고.”
“큭큭 그랬더니 좋아요?”
“그런데도 자꾸 눈치가 보여.”
다른 선배의 부친상을 조문하는 자리였다. 
“하고 싶은 게 뭔데?”
듣고 있던 어떤 선배가 물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여자’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헉, 그런 여자 만나면 무서운 부인한테는 뭐라고 할 건데?”
“글쎄… 항명을 해야지!”
그런 여자는 없다는 둥, 항명은 불가능하다는 둥 좌중에 야유와 실소가 이어지다가, 한 사람과 너무 오래 사는 건 고문이다, 25년만 살고 강제로 그만 살게 하는 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장난스러운 희망사항으로 얘기가 끝났다. 
그날의 망자는 아흔 두 살이었다. 몇 달 전, 60년 넘게 해로한 부인을 먼저 보내고 뒤를 따르듯 서둘러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한다. 남남끼리 만나 60여 년을 함께 살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겨우 몇 달 간격으로 생을 마감한 부부의 인연 앞에서, 겨우 30년을 살고 나서 부인이 무섭다는 선배의 불평이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부부 사이에 뜨겁던 애정은 서서히 식고, 신뢰와 배려, 정(情)과 같은 감정이 둘 사이를 채우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모양이다. 

연애감정이 사라진 부부 사이를 코믹하게 보여주는 광고가 있다. 최근에 두 편이 시리즈로 제작되어 전파를 탄 참다한 홍삼 광고이다. ‘우정호’, ‘도원결의’라는 광고의 제목부터 벌써 의미심장하다. ‘우정호’ 편에는 비바람 몰아치는 항구에 정박한 작은 배에서 비설거지를 하는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남편과 아내는 생명줄과도 같은 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의 모습은 손발이 착착 맞는 노련한 뱃사람을 연상시킨다. 어느 정도 정리를 끝내고 뱃머리에 걸터앉은 두 사람의 하반신 아래로 카메라가 이동하면 ‘우정호’라는 배의 이름이 클로즈업되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피.  

Na.)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면서 
             한 배를 타게 된다. 
             프렌드십(Friendship)!
             우정이라는 배! 
고현정) 우정으로 살아가는 모든 부부에게 바칩니다.
             다시, 남자. 
             다시, 여자. 
             참다한 홍삼.

 

지씨바이오_참다한 홍삼_’우정호’ 편_2019




푸핫-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며칠 전 문상 가서 나눈 얘기들이 비단 그 자리에 있던 몇 사람만의 현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동시에 방영된 ‘도원결의’ 편에도 애정 대신 우정으로 살아가는 부부의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사랑을 속삭이기에 딱 좋아 보이는 분홍 복숭아꽃잎 날리는 아름다운 숲에서 두 사람은 삼국지의 관우, 장비, 유비처럼 우정을 다짐한다. 

Na.)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아내와 남편은 굳게 맹세했다. 
             브라더스(Brothers)! 
             형제가 되기로! 
고현정) 의리로 살아가는 모든 부부에게 바칩니다. . 
             다시, 여자. 
             다시, 남자. 
             참다한 홍삼.

지씨바이오_참다한 홍삼_’도원결의’ 편_2019



참다한 홍삼은 활력을 잃은 남성과 갱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다. 광고 제작을 맡은 대행사는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주요 소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력이나 갱년기라는 화두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기 위해서 중년 부부를 등장시켰다. 부부로 오래 살다 보면 상대방이 성적 매력을 가진 여자나 남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느껴지기 쉬운데, 서로를 다시 이성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한 것이다. 메인 모델인 고현정이 B급 광고가 될 것을 우려해서 출연 여부를 고민했다는 후문도 있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국내 최대 광고포털인 TV CF가 선정한 ‘TV CF HOT 100 크리에이티브’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공개한지 보름 만에 조회수 160만을 찍으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홍삼을 먹는다고 친구처럼 느껴지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다시 뜨거운 연애감정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부쩍 기운 없어하는 남편이나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는 아내를 위해서 홍삼이라도 사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는 충분한 광고가 아닐까 한다. 
시선을 돌려 현대자동차의 ‘베뉴’ 광고를 보자. 베뉴는 혼라이프 SUV를 슬로건으로 싱글족을 겨냥한 8편의 짧은 영상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광고의 주인공은 참다한 홍삼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들이다. 결혼해서 몇 십 년 살기는커녕,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는 청춘남녀다. 영상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것 같은 절제된 서너 컷으로 구성되어 있고, 카피는 타깃의 속마음을 짧은 자막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토스터 편)          하루쯤은 / 빵 한조각을 먹어도 / 브런치카페처럼
(혼낚 편)             어떤 물고기를 낚을까 / 옆엔 어떤 사람이 앉을까 / 이 맛에 혼낚
(고양이 편)          집사가 나갔다 / 이제 내 혼라이프를 즐겨볼까
(빗소리 편)          침묵을 즐기는 것도 / 혼자만의 특권이지
(마트 가는 길 편) 술 약속 대신 / 혼자만을 위한 파티 / 금요일 밤 마트 가는 길
(퀄리티 편)          1+1보다 / 퀄리티 좋은 하나  
(옷장 편)             드디어 독립 / 언니와의 옷 전쟁 끝
(혼밥 편)             나 요즘 눈치 안 보고 / 침대에서 밥 먹어 / 부럽지?



참다한 홍삼 광고를 보며 공감하며 웃었다면, 베뉴의 CM을 볼 때는 한 번쯤 저렇게 살고 싶다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오래 같이 산 부부가 헤쳐나가야 하는 골치 아픈 현실 따위와는 아득히 멀리 있는, 젊은이들의 혼자만의 일상 즉, 혼라이프가 부러웠다. 아침 저녁의 시간이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고, 마음을 온전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부러웠다. 이제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아득한 옛날에 지나가버린 내게도 있었던 그 어느 한 때가…, 그리웠다. 

 

 

 

https://www.youtube.com/watch?v=zdo7bYXnVJ4&t=1s
(현대자동차_베뉴_광고모음_2019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nCZwm4yeYw
(지씨바이오_참다한 홍삼_2편 합본_2019_ 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