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잡자, 쥐의 해를 꽉 잡자! 2020.1

2023. 1. 9. 09:03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Catch a Rat, 
Grip the Year of the Rat!

 

2020년 경자년이 밝았다. 2020이라는 숫자에서 둥글고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갓 스물 된 처녀 총각 두 명이 동그란 벽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앉아있는 모양 같다, 예쁘다. 경자년은 12간지로 흰색 쥐의 해라고 한다. 쥐띠는 부지런하고, 재물복과 먹을복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쥐는 영리하고 재빨라 쉽게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때 즐겨 보던 만화영화 ‘톰과 제리’ 때문에 생긴 고정관념인지도 모르겠다. 덩치가 훨씬 더 크고 힘도 센데 번번히 골탕 먹기만 하는 고양이 톰이 불쌍할 정도로 제리는 얄밉고 약삭빠르게 굴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쥐는 아마도 디즈니의 마스코트 미키마우스일 것이다. 미키마우스는 1928년 흑백 캐릭터로 태어난 후 1935년에 컬러화 되면서 빨간 옷과 노란 구두를 가지게 되었는데, 매년 세계에서 6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부자 쥐이다. 
현실 속에서 쥐는 곡식을 축내고 전염병을 퍼트리는 나쁜 동물이다. 무조건 잡아 없애야 하는 해로운 동물이다. 오죽하면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쥐잡기 운동’이 있었다. 쥐잡기 운동은 1960년대 시나 군단위로 이루어지다가 1970년 1월 26일 6시 ‘전국 쥐잡기 운동’을 실시 하면서부터 전 국민 운동으로 커졌다. 쥐섬멸작전은 이날 오후 6시 사이렌을 신호로 전국에서 동시에 일제히 시행됐다. 당시 농림부는 이 날 행사를 위해 전국 540만 가구에 20g씩의 쥐약(인화아연)을 공짜로 주었다. 여기 들인 예산만 1억 4천만원이었다고 한다. 농림부가 추산한 우리나라의 쥐는 9천만 마리였는데, 인구 1인당 세 마리이고 한 집 평균 18마리 꼴인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쥐가 먹는 식량은 한해 약 240만 섬, 240억원어치로 당시 곡물 총생산량의 8%에 이르렀다. 이것은 당시 전주 시민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사람이 먹을 양곡도 부족한 현실에서 쥐가 박멸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쥐를 많이 잡은 사람에게 포상을 내리기도 했다.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 학교나 관공서로 가져가면 쥐꼬리 하나 당 연필 한 자루씩 바꾸어 주거나 복금 당첨권을 주기도 했다. 쥐약을 뿌린 지 20일 만인 2월 19일 농림부는 모두 41,541,149마리의 쥐를 소탕했다고 밝혔다. 전국의 학교, 관공서 등에서 수집한 쥐꼬리를 세어본 숫자였다.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2차 대회를 같은 해 5월 15일 실시했다. 이번에는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공공건물, 정부창고, 병영 등에까지 확대하였다. 2차 쥐잡기에서는 32,000,000마리가 잡힌 것으로 추계됐다. 4천만 마리가 넘는 쥐를 잡았고, 그 수를 일일이 세어서 포상을 했다니 엽기적으로 들리지만 겨우 50년 전에 진짜 있었던 일이다. ‘파리잡기 경진회’가 있어서 1972년 한 해 부산에서만 39억여 마리를 잡았다는 뉴스를 보면 내가 살고 있던 시절이 아니라 어느 먼 중세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1971년 3월 25일에는 3차 전국 쥐잡기 운동을 실시했다. 3차에는 무상으로 쥐약을 배급했을 뿐만 아니라,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고 차량과 통행이 많은 곳에는 표어를 붙이기도 하였다.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했던지, 일선 구청에 마지막 한 자릿수까지 딱 떨어지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할당하고 성과를 채근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산시는 중구 25만 6626마리, 서구 71만 3525마리, 부산진구 103만 4364마리, 동래구 69만 9255마리 식으로 목표량을 할당했다. 1972년은 쥐띠 해였는데, 이 해도 쥐잡기 운동은 열기를 더해갔다. 학교는 쥐잡기 포스터 공모대회와 쥐 박멸 웅변대회를 열었고 표어를 공모했다. 그해 12월엔 한국 쥐잡기운동본부가 ‘쥐 없는 명랑한 사회를 건설하자’를 주제로 전국 남녀 웅변대회를 서울 YMCA 강당에서 열기도 하였다. 1972년 쥐잡기 운동에서는 47,286,027마리 쥐를 잡아 목표대비 91.4%의 실적을 올렸으며, 1,198,569석의 양곡 손실을 방지했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경상북도_쥐잡기 운동_옥외광고_1972

 

경상남도_쥐잡기 운동_신문광고_1974



쥐잡기가 온 나라의 관심사였으니 쥐약은 아마도 그 시절의 히트상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래 ‘약’이란 아픈 것을 낫게 하는 것에 붙이는 이름인데, 생명을 죽이는 것에 ‘약’을 붙였으니 이 또한 역설적이다. 신문광고에 난 쥐약의 효과를 읽어 보면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웃음이 나온다. 전일약품의 쥐파린은 “쥐가 보기만 하면 먹는다. 죽는 놈은 꼭 밝은 곳을 찾아 나와 죽는다. 먹어서 고통이 없으므로 다른 쥐에게 동요를 주지 않아 계속 먹어 죽는다”를 특징으로 적었다. 중외제약의 후라킬은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상표로 내세웠다. 충국제약의 하리돌은 “쥐에게는 천하의 진미과자, 먹으면 즉각 황천, 원료는 미제 깡통쥐약”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직설적인 표현이 괴기스러우면서도 재미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니 어린 시절,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마당에서 발견하고 기겁을 했던 풍경이 떠오른다. 저 때의 쥐약 광고가 터무니없는 과장만은 아니었나 보다. 요즘은 집집마다 쥐약을 놓는 대신 세스코 같은 해충방제업체를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쥐약광고는 어디서든 보기 힘들게 되었다.  

전일약품_쥐파린_신문광고_1962
충국제약 하리돌 신문광고 1959
중외제약_후라킬_신문광고_1969

 


경자년 새해를 맞아 쥐가 나오는 광고를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영국의 존 놀란(John Nolan)이라는 감독이 만든 놀란체다치즈 광고이다. 광고에는 진짜 쥐가 나온다. 조심스럽게 쥐구멍을 나온 쥐 한마리가 쥐덫에 다가간다. 그리고 쥐덫 위에 놓인 치즈를 발견하고 그것을 먹다가 그만 쥐덫에 깔리고 만다. 쥐의 운명은 여기서 끝나는가 싶다. BGM마저 카펜터즈의 경쾌한 Top of the World에서 비장한 느낌의 The End라는 곡으로 바뀐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덫에 깔려 있던 쥐가 온몸의 힘을 모아 가슴에 얹힌 쥐덫의 쇠를 번쩍 드는 것이다. 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기를 들듯이 운동을 한다. 배경음악이 영화 로키에 삽입되었던 Survivor의 Eye of the Tiger로 다시 변한다. 생존자라는 그룹 이름이 영상 안의 쥐의 처지와 기막히게 어울린다. 그리고 멀쩡한 모습으로 치즈를 먹고 있는 쥐의 모습을 잡은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한 줄의 자막.


엄청나게 강한 놀란 체다 치즈(Nolan’s cheddar cheese seriously strong)

 

놀란 체다치즈_홍보영상_2009_스토리보드


새해다. 언제부터인지 새해가 되어도 어떤 일이 새로 일어나길 바라기보다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저 ‘지난해처럼만’이 오랫동안 지속된 내 소심한 새해 소망이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반복해서 소원하다가 하고 싶던 일을 이루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말의 힘을 믿게 되었다. 
경자년 흰 쥐띠의 해, 주문을 걸 듯 ‘잡다’라는 단어를 새 다이어리의 첫 장에 적는다. 잡다에는 ‘손으로 움키고 놓지 않는다’는 의미와 ‘짐승을 죽이다’의 뜻이 모두 들어있다.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말리다’라는 애틋한 뜻도 있다. 새해에 나는 무엇을 잡고 싶은지 자문한다. 쥐를 잡듯이 없애버리고 싶은 것도 있고, 덫에 걸린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움켜잡고 싶은 것도 있다. 잡고 싶은 순간도 있고, 잡고 싶은 일도 있다. 물론 사람도 있다. 잠시 번잡한 일상을 미뤄 두고 새해에 잡고 싶은 모든 것들의 목록을 만든다. 그 목록에는 이제껏 한 번도 욕심내 본 적 없던 것이 ‘잡고 싶다’고 적힌다. 절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잡아 없애자’라고 쓰여진다. 내가 내 손을 굳게 잡고 이루어갈 이 목록은 아마 이 해가 다 가도록 길고 길게 이어질 것이다. 

 

 

 

 

 

 

http://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grapMouse.do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쥐잡기 운동 기록)

https://www.youtube.com/watch?v=M79c5RdLyfc

(놀란 체다치즈_홍보영상_2009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