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아름다운 비례를 가진 건축, 카페 조슈아 2020.3

2023. 1. 11. 09:1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Architecture with Beautiful Proportion, Cafe Joshua

 

건축의 기본은 무엇일까? 시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건축 또한 세상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에 대처한다. 그러나 무언가 건축의 기반을 이루는 생각이나 자세가 있을 것이다. 
현대의 건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세상이 복잡해지며 세상을 닮아가는 것인지 건축은 점점 복잡해지고 화려해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빈약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건축이 많아지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건축에는 분명 아주 중요한 기본이 있고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포근한 겨울의 한 가운데에 고속도로와 국도를 섞어서 달려 평택 시내를 벗어나 바야흐로 논과 밭이 펼쳐지고 평택호와 서해안으로 들어가는 물길, 안성천이 흐르는 벌판에 들어섰다. 그곳에 높지 않지만 오똑하니 서 있는 하얀 건물이 한 채 서있다. 평택의 외곽에 도심이 끝나는 곳, 평야가 시작되는 곳에 지은 건물인데, 끝과 시작이 맞붙어있고 도시라는 수직과 평야라는 수평이 맞붙어 있는 장소이다. 동네 이름은 평택시 통복동인데 마치 두 개의 다른 차원, 혹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향이 층고가 높은 실내에 잔뜩 퍼져 있는 안으로 들어갔다. 빵과 커피의 향은 기호를 떠나서 사람의 마음을 눅여주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수평의 구도 역시 사람의 마음을 눅여주고 한없는 평화를 느끼게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건축이란 땅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주변과 상호작용을 하면 자리를 잡고 형태가 드러난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런 맥락이 없다. 주변은 광활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넓고 시야는 툭 터져 있다. 다시 말해 땅이 주는 정보가 별로 없어서 스스로 성격을 부여하고 존재를 만들어 나가야하는 상황이다. 마치 김제 평야에 나트막한 동산인 백산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이 건물은 어디에서나 인지된다.
그래서인지 이 건물은 크지 않은 덩치이지만 산처럼 느껴진다. 하얀 외벽에 낮은 경사지붕은 작은 산처럼 보인다. 직사각을 비스듬한 사선으로 가르고 일정하지 않은 경사를 주어 4면의 입면이 모두 다르다. 경사의 느낌이 다른 네 면은 주변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북쪽의 도심과 남쪽의 평야에 대한 반응이고 앞으로 확장될 도심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 느낌은 내부에서도 드러난다.
사선으로 가른 지붕 안에는 1/3부분이 통층으로 되어있고 그 안에는 일정하지 않은 위치에 창문이 달려있다. 그 창들은 무엇을 보아야 할지 애매한 창문이다. 여름에는 나뭇잎이 보이고 겨울에는 하늘이 보인다.
일정하지 않지만 리듬이 느껴지는 창문이다. 그건 마치 어떤 실내에 들어서는데 편안한 느리기를 가진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외부와 내부의 비례가 무척 좋은 건물이다.
“비례라니!” 참으로 오랜만에 떠올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의 아름다움은 비례에서 온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학에서 건축을 배울 때 가장 궁금한 것이 비례에 대한 이야기였다. 건축가들의 화려한 수사를 들어도 봤고 아름다운 비례를 가진 건물의 분석도를 보고 수업시간에 설명을 듣기도 하였지만, 도통 그 미감이 와닿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아름다운 비례? 그건 마치 내가 무척 오래 공부했지만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미국인의 언어와 비슷한 것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의문만 품은 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채, 혹은 맞춤법을 익히지 못한 채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처럼 어딘가 한 구석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한답시고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옛날 살림집도 답사하고 오래된 사찰도 구경했다. 역시 책에서 보고 말로 듣는 것보다 훨씬 와닿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비례에 관한 의문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 년에 한번 쓸 수 있는 휴가 1주일 답사를 한 적이 있다. 90년대 중반이었는데 석탑과 불상을 위주로 계획을 짰다. 전북 부안에서 시작해서 고창, 영광, 해남, 구례, 하동 등을 거치며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를 도는, 말하자면 국토의 남쪽을 디귿자 형태로 도는 여정이었다. 무척 많은 탑을 보았고 무척 많은 불상을 만나봤다. 모두 그 시대의 얼굴과 그 시대의 미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내가 뭉뚱그려서 알고 있던 불교 조각과는 무척 다른 개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분류해서 볼 수 있는 감식안과 여러 시대를 통틀어 볼 때 얻어지는 통시적인 눈이 조금 열리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석탑을 보았는데 고려시대의 약간 웅크린 듯한 느낌이 드는 탑들도 보았고 보림사에 있는 신라말기에 만들어진 수려한 석탑도 보았다. 
그러다 일주일 여정의 마지막 종착점은 경주였다. 경주는 아주 익숙한 도시이고 약간은 식상한 도시이다. 그 중 불국사는 식상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는데, 그 곳에 다시 가서 본 마당에 석가탑이 서 있었는데 내가 알던 석가탑이 아니었다. 화려한 광채를 내뿜고 있는 마치 금강석으로 빚은 것 같은 탑을 보게 된 것이다. 
왜 나는 그 동안 석가탑의 진가를 몰랐을까. 그리고 왜 탑은 그대로 있는데 지금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답은 석가탑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비례였다. 내가 여러 가지 탑을 보고 삼층석탑의 완성이라는 석가탑을 보게 되니 차별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비례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다운 비례는 숫자로 표현하고 그 숫자를 익히는 것이 비례 이전의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편의상 숫자로 비례를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의상이고, 사실 비례는 사람의 손이나 사람의 눈에 들어있다. 혹은 우리 감각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을 공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안목을 키우는 일이고 그런 감각을 손에 집어넣는 일이다. 비례는 손에 있다. 많이 그려보고 많이 본 사람의 손 안에 비례가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손에 미켈란젤로의 손에 아름다운 비례는 있었고 김홍도의 손에 겸재의 눈에 비례는 들어와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의 숙련기를 거쳐야 얻어지는 것이다. 건축은 그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 집에 와서 집을 둘러보며 아주 오래 전에 헤어진 친지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게 비례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불필요한 수사를 걷어낸 단정하고 힘 있는 문장을 만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건물에는 거추장스럽고 수다스런 건축의 어휘는 거의 없다. 단정하게 건물의 매스를 결정하고 가장 기본적인 디테일을 집어넣었다.
오랜 시간 설계를 하고 규모가 큰 건물을 많이 설계했던 이인호 건축사는 그 안에는 그간 갈고 닦았던 건축의 기본을 착실히 채워 넣었다. 대개 상업적인 용도의 건물은 사람의 눈에 띄어야하고 많은 허장성세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건물은 흰색과 단정한 경사지붕 뿐이다. 
정연한 가로선과 세로선이 있고 기울기가 다른 두 개의 사선이 자연스럽게 만난다. 그리고 크기가 다른 정방형의 창문들이 벽면에 배열되어 있다. 그 창문들은 내부에 다양한 풍경을 집어넣었다. 높이가 다른 창문들은 하늘을 보여주기도 하고 너른 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무수한 사선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맥락이 없는 대지이며 맥락이 생기기 시작하는 대지에 이 건물은 과장된 표현이 없이 건축 본연의 아름다움으로 건물을 세웠고 그런 아름다움이 들판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글. 임형남 Lim, Hyoungnam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 건축사

 

 

 

임형남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 건축사

임형남 건축사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1998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순한국어)로 가운데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공존하는 집을 만들고자 한다. 금산주택, 루치아의 뜰, 신진말 빌딩, 존경과 행복의 집, 언포게터블, 미장아빔 등을 설계했다. 적십자 시리어스 리퀘스트, 유니세프 관련 청소년 시설, 북촌길·계동길 탐방로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했다. 조선일보, 세계일보 등에 건축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사람을 살리는 집』,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풍경화첩』등 11권의 저서를 냈다.

, 『작은 집, 큰 생각』, 』,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풍경화첩』등 11 권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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