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5. 09:06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This is a body to endure rather than boast"
“겨드랑이 아래 근육을 아래로 더 내리세요.”
“날개죽지끼리 만나는 느낌으로 더 조여 보세요. 조금만 더, 더!”
“가운데 등 근육을 당기세요, 자 이번에는 쇄골을 쭉 내밀고 자랑!”
“숨을 크게 들이쉬세요, 근데 배가 볼록하고 나오면 안 돼요.”
“갈비뼈를 닫고 골반은 중립, 치골은 바닥에 붙이세요.”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코치는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근육과 뼈를 이리저리 움직이라고 명령한다. 코치의 지시에 따라 부들부들 떨며 동작을 바꾸는데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내가 내 몸에 대해 참 모르고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나는 내가 당연히 바른 자세, 바른 균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목은 거북이처럼 일자로 뻣뻣하고 어깨는 앞으로 굽어 있다. 아랫배에는 허벅지를 들어올릴 힘이 부족하고, 왼쪽 골반은 살짝 삐뚤어져 있다. 필라테스를 하기 전에는 몰랐던, 의식하지 않았던 내 몸의 기형들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수 십년을 몸을 쓰는 일은 게을리 하고 책상 앞에만 주로 앉아있었던 결과가 몸에 나타난 것일 게다. 안타깝게도 나는 학교에 다닐 때 몸을 움직이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문제를 푸는 체육 시험이 있었으니 체육은 즐거운 운동이 아니라 골치아픈 시험과목일 뿐이었다.
이 몸을 다시 바람직한 상태로 만들려면 힘들고 귀찮은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 운동을 하지 않고 바르고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없으니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광고마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한화그룹은 ‘내일은 저절로 오지 않’기에 태양광 사업, 항공 우주 사업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내일’을 만들기 위해 ‘오늘’ 노력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Na.)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공기
당연한 흙
당연한 별
당연한 꿈
당연한 내일이란 없다
오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일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내일의 에너지를
내일의 꿈을
내일의 기술을
내일의 가능성을 이어가야 한다.
오늘이 오늘에서 멈추지 않도록!
자막) 글로벌 표준이 되는 기술력으로 친환경 에너지 시대를 이끌어가는
태양광 에너지 솔루션
과학강국의 내일을 키우는 고교생 과학영재 발굴 프로젝트
한화 사이언스 챌린지
자연에서 썩는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를 연구하는
친환경 혁신 기술 연구소
독자적 항공엔진기술로 한국형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는
항공 우주 사업
Na.) 지속가능한 내일, 한화
한화_그룹 광고_지속가능경영철학 편 _TVCM_2019_카피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더욱 더, 운동은 내게 일보다 한참이나 뒷순위가 되었다. 재미도 없는데 시험을 볼 일도 없으니 억지로라도 운동할 이유가 없었다. 또 몸과 머리를 쉬는 완전한 휴식이란 영화 속에나 나오는 얘기였다. 집마저도 휴식의 공간일 때보다 살림과 육아를 해야하는 또다른 일터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의 몸은 만성피로를 얻었고, 근육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시나브로 지방이 쌓였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다. 이 땅의 많은 아빠와 엄마들이 가족의 내일을 위해 스스로의 오늘을 희생했고, 그 결과 볼품없는 몸매를 가지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의 몸이 S라인이나 식스팩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들의 아들과 딸은 자랐고,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늘었다.
2013년, 대웅제약은 차두리가 “간 때문이야!”를 부르던 코믹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심각한 톤의 우루사 광고를 만들어 내보냈다. 영상은 1분 가까운 시간 동안 살은 안 쪘는데 배는 불룩 나온, 반바지만 입은 중년 남자의 모습을 흑백화면으로 보여준다. 꼼짝 안 하고 서있는 남자의 뒤로는 검은 재가 날리고, 한 마디 내레이션도 없이 붓으로 쓴 자막이 메시지를 전한다.
자막) 이것은 몸
이것은 뽐내기보다 견디기 위한 몸
사랑 받기보다 사랑하기 위한 몸
야근과 잔업에 굴하지 않으며
음주에도 휘청이지 않는 몸
이것은 날아오는 화살을 묵묵히 견디며
내리는 비를 대신 맞는 몸
이것은 쉽게 아프다 하지 않으며
아파서도 안 되는 몸
이것은 시련에 익숙하며
지켜야 할 게 많은 몸
이것은
가족을 묵묵히 짊어지고
세상과 홀로 싸워온
그래서
누구도 감히 얕볼 수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전사의 몸
평생 온몸으로 가족을 부양해온
대한민국 아버지를 응원합니다.
이 캠페인은 우루사가 함께합니다.
대웅제약_우루사_전사의 몸 편_극장/인터넷 광고_2013_카피
광고는 볼품없는 아버지의 몸을 전사의 몸이라 말한다. 세상에 온몸으로 맞서 가족을 지켜내는 시련에 익숙한, 지킬 것이 많은 몸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이두박근도 튼실한 허벅지도 없는 초라한 몸이지만, 가장이라는 엄숙한 의무를 묵묵히 견뎌온 위대한 몸이다. 누구도 함부로 얕볼 수 없는, 못생겼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몸이다.
나는 마음에 안 드는 몸이지만 내 몸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거두기로 했다. 피부는 탄력을 잃어 점심 때까지 베갯자국이 선명하고, 툭하면 손목이며 발목이 아프고, 관절은 삐그덕거리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예뻐하기로 마음먹었다. 꼭 우루사의 광고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는 동안 몸에 나쁜 일들을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평생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어준 낡고 지친 내 몸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뿐인 내 몸을 살뜰히 보살피고 알뜰히 친해지고 싶다. 몸에 기울이는 관심을 하찮게 여기는 편견일랑 바람에 날려 버리자. 이제 몸이 하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나이가 되었다. 문정희 시인의 유쾌한 시 한 편을 다시 천천히 읽는다.
다시 알몸에게 _ 문정희
아침에 샤워를 하며
알몸에게 말한다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마라
내가 시인이라 해도
너까지 시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제 나는 하루에 세 살을 더 먹었다
문득 그랬다
이제 백 년 묵은 여우가 되었다
그러니 알몸이여, 너는 하루에 세 살씩 젊어져라
너처럼 자주 나를 배반한 것은 없었지만
네 멋대로 뚱뚱해지고
네 멋대로 주름이 생겼지만
나의 시가 침묵과 경쟁을 하는 사이
네 멋대로 사내를 만났지만
그래도 그냥 너는 알몸으로 살아라
책상보다 침대에서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싱싱하게
나의 방앗간, 나의 예배당이여
https://www.youtube.com/watch?v=2-h-GlLlh2w
한화_그룹 광고_지속가능경영철학 편 _TVCM_2019_유투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waTsSdGIhpI
대웅제약_우루사_전사의 몸 편_극장/인터넷 광고_2013_ 유투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
'아티클 | Article > 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가 필요하다 2019.12 (0) | 2023.01.07 |
---|---|
다시 여자, 다시 남자 2019.11 (0) | 2023.01.06 |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2019.9 (0) | 2023.01.04 |
“나의 절반은 두려움에 떨고,나의 절반은 용기로 가득하다” (0) | 2022.12.24 |
“결국…인생이란 뭘까?” 2019.7 (0) | 2022.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