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_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온고지신 ; 시간을 이어가는 건축 2020.2

2023. 1. 10. 09:16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Incheon architect hall 2019 Wen Gu Zhi Xin ; Architecture that continues from the past 

 

대학시절 교양국어를 들었다. 국어라지만 중국고전에서 발췌한 문장이 가득한 한문강독에 가까운 수준의 강의였다. 수강생 200여 명이 대형 강의실에서 듣는 강의라 주목받는 경우도 적어 부담없이 들을 수 있었다. 가끔 일어나는 당황스런 일은 한문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하라고 지적받을 때이다. 수강을 준비하면서 모르는 한자를 찾아 읽었고, 지적받으면 직역에 가까운 수준으로 답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이가 드니 그때 기계적으로 읊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온고지신’은 근대건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져서 한때 SNS에서 별명으로 쓰기도 했다. 이 문장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구절로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를 줄인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일제의 식민건축에서 배울 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옛것은 새것을 이루는 밑바탕이다. 옛것의 이치를 배우고 따져 새것을 창의 진보하는 일이다. 중국 한나라의 사상가 왕충은 논형 사단편에서 ‘오늘만 알고 옛일을 모르는 것을 맹고 즉 장님’이라 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근대건축물은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외세에 의해 통째로 강요된 것들인 동시에 오욕의 역사가 담긴 상징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철거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는 자발적 수용에 의해서건 강제로 이입된 것이던 간에 후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정치적 지배관계에 의해 강요된 불균형 문화변용을 일방적 수용에 그치지 않고 일제강점기에는 물론 해방 후 우리의 문화로 창의해냈다. 자랑스런 역사건 치욕의 것이던 우리의 과거이다. 과거를 지우는 행위는 옛것의 이치를 따져 배워 새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방해한다. 식민지경영을 위해 지어진 근대건축물인 네거티브문화유산을 보존·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탄화된 지붕트러스


낡은 건물에 쌓인 시간의 역사를 이어내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공사 전에는 알 수 없는 난제가 건물 곳곳에 부비트랩처럼 얽혀있다. 철거하고 새로 설계하는 작업이 훨씬 쉽다. 결국 공사과정에서 지속적인 설계변경을 통해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박재형 건축사는 회관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선배건축사들과의 협의와 토론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했다. 특히, 단열성이 낮은 벽체와 창호보수에서 디테일이 엉키게 되고, 이는 입면의 완성도를 낮추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전통건축물에 기반을 둔 건축물의 기본치수는 과거 일본인의 신체에 맞춰져 있어 현대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하다. 그중에서도 낮은 천정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요원하다. 이 건물에서는 아쉽지만, 1층 천장은 멍에와 장선을 그대로 노출시킨 뒤 검은색 페인트로 마감했고, 2층 천정은 지붕트러스를 노출시켜 개방감을 키웠다. 

 

1956년 당시 이케마쓰(池末) 상점

2층 천정철거는 천정고를 높이는데 그치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화재의 흔적이 지붕트러스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탄화된 지붕트러스는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건축요소이다.

 

인천 중구 개항장문화지구는 오래된 건축물을 문화향기 풍기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인천 중구 개항장에는 19세기 말∼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외교인 사교장 ‘제물포구락부’,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 옛 일본제1은행·일본제18은행·일본59은행 인천지점 등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으로 새로 태어난 건물은 1932년 중구 제물량로 203-1에 세워진 지상 2층 목조건축물로 배에서 쓰는 물건을 판매하던 이케마쓰(池末) 상점이다. 외관상 일본식 건축물임이 확연히 드러남에도 내력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가 인천광역시건축사회 회관으로 부활하면서 베일에 가려졌던 역사가 드러났다. 낡은 건축물 보수가 건축활동을 넘어 지역의 역사를 풍부하게 만든 사례이다. 이케마쓰는 이곳에 항동 가게를 대신할 건물을 새로 지어 해방까지 선구점, 질소 카바이트 판매점으로 썼다. 이후 1956년 무렵에는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 인천지점으로 쓰이다가 대한통운주식회사 인천지점으로 바뀌었고(1963. 2), 대한통운 민영화(1968. 7)에 이어 1974년 민간에 불하된 뒤 수차례의 보수와 증축공사가 이뤄졌다.

 

건물보수를 위해 철거 시 모습



들불처럼 번지는 도시재생사업이 도시가 간직한 정체성을 살리고, 근대건축물 활용이 디자인적 수사(rhetoric)를 넘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건축물이라는 물리적 특성과 더불어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의 켜를 읽어내는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인천개항장에는 선구점으로 세워진 건물 두 채가 현존한다. 하나는 이케마쓰 상점이고, 다른 하나는 무라타니(村谷) 선구점이다. 보수공사를 거쳐 재활용되는 두 건물은 의미와 가치에 있어 차이가 크다. 근대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 방법상의 차이가 만든 결과이다. 중구청이 매입해 전시관으로 사용하는 무라타니 선구점은 이케마쓰 상점과 달리 건축자산의 가치를 읽지 못했다. 근대건축물 훼손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근대건축물 보수사례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인천아트플랫폼 조성공사는 19세기부터 원형을 유지해 온 여러 채의 건축물을 멸실시키는 우를 범했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은 야경이 압권이다. 어두운 밤 밝게 빛나는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은 칙칙한 공간으로 남아있던 이 일대에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핵심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천광역시건축사회관은 인천개항장을 밝히는 등대이다.

 

 

 

 

 

글. 손장원 Shon, Jangwon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인하대학교에서 학사,석사, 박사를 마쳤다.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신성대학교에서 근무하다 2004년 인천재능대학교로 와서 후학양성과 인천근대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인천근대건축(간향미디어랩, 2006)과 다수의 인천근대건축연구논문을 썼다. 최근에는 근대개항기 인천에서 이뤄진 우리나라의 건축활동에 집중하는 중이다.

 

 

shonjw@jei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