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건축회사(Architecture Firm)로서의 지속가능성 2020.2

2023. 1. 10. 09:17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이번 호의 건축담론은 우리 건축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분명 우리나라 건축 환경은 다른 나라와 출발이 다른 듯합니다. 좋은 건축(?)에 대한 암묵적 합의나 공동의 인식이 없습니다. 감정의 언어 같은 ‘좋은’ 건축은 ‘경제적으로 값싸게 절약한 것’, ‘일말의 불편함이 없는 것’, ‘십년 동안 청소 안 해도 변하지 않는 것’,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 ‘백년 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것’, 통상 이런 건축을 ‘좋은’ 범주에 넣습니다. 하지만, 값싸게 짓는 것은 엉성하고,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며, 청소와 관리 없이는 십 년도 못 가는 걸 모릅니다. 그런 건 건축을 관리하고, 시공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내슈빌(Nashville)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다 국제공항 감독관으로 이직한 미국 건축사의 설명이 중첩됩니다. “일단 그동안의 이력으로 검증되었으니, 후대에 남겨줄 만한 건축을 만들도록 지원합니다. 공사비 상승도 타당하다면 인정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건축이 건축적으로 가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일단 건축은 시각 예술에서 시작합니다. 시각에서 출발해 오감으로, 경험으로, 생활로 이어지는 대상입니다. 이런 건축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나라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한 건축사의 이야기, 그리고 유럽에서 많은 작품을 하고 있는 젊은 한국 출신 유럽건축사에게서 우리와 다른 건축 환경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건축을 ‘잘’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건축 환경도 좀 더 나아지길 희망하면서 2월호의 건축담론을 시작합니다. 

 


02 Sustainability as an Architecture Firm

 

미국 회사에 첫 출근을 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앞으로 일할 공간이었다. 개인 책상과 공간 크기는 그 전에 일했던 국내 대형사무소에서의 두 배는 되었고, 개인 제도판과 함께 데스크에는 최신 컴퓨터와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석재를 캐내고 생겨난 호숫가에 단독 건물을 사용했던 당시의 사무실은 환상적이었다. 특히 멋진 모델 마스터가 관리하는 모델샵은 오피스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고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평일 9시간, 금요일 4시간 근무 정책으로 한때 주말 부부였던 나의 상황에 맞춰 생활할 수 있게 해줬고, 일정 거리 이상 해외 출장의 경우 직급에 상관없이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을 이용하고 편안한 숙소에 묵도록 배려하여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점 등 사내 복지정책도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다.
 
유럽, 중동, 중국을 비롯해 미국 내 여러 곳에 지사(Branch office)를 둔 회사는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운영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한때 미국의 건축사사무소 중 규모로 2위까지 올라섰으나 대규모 레이오프(Layoff)를 해야 했던 상황 이후 경영 방향을 정비하면서 안정화를 추구했다. 적정 규모를 유지하면서 분리 운영되어 오던 모든 지사들을 하나의 회사로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후 회사는 사람을 고용하고 유지하는데 더욱 신중을 기해왔고 필요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회사는 파트너십(Partnership)의 형태로 십 여 명의 파트너들은 본사와 지사에 분산되어 각각의 사무소들이 다양한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만들면서 회사의 기본적 철학을 공유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경영의 투명성과 공간 이용의 유연성(Flexibility)

 


 
회사의 중요한 연중 행사 중 하나는 본사의 책임 파트너 세 명이 각 오피스를 순회하며 그 해의 실적과 디자인 성과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수치 위주로 보는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각 지역 오피스의 현재 상황을 공유하고 각자 어느 정도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로 공유하는 이익 부분과 각 오피스의 실적 부분을 적절한 비율로 계산하고 직급에 따른 풀(pool)에 따라 계산되는 그 해의 보너스를 예상해보고 다음 해의 목표에 대해 논의했다.
 
전체 직원이 모여서 듣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고 자유롭게 여러 가지 이슈(Issue)들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회사 경영의 구체적인 부분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전반적인 사실을 훑어보고 신입사원의 경우도 함께 참여해 질문이나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부분이 좋았다.
 
이런 공식 및 비공식 행사가 열리는 오픈스페이스(Open space)는 각 지역 오피스마다 모든 구성원이 모일 수 있는 넓이로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디자인 되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크고 작은 행사를 비롯해 업무 회의도 했고 생일파티를 포함 캐주얼 파티도 열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다목적 소통의 장소로서 사무실의 공용 공간이었다.

이 공간 외에 정렬되어 있는 각자의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은 프로젝트에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사용되었다. 데스크탑이 노트북으로 바뀌면서 이동은 훨씬 수월해지고 프로젝트 팀 구성에 맞춰 그룹핑(Grouping)하여 움직였다. 물리적으로 고정된 공간이지만 유연하게 사용되어 나만의 책상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책상이 나의 책상일 수 있었다. 직급이 높은 직원들과 회사의 오너(Owner)인 파트너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칸막이가 없어서 각 그룹 간에 시원하게 전체가 보이는 구조였다.

모델샵(Model Shop)의 역할
 
해리라고 모델샵 마스터(Model master)가 있다. 내가 들어간 순간부터 거기 있었고 떠나온 지금도 그는 건재하다. 위험한 장비들이 즐비한 샵을 관리하며 프리젠테이션 모형(Presentation model)을 멋들어지게 만들고 마무리해 주시는 분이다. 레이저커터(Laser cutter)나 3D프린터 등 예민한 기기는 안전 관리도 중요하고, 모델 마스터가 없는 경우 현실적으로 모델샵 운영이 불가능하다. 본사와 지사에 몇 명의 마스터들이 있어 필요한 경우 해리와 서로 돕고 함께 일한다. 이곳에서는 레이저커터나 직쏘(Jigsaw) 등을 활용해 스터디모형 뿐만 아니라 스프레이까지 뿌려 디테일하게 표현한 파이널 프레젠테이션 모형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해리의 손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은 아름다웠다.
 
오피스에서 공용 공간과 함께 가장 중심이 되는 모델샵은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방문자들에게도 일종의 쇼케이스(Showcase) 역할을 하며, 우리 모두에게 회사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 인식됐다. 회사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자동차 디자인으로 유명한 디자인스쿨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모형 자동차가 3D밀링머신(3D Milling machine)의 유리박스 안에서 형상화되는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건축사사무소의 업무 공간에서도 샵에서 모형들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이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보여져 인상적인 쇼케이스의 역할을 하도록 할 수 있다.
 
협업(Collaboration)
 
콜라보 혹은 협업(Collaboration)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리기 시작한지 이제 제법 되었다. 내가 일했던 건축회사가 자랑하는 부분 중 하나가 많은 대형 설계사무소의 장점이기도 한 리소스(Resource)의 풍부함과 다양성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것이 여러 분야에 경험을 쌓아온 건축, 조경, 인테리어, 도시 계획(Urban planning) 등의 전문가들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건축 포트폴리오와 프로세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 본사와 지사들 각각의 규모와 전문 분야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경우에 따라 필요에 따라 경험이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마스터플랜 팀이 강하게 포진하고 있는 지사가 있었고 조경디자이너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지사도 있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출장이나 파견 근무 형태로 움직이며 일했다. 병원 프로젝트의 경우 당시 내가 일하던 사무소에는 없었던 메디컬 플래너(Medical planner)가 있는 지사와 협업하였는데 나의 경우도 병원 설계공모에 참여하여 본사에 파견근무를 하며 병원 설계에서 전문성있는 플래너의 필요성에 대해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해외 프로젝트의 경우 현지의 설계사무소 사람들과 일정기간 함께 일하며 현지 협력업체(Consultant)와 바로 회의하며 이슈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디자인 프로세스(Design process)

프로젝트가 정해지고 팀이 결정되면 가장 먼저 디자인 회의(Design Charrette)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이 시점엔 직급에 관계없이 주어진 제한시간 안에 자신의 컨셉(Concept)을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나 모형을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 이 과정에 참가한 사람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회사 전체 디자인 파트너들도 배운지 며칠 되지 않는 라이노(Rhinoceros)를 마우스도 없이 노트북 패드로 3D 작업을 하는가 하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어두운 오피스 구석에서 혼자 열선으로 스티로폼 모형을 만드는 모습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들에 대한 평가와 선정은 모두에게 공평한 한 표를 주어서 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은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디자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녹아 있는 프로젝트를 더 이해하고 애정을 갖고 일하게 된다. 이는 한 사람의 디자인 리더가 회사전체 디자인 성향이나 파워를 이끌어가기보다 구성원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모두 모아 다시 한번 전체 리뷰를 거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체가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디자인이 창조된다.


건축회사(Architecture Firm)로서의 지속가능성
 
첫 출근 이후 귀국을 위해 회사를 떠날 때까지 소소한 것부터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부분은 회사는 디자인 잘하는 건축회사로서 최적화된 시스템을 찾고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사무소(Corporate firm)이면서 전체적으로 디자인 품질(Design quality)을 올리고 체계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회사 정책(Firm policy)을 개선하고 노력하는 것을 목격했다.
 
시대정신(Zeitgeist)을 반영하는 건축설계를 하는 회사를 운영한다는 일은 녹록치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오랜 시간 품질이 높은 디자인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창조해내면서 건축주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이를 위해 스스로를 정의하고 그에 맞게 발전시키려는 꾸준한 행위가 회사를 단단하게 하고 구성원들이 좀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미국에서의 회사 생활은 건축회사가 그때 그때 주어진 일만 빠르게 처리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기초를 단단히 하고 시대 변화에 대응하면서 자성하고 개선하며 거기에 맞는 건축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는 계기가 됐다. 지속가능한 건축회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글. 조소은 Cho, Soeun 인트리그(INTRIGUE) 대표 · 미국 건축사

 

조소은  인트리그(INTRIGUE) 대표 · 미국 건축사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건대학교에서 건축석사 학위 취득 후 ㈜희림 종합건축사사무소 및 NBBJ 에서 건축실무를 했다. 미국 및 아시아의 상업, 문화, 공공, 스포츠 시설 등의 마스터플랜과 건축 설계 프로젝트에서 Lead Designer로서 업무를 수행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CJ E&M 사옥, Eton Shenyang 복합건물, Karamay Expo Center, Hangzhou Olympic Sports Center 등이 있다. 2013 년에 귀국하여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인트리그(Intrigue)’를 설립해 건축 및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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