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사회적 소통을 바탕으로 한 건축문화 2019.12

2023. 1. 7. 09:1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건축상이 존재한다. 아쉽게도 사회적 권위와 명성을 확보한 건축상의 존재는 자신할 수 없다. 국전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어 왔던 과거 건축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각 부처가 담당하는 건축상도 우후죽순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국토교통부에 이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에서 부여하는 건축상도 수없이 많다. 
이렇게 많다 보니, 우리나라를 대표할 건축상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건축 수준을 높이는 방법으로 해외 유수의 건축사사무소에 파견지원을 하면서 프리츠커 상을 언급했다. 매우 투박한 사고방식이다. 차라리 ‘로마의 미국학술회(American Academu in Rome)’나 ‘로즈 장학금(RRhodes Scholaship)’ 같은 제도를 언급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런 개념과 유사한 것은 재미건축사인 김태수씨가 주는 ‘김태수장학 TS Kim’ 상이 있어서 매년 시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프리츠커 상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다. 사회적 태도와 수용하는 능력이 커지지 않으면 결코 프리츠커 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공공건축이어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설계를 해야 상을 받는 사실에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건축 중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 대상들을 보면 그나마 건축 완성도에 무게중심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스스로도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건축 완성도 따위는” 관심 없고, 그 용도의 건물을 짓는 것에 여전히 무게중심을 두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설계비를 줄여야 할 경비나 비용으로 생각하는 발주처 앞에서 과연 후대의 유산이 될 도시를 남겨줄 수 있을까?
이런 공감대 차원에서 이번 건축 담론으로 다양한 건축계 인사들에게 의견을 받았다.

 


 

Architectural culture based on social communication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이하 NPP사업)라는 해외연구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해 추진·시행한다고 밝혔다. 청년 건축인이 해외 유수의 설계사무소나 연구기관에서 선진 설계기법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서 연수자로 선정되면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2개월까지 1인당 최대 3000만원의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국토부는 “우리나라도 프리츠커상을 받을 수 있는 세계적 건축사를 배출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 노력할 것”이라며 “사업의 성과로 우리나라가 건축설계 선진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청년 건축인을 적극 돕겠다는 취지로 기획한 정부의 지원책에 건축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차갑다. 우리나라 건축사들의 역량은 부족하니 정부가 나서서 ‘설계기법’을 배워오게 하겠다는 거냐는 냉소적 반응부터, 과외로 더 좋은 대학을 보내자는 것과 다름없는 웃픈 발상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건축에 대한 정부의 이해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자 건축을 해외 단기 연수쯤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술 또는 제품으로 인식하는 건 아니냐는 비판 내지 의문일색이었다. 과연 선진설계기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며, 3개월에서 1년 사이에 습득될 수 있는 것인가?

공공 프로젝트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러한 건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많은 건축사들이 받아들이기엔 참으로 불편한 뉴스였던 것은 둘째 치고, 그만큼 반대로 국내 건축환경이 척박함을 여실히 드러낸 한국 건축계 현실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취지는 좋았으나, 그 방법에 있어서 심히 엇나간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근현대를 거치며 우리나라의 건축문화는 건축을 부동산, 재산증식의 절대적 수단, 경기부양의 수단으로만 여겨왔다. 결과로 우리나라 건축법에 규정된 건축의 정의는 “건축이란 건축물을 신축, 증축, 개축, 재축하거나 건축물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건축을 문화가 아닌 건물 덩어리로 보는 시각에 갇혀 있다. 반면, 다양한 건축의 실험과 성취가 일어나고 있는 프랑스의 건축법에서 건축에 대한 정의를 보자. (참고로 프랑스의 건축은 우리나라처럼 국토교통부 산하가 아닌 문화부 산하이다.)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 건축적 창조성, 건축의 품격,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자연적/도시적 경관 및 문화 유산의 존중 등의 공공적 관심사다.”

우리나라는 건축의 가능성을 부동산으로만 간주하며 정의 내렸고, 프랑스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하며 건축법을 제정한 것이다. 건축에 대한 정의부터 이렇게 다른 두 도시의 건축과 도시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건축은 단순한 기능을 담는 조형적인 그릇만은 아니며 더더욱 제품이 아니다. 건축이라는 공간 안에는 물질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담기는데 이것을 나는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하고 싶다. 건축이 사회의 성찰과 고민을 담아내는 창의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이해의 공유가 절실하다.

사람들을 통해서, 사회와 건축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보편적인 언어로 일상 안에서 편하게 소통되고 공유될 수 있을 때 사회가 성숙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가 건축에도 투영되어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던 건축이, 건축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승화된다. 이때의 건축은 인격체처럼 격(格)을 갖게 되며 마치 생명체처럼 시대를 거듭하며 새롭게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소통을 바탕으로 한 건축문화의 성숙이야말로 우리다움이며 우리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지한 성찰과 끊임없는 토론의 장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그 가능성 중의 하나를 건축상(賞) 이라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오랜 기간 역사를 이어온 건축상들이 있고, 요즘은 각 지자체마다 건축상이 새로 만들어지는 추세다. 건축이 사회와 만나는 플랫폼으로서 건축상은 건축사가 건축을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하려했는지 건축사의 언어가 아니라 일반인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매년 연말이면 각종 영화제가 열리고 수상자, 작품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건축상들은 얼핏 보면 그들만의 리그인 것은 아닌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리고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건축상들뿐 아니라 우후죽순 생겨나는 지자체의 건축상들도 어느 날 갑자기 수상작들이 신문에 소개되고 언제 전시회가 열린다라는 일방적 소개에 그친다. 좀 더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후보 작품들도 공개하고 작품을 뽑는 과정에서부터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 더 좋다. 건축작품에 등수를 매긴다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건축상들이 도시의 이벤트로 자리 잡고 좋은 건축을 다룬 영화를 보듯,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고 즐기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긴다면 건축을 문화로 인식하는 뿌리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건축이 건축 전공자들만의 영역에 갇힌다면 좋은 가치가 있다고 해도 담장 밖의 세상으로 그 존재와 의미를 알리기 어렵고 시대와 함께 진화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건축 외의 시각으로도 건축을 활발하게 접하고 건축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가 건축상, 영화, 다큐멘터리, 책, SNS 등을 통해 일반인들과의 접점을 찾으면서 대중성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건축이 사회와 만나는 플랫폼이 다양해야 한다.

건축과 일반인의 소통이 이렇다면 국내와 국외의 소통은 어떨까. 일본 정부는 일찍부터 보다 큰 시각에서 건축을 지원했다. 일례로 일본 건축의 국제교류를 위해 자국 건축사들의 해외 전시를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이러한 전시에 해외의 유명인사들이 참여하도록 하여 영향력을 넓힐 수 있게 했다. 또한 출판을 통한 자국 건축사들의 해외소개를 강력하게 지원해왔다. 일본은 프리츠커상 원년부터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여했었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국제적 건축교류에 대한 일본정부의 지원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는 참여 기회를 얻은 젊은 건축인들에게는 분명 좋은 경험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건축사를 만들어내는 건축문화와 시스템은 우리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고찰로부터 시작된다. 각종 정책들이 문제의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추진된다면 정책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고,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다.

 

 

 

글. 권재희 Kwon, Jaehee (주)목금토 건축사사무소 <경기도건축사회>

 

권재희  (주)목금토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권재희는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을 전공했다. 현재 (주)목금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함께 꿈 사업’ 디자인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6년부터 도시의 커뮤니티 및 커뮤니티 교류센터를 연구 중에 있으며, 성남에서 우리동네 건축인 모임 협동조합 이사로 참여하며 건축, 도시, 커뮤니티 관련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업으로는 방배동 주택, 양평주택, 제천주택, 은평구 패시브주택, 운중동 패시브주택, 협소주택 ‘공감’, 인천 도화동 아파트 커뮤니티시설,빈집 프로젝트, 여성 크리에이티브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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