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승효상 2019.11

2023. 1. 6. 09:18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Architect Seung H-Sang

 

.한국의 현대 건축을 어느 시점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이는 학계나 건축계에서 모두 명확히 정리된 바가 없다. 일본 식민지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조금 무리인 듯하다. 왜냐하면 주체적으로 산업화 시대의 건축을 고민하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식민 제국의 필요에 따라 대응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일부 수입된 서양 발명품을 담은 덕수궁 근정전이나 전신전화국인 우정국 등의 건축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의 건축이 아니었다. 더구나 건축을 다루는 건축사라는 직업은 일본 식민 시대에 조선인에게 허용되지 않은 직업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방 이후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현대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이 대략 1870년대 본격적인 서구 문화를 흡수하면서 전환기의 건축을 받아들였다고 하면 우리는 80여 년 정도 뒤처진 상태였다. 서구 역시 고전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일본이나 서구나 유사한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1930년대 이미 르코르뷔지에 스튜디오의 수석으로 사카쿠라 준조 같은 인물이 있었고, 자생적 모더니스트인 무라노 도고도 있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건축에 대한 이론적, 체계적 깊이가 부족한 상태로 해방 이후 급격한 근대화와 현대화를 동시에 진행했다. 이런 속도는 건축에 대한 깊이와 논쟁의 바탕보다는 건축을 산업과 생산으로 바라보게 했고, 건설과 건축을 구분하지 않고 성장하게 했다.
김중업과 김수근을 비롯한 김희춘, 이희태, 나상진 등이 있었지만 건설 중심의 속도 속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물론 이런 시간 속에서도 다양한 문화적 접점을 통해 건축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려던 공간의 김수근이나 실험적 건축을 시도했던 김중업이 있었으나,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위상은 극히 미미했다.
건축계, 즉 건축사의 위상은 건축 자체의 위상과도 연결되었고, 우리 사회에서 건축은 곧 건설이었다. 덕분에 콘크리트와 강철은 존재했지만, 미학이나 철학을 말하면 당혹해했다. 그러니, 정부정책에서 건축은 건설과 토목의 영역에서 그냥 보기 좋게 하는 포장술 정도로 다루어졌다. 건축사는 정부 정책이 펼쳐지면 그 정책에 따르기만 급급했고, 발언권도 주어진 적이 별로 없었다. 건축이 도시에서 어떻게 구축되고 다루어져야 하는지 이유를 알 필요도 없고, 가치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몇몇 선구적으로 도전하는 건축계 인사들이 있었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항상 비주류로 존재했다.
김수근이 정치인의 지지를 받기도 했고, 다른 건축계 인사들이 경제계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개인이나 본인의 범위에서 머물렀다. 보다 큰 건축적 시장 환경이나 산업 환경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이런 변화를 건축사들이 이끌어 내기는 사실 쉽지 않고, 해외에서도 찾기 어렵다.
어쩌면 이런 시대적 배경과 건축 산업적 상황에서 누군가 이단적 존재, 또는 도전자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아직 미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승효상이라는 건축사는 이런 우리 상황에서 탄생한 들소 같은 인물이다. 혹자는 그의 건축적 철학에 대해 비판하고, 혹자는 그의 영향력에 대한 정치적 비판도 한다. 젊은 후배들은 그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면서 비판도 한다. 일면 타당함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대 건축에 종사하는 현업 건축사로서 지난 시간 동안 그렇게 변화의 전면에 나서서 주도한 인물이 누가 있었을까? 말하긴 쉽다. 건축사의 작품에 대한 끝없는 변신은 실험정신과 도전의 일환이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바뀌고 또 바뀐다. 필립 존슨의 도전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책 일선에서 현업 건축사로서 느꼈던 구조적 부당함과 부조리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고치려 노력한다. 아마도 그의 내면에는 수도 없는 상처가 얼기설기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축 학계나 건축 실무 어느 분야에서 어느 인물도 그처럼 도전을 거듭한 인물이 없다. 아무것도 안 하면 비판도 없고, 상처도 없고, 비난도 없다. 그걸 모를까? 그럼에도 건축이라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사랑, 연민이 그를 그렇게 세상이라는 들판에 건축이라는 옷을 입고 나서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이런 인물의 뉴버전이 앞으로 더 탄생해야 한다. 적어도 50대에서, 40대에서, 30대에서... 그리고 20대에서 나와야 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