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와 북유럽 여행 단상“여행은 나를 넓히는 연습, 나 자신 들여다보는 엄숙한 도정” 2019.12

2023. 1. 7. 09:04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ravel Essay on Latin America and Northern Europe 
"Travel is a practice that expands me, a solemn way to look into myself"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가을을 세 번 맞는 기분이다. 봄에 중남미, 여름에 북유럽을 가서 가을 분위기를 느끼고 한국에 와서 가을을 맞았다. 지구 저편에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중남미 5개국을 다니며 비행기 열한 번을, 북유럽 5개국에선 여섯 차례나 배를(크루즈 2회) 타야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본 영화 <안도 타다오>에서 그는 “여행 속에서 나는 건축가가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행은 자신을 넓히는 연습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는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중남미 국가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포퓰리즘 복지 정책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 항공기와 공항의 시설 및 서비스가 우리만큼 우수한 곳도 없다. 인천공항에서 멕시코시티까지(13시간15분 소요) 가는 동안 AEROMEXCO 항공기 내에서는 간식을 줄서서 배급(?) 받기도 했는데, 외국인들까지 컵라면을 선호해 우리는 정작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다. 중남미 5개국(멕시코, 쿠바, 페루, 브라질, 아르헨티나)을 여행하면서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그 먼 곳에서도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아 흐뭇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 그리고 K-pop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날에 대해 우려스러운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1994년 외채위기를 겪은 중남미 국가들은 경제 성장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세금을 퍼부어가며 대못 박듯이 복지 지출을 늘려 국민 부담이 커지고 결국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었다. 남미 국가 중 그나마 경제 사정이 가장 좋은 브라질도 현금 살포, 연금 확대 등 과거 무분별한 포퓰리즘을 바로잡고자 금년 초에 집권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에 의회가 반발하여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국민의 표를 의식해 한 번 시작한 무차별적 복지는 되돌리기가 어려운 법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 중에서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데 앞으로가 문제다. 우리나라의 세금 및 연금 부담 증가 속도가 OECD 국가 중 멕시코, 그리스 다음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기사(조선경제 2019.4.24.일자)를 보면 더욱 염려스럽다. 

마야문명과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 멕시코에서 잉카문명의 발상지 페루로 중미에서 남미로 갔다. 세계에서 가장 긴 안데스산맥이 서쪽으로 7,000킬로미터 뻗어 있고 5,000킬로미터의 세계 최장 아마존강이 흐르는 그곳이 남미 즉 남아메리카다.
페루는 4,000년 역사와 잉카인들의 석조기술이 일품이다. 원래 잉카의 조상은 몽골족(몽고반점)이다. 수도 리마(Lima)를 둘러보고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 쿠스코라는 도시로 이동했는데 공항에 내리자 고산증으로(해발 3,000미터 이상) 약간 어지럽고 추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잉카문명의 최고 걸작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추픽추 앞에 서니 감동이 밀려왔다. 거대한 바위 산 위로 운무가 피어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이 더욱 신비롭다. 나의 관심은 마추픽추 중심공간인 ‘태양을 먹는 기둥’이다. 그곳에서 L-rod Test를 해보니 V자로 벌어진다. 양(陽)의 기운이 가득한 것이 입증됐다.(사진 1)

 

사진 1) '잃어버린 세계', '공중도시' 등으로 불리는 맞추픽추


브라질은 한국과 시차가 12시간으로 
낮과 밤이 반대이며 계절도 반대

남미의 모든 나라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여기는 포루투갈어를 쓴다. 옛 수도 리우데자네이로는 세계 3대 미항으로 코르코바도 언덕 위에 예수상이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부러진 손가락 하나 보수하는데 3억 원이 들었다고.

 

사진 2)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과수폭포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이과수폭포다. 세계 3대 폭포 중 가장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데 다가갈수록 심장이 고동치고 하늘이 내려앉는 듯,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물 벽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커튼을 보는 듯하다.(사진2) 그러나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려면 국경선 넘어 아르헨티나로 가서 ‘악마의 목구멍’ 앞에 서 보아야 한다. 하늘마저 빨아들일 것 같은 기세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그런데 정작 악마는 경제의 추락이다. 100년 전 아르헨티나는 세계 10위의 경제 부국이었다. 그러나 경제원리에 역행하는 포퓰리즘 정책(지지층을 위해 급격한 임금 인상과 무상 복지의 확대)으로 20세기 경제의 최대 실패 국가로 전락했다.

중남미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 ‘쿠바’

카리브해의 푸른 악어, 멕시코만의 열매, 카리브해의 진주 등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15번째로 큰 섬나라. 미국의 영향아래 60년 동안 자본주의로 부를 누렸던 나라가 사회주의 좌파독재로 지금은 북한과 함께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김일성대학에서 2년 공부하고 북한주재 쿠바대사관근무 경력이 있는 가이드는 우리나라가 부럽다고 하면서도 걱정스러워 했다. 거리의 낡은 건물들 외관은 몰탈 위에 수성페인트칠 한 것이 대부분인데 관광객을 위한 호텔시설 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사람들의 모습은 밝고 친절했지만 왠지 애잔하게 느껴졌다. 오래 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났던 북한 노동자들의 어두운 모습이 교차됐다. 개인 주택 소유는 인정하고 있으며 (정치체계를 바꾸지 않고도) 개방만하면 발전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오직 오늘만 존재하는 쿠바에서 내일(미래)은 없고 관광만으로 먹고 사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가이드는 한탄스러워 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북유럽 국가들?

북유럽 5개국(수도)을 덴마크(코펜하겐), 노르웨이(오슬로), 스웨덴(스톡홀름),  에스토니아(탈린), 핀란드(헬싱키) 순으로 여행했다.

행복의 나라 덴마크

올해 우리나라와 수교 60주년 국가로 우리에게 최초로 전화를 가설해주고 국립의료원 설립 지원과 의료기술을 전파해준 나라다. 고도의 복지국가로 1934년부터 사회복지제도가 시행되어 개인 세금이 38.5%∼70%에 달한다. 탈세와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는 엄격하여 영업정지가 아닌 영업폐지를 한다고.

 

사진 3) 코펜하겐 시청사 앞에서 건축사 일행들과 단체사진


수도인 코펜하겐의 특징은 시청을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었으며 자전거 전용도로가 차도와 인도 사이에 완벽하게 설치되어(1923년 세계 최초 자전거도로법) 최우선 순위로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기가 맑고 거리가 깨끗하다. 1905년에 건립된 시청사는 이태리 건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덴마크 양식의 건축물이다.(사진3)

 

사진 4) 뉘하운 운하 앞에서


시청광장 입구에 덴마크의 상징인 안데르센 동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입하고자 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전거 도로이고 또 하나는 운하다. 북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거의 다 바다에 면해 있는데, 코펜하겐 또한 바다와 연결된 운하가 있어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 유람선을 타고 유명 건축물을 돌아 볼 수 있다.(사진4) 그 중에는 블랙다이아몬드도서관(1999년건축),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권거래소 뵈르센(Borsen: 400년 전에 건축되어 현재는 상공회의소)을 볼 수 있는데 이태리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덴마크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하늘로 용틀임하는 모양의 첨탑이 독특하다.
덴마크는 ‘온 국민이 디자이너’ 라고 할 만큼 디자인 강국이다. 어릴 때부터 덴마크 회사 레고가 만든 알록달록한 블록을 쌓으며 색감을 익히고, 집 안에 의자와 조명을 배치하며 자연스럽게 감각을 기른다.

‘북으로 가는 길’ 이란 뜻의 노르웨이

 

사진 5) 노르웨이의 자연 풍광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산이 많은 나라로 산을 좋아하는 나에겐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피오르드(빙하가 할퀴고 간 상처에 U자 형태로 바닷물이 파고 들어온 것)와 빙하, 폭포 등 태곳적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 (사진5) 속으로 빠져들며 가는 곳마다 삶에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듯 했다. 만년설이 쌓여 빙하가 되고 그것이 녹아서 생긴 호수는 광물질 때문에 물빛이 투명한 옥색인데 손발을 담그니 뼈 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갑다. 세계에서 가장 긴 레르달터널(24.5킬로미터, 30분 소요)을 통과하여 플롬 산악열차를 타고 환상적인 경치를 감상했다.

 
‘북방의 호랑이’로 불리는 스웨덴

 

사진 6) 스톡홀름 시청사

버스를 탄 채 국경선을 통과하자 수목은 울창한데(노르웨이처럼 자작나무와 소나무 등) 산이 없는 평지에 주택들 또한 노르웨이에 비해 지붕의 경사가 완만하게 자연조건을 따르고 있었다. 스웨덴은 덴마크와 동족으로 의료기기, 대체의학의 선진국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수도 스톡홀름 시청사(사진6)는 1923년에 건축되어 이곳에서 매년 12월 노벨상 시상식 및 축하연회가 열리고 있다. 연회가 열리는 황금홀은 무려 1900만 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구시가지에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왕궁(현재 박물관)이 있고 광장주변으로 형형색색 오래된 건물과 구불구불 골목길이 이어져 있다.
스웨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대형 호화 크루즈선(8만톤 급)편으로 15시간 이상 항해 끝에 에스토니아로 갔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에스토니아는 발틱 3국 중 가장 작은 나라(한반도의 1/5, 인구 150만)로 수도 탈린의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을 만큼 보석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여기서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하다. 오래된 전차길을 가로질러 톰페아 언덕에 올라가 톰페아성(현재 국회의사당)과 맞은편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를 보았다. 그리고 구시가지(사진7)를 조망한 후 반대편의 아기자기한 골목길로 내려와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북유럽 여행 중 가장 멋지고 기억에 남을만한 식당이고 식사였다. 구도시의 관문 비루문 근처에 위치한 ‘올데한자식당’은 중세시대 모습 그대로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전기대신 촛불을 켜고 600∼700년 전에 먹었던 보리와 견과류를 섞어 만든 빵과 스프 맛이 별미였다.

북유럽 여행 마지막 일정 핀란드

 

사진 7) 탈린 구시가지 모습


카페리를 타고 갔다. 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나라지만 나로서는 세계적인 건축가(사) 알바 알토의 나라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보았다.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시작으로 디자인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수도 헬싱키에 도착하니 유럽 국가들과 다른 느낌을 받는다. 심플하지만 단순하지 않고 과감한 컬러를 사용했지만, 너무 화려하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디자인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그 사이로 놓인 길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구도심의 광장을 중심으로 원로원, 대성당, 문화원, 학교가 위치하여 정치, 종교, 문화, 교육 시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사진 8) 암석교회로 불리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어느 자리에 앉아도 강단과 마주보게 된다


핀란드에 와서는 2군데의 건축물을 꼭 보고자 했다. 하나는 암석교회다. 이 교회의 정식 명칭은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로 1969년 설계공모에 의해 티모(Timo) 와 투오모(Tuomo) 형제가 설계한 작품으로 헬싱키 중심지 바위동산의 암반을 파고 깎아서 만들었다. 루터교 교리와 핀란드 자연환경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구리와 자작나무를 소재로 둥근 모양의 커다란 지붕 아래 빙둘러 설치된 채광창을 통해 어둠속에서 자연스러운 빛이 유입되고 있었다. 2층 구조인데 어느 좌석에 앉든 자연스레 정면 강단과 마주하게 된다. 내부는 별다른 장식 없이 검소하고 소박하다. 설계자는 암석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의자도 최대한 단순하게 제작했고, 불규칙한 돌 표면이 돋보이도록 암석 외에는 교회의 흔한 장식도 모두 생략했다고 한다. 비교적 현대 건축물이지만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며 신도가 아니어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사진8) 
그리고 알바 알토 하우스는 여행사의 일정에 없어 건축사 일행들과 함께 콜벤을 대절하여 헬싱키 인근에 위치한 문키니에미로 찾아갔다. 알바 알토(Alvar Aalto)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사,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불리며 핀란드 지폐에 그의 초상이 등장할 만큼 이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디자인과 건축 철학으로 삼고 직선 보다 곡선, 빛에 대한 고민, 단순하고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진 9) 알토의 집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배려하고자 했던 건축 철학과 함 께 편안함과 인간적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알토하우스(Aalto House)는 생전에 그의 가족과 함께 살며 사무실로 이용했던 곳으로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건축 1001에 선정되어 있다. 1936년에 건축된 모더니즘 양식의 2층 규모로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흑백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공간의 용도를 구분하여 하얀 쪽이 건축사사무소의 공적인 공간, 검은 쪽은 그와 가족들이 거주하던 사적인 공간이다. 내부 곳곳에 목재를 사용, 정적이며 단정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은 스칸디나비안 모더니즘의 시초로 인정받고 있다. 벽돌, 스틸, 철근 콘크리트, 목재로 지어졌다. 알토는 아내인 아이노와 함께 이 건물을 지었다. 다양한 모양의 발코니와 불규칙한 지붕선이 전반적인 L자형 건물에서 돌출돼 있다. (사진9)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영화 1편을 보았다. 제목은 <이타미 준의 바다> 그가 말하길 “건축은 여행이고 여행이 건축이다. 자연과 야생과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좋은 건축”이라고. 맞는 말 같다. 세계적인 건축물들을 돌아보면서 설계자의 삶 자체가 건축에 녹아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북유럽은 서유럽의 들뜬 분위기, 동유럽의 가라앉은 분위기와 달리 날씨만큼이나 고요하고 사색적인 느낌이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우리네 정서와 맞는 듯 했다. 그러나 물가가 너무 비싸고(우리의 3배 수준) 활기가 없고 재미가 없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특히 젊은이들은 중남미는 말할 것도 없고 북유럽을 부러워할 때가 아니다. 남미형 퍼주기와 북구형 복지 모두 문제는 있다. 선배들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처럼 신 성장 분야에서 제2의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나라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민족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개인이 전체를, 전체가 개인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조화와 균형 잡힌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싶다.

 

 

 

 

 

 

글. 이종호 Lee, Jongho 시원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풍수지리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