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한국 출신 유럽 건축사의 눈으로 본 건축 법규와 제도 2020.2

2023. 1. 10. 09:1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이번 호의 건축담론은 우리 건축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분명 우리나라 건축 환경은 다른 나라와 출발이 다른 듯합니다. 좋은 건축(?)에 대한 암묵적 합의나 공동의 인식이 없습니다. 감정의 언어 같은 ‘좋은’ 건축은 ‘경제적으로 값싸게 절약한 것’, ‘일말의 불편함이 없는 것’, ‘십년 동안 청소 안 해도 변하지 않는 것’,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 ‘백년 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것’, 통상 이런 건축을 ‘좋은’ 범주에 넣습니다. 하지만, 값싸게 짓는 것은 엉성하고,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며, 청소와 관리 없이는 십 년도 못 가는 걸 모릅니다. 그런 건 건축을 관리하고, 시공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슈빌(Nashville)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다 국제공항 감독관으로 이직한 미국 건축사의 설명이 중첩됩니다. “일단 그동안의 이력으로 검증되었으니, 후대에 남겨줄 만한 건축을 만들도록 지원합니다. 공사비 상승도 타당하다면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건축이 건축적으로 가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일단 건축은 시각 예술에서 시작합니다. 시각에서 출발해 오감으로, 경험으로, 생활로 이어지는 대상입니다. 이런 건축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나라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한 건축사의 이야기, 그리고 유럽에서 많은 작품을 하고 있는 젊은 한국 출신 유럽건축사에게서 우리와 다른 건축 환경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건축을 ‘잘’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건축 환경도 좀 더 나아지길 희망하면서 2월호의 건축담론을 시작합니다. 

 


02 Architectural law and regul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Korean-born European Architect

 

역사를 바꾼 유럽의 대재앙과 건축법 

1666년,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 작은 빵집에서 시작한 불길은 런던시(City of London)의 대부분을 화마로 뒤덮고 약 10만 명의 이재민과 런던시의 대부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약 90년이 지난 1755년 성인들을 기념하는 만성절,  포르투갈의 리스본은 대서양에서 시작된 리히터 8.5~9.0 규모의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와 화재로 도시 2/3가 파괴됐다. 호화로웠던 도시는 한순간에 폐허가 되어버렸고 대항해시대 당시에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거느렸던 포르투갈 왕국은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가이올라 건축기법과 모형 (Gaiola Pombalina)

 

가이올라 건축기법과 모형 (Gaiola Pombalina)


런던에서는 17세기 최악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 이후로 발효한 런던의 재건법 (Rebuilding of London Act 1666)을 기초로 하여 생성된 건축 규제법(Building regulation)은 영국에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개정, 사용되고 있다.

 

A plan for rebuilding the City of London, after the great fire in 1666, but unhappily defeated by faction, Christopher Wren [Public domain]


1758년, 리스본에서는 도시계획법을 공포하여 트러스 구조의 가이올라(Gaiola, 포르투갈어로 새장을 뜻함) 공법과 목재 기둥 기초구조로 건물의 탄력성을 높였다. 지진을 대비해 의무화된 신공법으로 유럽에서 처음 본격적인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축물들이 들어섰고, 대지진을 바탕으로 지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져 지진학과 지진공학 연구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리스본의 신임 도시설계자 마누엘 다 마이아(Manuel Da Maia) 는 90년 전 런던의 대화재 이후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구상했던 대칭과 조화를 기초로 해서 기하학적 구조의 도시를 설계했고 이는 도시계획 분야의 중요한 원칙이 되어 건축 자재들은 표준규격 아래 신속하게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대화재와 대지진이란 전대미문의 재앙을 극복하며 물리적 시스템과 재료의 속성에 대한 수학적 이해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고, 이 두 대도시는 현대화와 과학적 방법을 재건의 일환으로 사용하였다. 이후로 근대적 재난관리•구호 시스템, 지진학, 재료학 연구가 가속화되었고 이러한 방법들은 유럽 건축법과 도시계획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처럼 재앙이란 큰 일을 겪은 뒤에 유럽의 건축법과 제도는 더욱 견고해졌다. 

오늘날 전 세계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이 아닌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의 결과로 고통받고 있다. 산불로 인한 시드니의 잿빛 하늘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온현상, 신이 아닌 우리 자신이 가져온 재앙일지도 모른다.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가인 한국은 파리협정 목표로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인들은 탄소배출과 에너지를 절감하는 환경친화적인 자재와 건축으로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부단히 시도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친환경’ 이란 단어가 건축에서도 다양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친환경적인 공법과 자재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위해 훼손된 환경 속에 건물을 짓는 순간부터 더는 ‘친’ 환경이 아닐 수도 있다. 

건축법은 현재진행형이다

건축과 토목기술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지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부실한 재난안전대책이나 규정, 안전불감증,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정부의 규제나 법규 등 모든 것이 양립할 때 생각지 못한 재앙이 닥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서로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 예로 3년 전 런던에서 발생한 그린펠타워(Grenfell Tower) 화재사건은 80명 이상의 많은 희생자를 불러왔다. 이 화재 사건은 350년 전 런던의 악몽을 되새기게 했다. 아직도 이 건물은 철거되지 않고 조사 중에 있으며 설계자, 감리자, 시공사, 불량자재회사는 물론 그 자재를 허가, 인증해준 정부 모두 거미줄처럼 엮여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았다. 희생자만 억울할 뿐 선진국이라 해도 ‘책임회피’측면에서는 사실 크게 다른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강한 예방 차원에서 영국 모든 공공주택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하고 사용된 인화성 자재를 철거했다. 

건축법은 국가, 시대, 공간, 문화, 관습, 기후의 변화에 따라 지속해서 개정되고 적용돼 왔다. 하지만 정부의 뒷북 정책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경주의 지진, 부산의 쓰나미처럼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닥치면 정부는 늘 그랬듯이 규정과 법규를 미온적으로 재정비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양간을 더욱 튼튼히 하여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지만, 소 잃고도 외양간을 다시 고치지 않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의 건축 인허가

현재 런던과 리스본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런던과 리스본의 법규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을 꼽자면 기존건물의 건축적 미관 보존과 유지 아래에서 신축보다는 증축과 개축의 형태로 허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축은 보통 기존 건물의 보존 가치가 없거나 낙후된 경우에만 허가를 받을 수 있으며, 보존구역이나 국가•지역의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거나 보존구역 내에 있는 건물들은 증축이나 개축이 다소 어렵다. 문화재청의 심사 구청 시청의 보존구역 담당관(Conservation Officer)의 심사가 따로 필요하다. 영국이나 유럽지역에는 이런 지역이 상당히 많다. 실내 내부까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면 인테리어조차도 힘들고 창호 문 변경조차 허가를 받아야 한다.

런던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과 오래된 주택들이 많고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런던의 도심지역(London zone 1-2)에서는 기존 건물을 아래 지하로 증축하거나 파사드만 남긴 채 개축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지하증축은 기존 건물의 외관을 변경하지 않으면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발을 통해 기존건물의 실내 면적과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시공비가 많이 들기에 지가가 높은 지역 또는 외관 보존지정지역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증축 형태이다. 그리고 증축된 지하 공간은 법규상 침실로 사용할 수 없기에 개인 수영장, 놀이방, 시네마 룸, 라운지, 바 등 개인 취향에 맞게 다양하게 이용된다. 

영국에도 건축 허가(Planning permission)와 신고(Prior approval for permitted development)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한국과 다른 점은 영국은 도시계획사(Town Planner, MRTPI)가 시•구청 도시개발부서에서 건축인허가를 담당한다. 감리는 개인감리회사나 시•구청에서 담당하는데 공인된 감리사(Building Inspector, MRICS)가 담당한다.
시•구청의 인허가 과정에서 처음부터 일체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청서식부터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이 도시개발부서에 있느냐를 묻는다. 그리고 사용될 외관 자재, 공공 가로에서 수선, 개축, 증축 등의 외관변경을 볼 수 있는지 묻는다. 즉, 거리의 미관과 정체성을 변형시키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도시개발에 있어 영국에서는 거리와 지역의 성격, 정체성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벽돌색, 창문 위치, 지붕 높이 등은 설계 시에 주변 건물을 상당히 고려해야 한다. 너무 개성적이면 주민 의견수렴 기간에 정말 많은 항의 레터를 받을 수 있고 증축 개축 등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주민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면 허가를 못 받을 수 있다. 일정 수 이상의 항의 레터를 받으면 다시 구•시청에서 의견접수 회의를 개최한다. 그 후에 설계를 수정하거나 불허가 결정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거리의 성격과 주변 건물과의 관계, 주민의 프라이버시는 건축의 독창적 디자인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그리고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구•시청이 정해놓은 가이드라인과 규칙은 필수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예로 들면 증축 너비 최대 3미터, 높이 3미터 이하. 신축 시에는 맞은편 이웃 창문과의 거리는 21미터 이상, 조망, 일광 등 이웃주민에게 일체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보존지역 내에서는 더욱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다. 기존건물의 양식(조지안, 빅토리안, 에드워디안 등)을 유지해야 하고 재료 창호도 우드프레임으로 유지해야 한다. 

 

Pombaline Baixa, Lisbon, rebuilding plan after the 1755 earthquake. Eugénio dos Santos and Carlos Mardel [Public domain]



디자인보다 역사와 가치를 고려하는 영국 건축

디자인 강국인 영국에서 건물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사실 어렵다. 상당히 보수적이며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보수적인 주민들과 규제로 인해 획일적인 디자인이 많이 탄생하는 것이 단점이다. 속히 말해 묻혀가는 디자인이 허가 받기도 쉽다. 대신 제약이 없는 인테리어의 소품, 가구, 제품 등의 디자인은 상당히 독창적이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주변 이웃들과 분쟁을 피하고 각자의 사정으로 디자인보다는 현실적으로 빠른 허가를 선호한다. 그래서 더욱더 획일적인 디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개성 넘치는 디자인은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영국에서는 매체마다 매년 가장 못생긴 건물을 선정하는데 이로 인해 가끔 유명한 건축사가 선정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중 매년 빠지지 않는 건물이 라파엘 비뇰리(Rafael Viñoly)의 워키토키 빌딩이다. 몇 년 전엔 유리창의 빛의 굴절로 길거리에 자동차도 태워 버렸다. 좋은 건축은 사용자나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매일 보는 이웃이나 시민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정부의 규제는 난개발을 막고 건축사는 절제, 균형, 역사적 가치, 환경 그리고 주변 지역사회와 조화로운 디자인을 통해 모두에게 만족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일 것이다.

영국에서 지난 5년 동안 150개 이상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작은 규모의 회사라 설계, 인허가 시공 시•구청 담당관들과 미팅도 참여하고 클라이언트들과 소통하며 값진 경험을 몸소 배웠다. 유럽에서의 건축법규는 한국보다 제한적인 부분도 있고 관대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 그리고 문화와 관습의 형성과 생성배경이 상대적으로 다르기에 절대적으로 어느 한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축인허가 과정 중 하나인 주민의견수렴 기간 동안 영국 정부가 누구 하나 피해를 받지 않게 주민 개개인의 의견을 듣고 허가를 내주는 것을 보며,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한 유럽의 건축법은 개성과 다양성은 인정하지만 사회와 공공의 이익에 배치되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려는 것을 느꼈다. 

 

 

 

 

 

 

글. 최형순 Bischell 스웨덴 · 스위스 · 포르투갈 건축사

 

최형순  스웨덴 · 스위스 · 포르투갈 건축사

 

런던메트로폴리탄대학교(The Cass, School of Architecture, LMU)에서 건축 우등학사졸업 (B.A Hons, RIBA), 옥스포드 브룩스대학 (Oxford School of Architecture, Oxford Brookes University)에서 Sustainable Architecture과정을 세부 전공하였으며 건축석사학위(M.Arch, RIBA)를 받았다. 
스웨덴, 스위스, 포르투갈 건축사협회에 건축사 등록, 현재는 런던과  리스본에서 개인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yeongsoon.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