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도 족보가 있다 2020.2

2023. 1. 10. 09:03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Waste also has genealogy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고 3 때도 밤 12시 넘어서 공부한다고 불 켜놓고 있으면 불 끄라고 호통을 치셨어.”
“정말? 왜?”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말도 안 돼. 대학 입시는 어쩌라고?”
“혼자만 공부하는 것처럼 유난 떨지 말라는 거지. 게다가 우리 누나, 형들이 다섯 명 다 대학 갔잖아. 
  나 하나 못 가도 그만이었을 거야. 당장 전기요금 고지서가 더 큰 문제지.”
“하긴 우리 엄마도 맨날 전기 코드 뽑아 놓으라고 성화였어. 지금도 그러시고.”
여섯 남매 중의 막내인 친구가 소환한 30여 년 전의 기억에 다른 친구들이 맞장구를 쳤다.
“어디 전기뿐이야? 우리 엄마는 전화 통화 조금만 길어지면 끊으라고 얼마나 야단을 했는데.”
“맞아 맞아! 걸려온 전화 받는데도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후후후.” 
“우리 어릴 때는 대야에 물 받아서 세수하고 그 물에 발 씻고 그랬는데 말야.”
“설거지도 물 받아서 했어. 그래서 가사 시간에 설거지하는 순서를 배웠어. 시험에까지 나왔고.”
“큭큭 설거지 순서?”
“웃지 마. 그 땐 심각하게 외웠다니까. 숟가락 젓가락을 제일 먼저 씻는 거야. 입에 들어가는 거라서.”
초등학교 동창들과의 수다를 뒤로 하고 엄마 집에 들렀다. 거실 바닥이 차다. 아니나 다를까, 보일러가 꺼져있다. 
보일러를 켜고 TV를 리모컨을 눌렀다. 텔레비전이 꼼짝도 안 한다. 전원 코드가 뽑혀 있다. 
“엄마, 왜 맨날 보일러는 안 켜고, 코드는 뽑아 두는데? 그러다 감기 걸리면 병원비가 더 비싸요.”
“괜찮아, 안에 있으면 안 추워. 내가 아낄 게 뭐가 있냐, 그런 것 밖에 없어.”
소용없는 잔소리와 대답이 반복된다. 그런데 내 집에 오면 나의 역할이 엄마와 반대가 된다. 보일러 온도를 24도로 올려놓고 반 팔 셔츠,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외출할 때도 컴퓨터와 두 대의 모니터를 켜놓고 나가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한다. 추우면 옷을 입으라고, 나갈 때는 보일러와 컴퓨터도 좀 끄고 나가라고. 컴퓨터를 한 달 내내 켜 두어도 더 나오는 전기요금은 몇 천원이 안 된다는 이상한 계산을 앞세우며 아이는 내 말을 무시한다. 물을 받아서 이 닦으라는 얘기는 아이 입장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에 불과하다. 
내가 어릴 때는 환경보호나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요금을 아끼기 위해서 물자를 절약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아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우리가 흥청망청 쓰는 물과 전기와 도시가스, 겨우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종이컵, 다양한 1회용품들이 지구에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계속 못 들은 척해도 될까? 
물고기와 갈매기, 거북이를 소재로 만들어진 그린피스 캐나다의 인쇄광고를 보면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얼음 잔 속의 플라스틱 빨대가 목에 박힌 동물들은 한 줄의 카피로 인간에게 호소한다. 

우리의 바다에서 생명을 빼앗지 마십시오.

 



위의 그린피스 캐나다 광고처럼 환경 파괴의 현실을 혐오스러운 시각물을 통해 알리는 광고는 보기에 불편하다. 암에 걸린 폐의 사진을 보여주는 금연광고처럼 끔찍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알지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혐오스럽지 않게 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발하는 광고는 없을까? 찾아보니 2015년 환경부가 만든 재활용 공익광고가 눈에 띈다. ‘쓰레기도 족보가 있다(I am your father)’라는 제목의 시리즈 영상 4편인데, 유머 광고의 진수를 보여주며 ‘2015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공익광고로는 최초로 영상광고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고는 다양한 쓰레기들이 곤경에 처한 물건을 구조하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먼저 우유팩 편을 보자. 자동 청소기가 온집안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한다. 바닥에 두루말이 휴지가 풀린 채 떨어져 있다. 그대로 두면 청소기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 때 우유팩이 몸을 날려 청소기와 두루마리 휴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막아 서서 위기에 빠진 휴지를 구한다. 빨대 편의 빨대는 풀장에 빠져 익사 위기에 처한 장난감 오리를 구조하고, 비닐봉투 편의 비닐은 옷이 흘러내려 벌거벗은 채 민망하게 서 있는 마네킹의 중요한 부위를 가려준다. 또 캔 편에서 알루미늄 캔은 갑자기 나타난 강아지가 자동차에 소변을 보는 것을 막으려고 기꺼이 제 몸에 오줌을 받는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도움을 받은 두루말이 휴지, 오리, 마네킹, 자동차는 제 몸을 희생하며 도와준 쓰레기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쓰레기들은 한결같이 ‘I am your father.’(내가 네 아버지다)라고 대답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악의 화신 다스베이더가 자신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한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Who are you?
I am your father.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우유팩 편_2015_스토리보드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빨대 편_2015_스토리보드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비닐봉투 편_2015_스토리보드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캔 편_2015_스토리보드


쓰레기를 재활용하면 다양한 물건들이 탄생한다. 그 당연한 사실에서 쓰레기는 재활용품의 아버지라는 발상을 한 것이 재미있다. 자신의 몸에서 탄생한 재활용품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지켜주려는 쓰레기의 눈물겨운 부성애라니! 거기에 스타워즈의 대사까지 나오니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을 재활용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광고를 보기 전에는 나도 비닐을 재활용하면 마네킹의 재료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 했다. 그러니 1회용품 사용을 적극적으로 줄이는 것은 물론 철저하게 재활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새해 들어 태국, 방글라데시, 중국, 유럽연합 등 여러 나라에서 비닐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사용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못 할 것도 없다. 실제로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1회용 비닐봉투 사용량이 84% 감소했다는 집계도 있다. 2018년 1월부터 환경부의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1회용 비닐봉지 무상 제공이 전면 금지되자 1월부터 5월까지의 비닐 사용량이 파리바게뜨에서만 전년 대비 7587만4496장(83.7%)이나 감소했다고 한다. 
쓰레기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쓰레기의 부모는 우리 인간들이다. 내가 낳은 쓰레기 자식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아 일일이 족보에 다 적을 수도 없다. 쓰레기는 아주 없앨 수 없으면 최소한 줄이고 재활용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부끄러운 나의 자식이고, 쓰레기와 내가 만든 족보는 후세에게 물려줘서는 안 되는 없어져야 할 족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LTbvTLmnCU

환경부_재활용 공익광고_2015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