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내가 프리츠커 상을 타지 못한 이유

2023. 1. 7. 09:14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건축상이 존재한다. 아쉽게도 사회적 권위와 명성을 확보한 건축상의 존재는 자신할 수 없다. 국전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어 왔던 과거 건축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각 부처가 담당하는 건축상도 우후죽순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국토교통부에 이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에서 부여하는 건축상도 수없이 많다. 
이렇게 많다 보니, 우리나라를 대표할 건축상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건축 수준을 높이는 방법으로 해외 유수의 건축사사무소에 파견지원을 하면서 프리츠커 상을 언급했다. 매우 투박한 사고방식이다. 차라리 ‘로마의 미국학술회(American Academu in Rome)’나 ‘로즈 장학금(RRhodes Scholaship)’ 같은 제도를 언급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런 개념과 유사한 것은 재미건축사인 김태수씨가 주는 ‘김태수장학 TS Kim’ 상이 있어서 매년 시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프리츠커 상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다. 사회적 태도와 수용하는 능력이 커지지 않으면 결코 프리츠커 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공공건축이어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설계를 해야 상을 받는 사실에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건축 중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 대상들을 보면 그나마 건축 완성도에 무게중심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스스로도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건축 완성도 따위는” 관심 없고, 그 용도의 건물을 짓는 것에 여전히 무게중심을 두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설계비를 줄여야 할 경비나 비용으로 생각하는 발주처 앞에서 과연 후대의 유산이 될 도시를 남겨줄 수 있을까?
이런 공감대 차원에서 이번 건축 담론으로 다양한 건축계 인사들에게 의견을 받았다.

 


Why I didn't win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어이없는 비웃음과 함께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잠깐 시선을 붙잡았다면 우선 제목 설정은 성공한 셈이다. 물론 우문에 대한 현답은 ‘너 자신을 알라’ ‘제 탓이지’ 그런데 과연 그러하기만 한 건가? 그렇다면 얼마 전 정부에서 발표한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NPP)사업대로 세계의 유수 사무실에서 쪽집게 선진 설계기법을 배워오면 누구나 탈 수 있을까?
비약적이긴 하나 프리츠커를 핑계 삼아 우리의 현실을 파헤쳐 보자. 내가 프리츠커 상을 포기(?) 할 수밖에 없는 남 탓에 대하여...

아는 바와 같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프리츠커 상은 매년 “건축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들과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사”에게 수여하는 청동메달이다. 문장 가운데 공통분모라곤 ‘생존한’ 밖에 없는 나는 우선 열외이고, 가진 거라곤 세계 최고 수준 두뇌의 국민성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우수한 건축사들은 이웃 일본이 8명을 배출해온 동안 어찌 단 한 번도 영예를 누리지 못했을까? 

최근 이 상의 심사기준은 개개 ‘건축물’에서 건축의 ‘공공성’으로 바뀌고 있다. 건축의 영역이 도시와 사회적 역할로 확장되는 추세다. 2014년 반 시게루 이후부터 수상자들의 경향이 주로 공공건축 분야에서 탄생한다. 최근 들어 공공건축을 통한 사회적 기여부분을 그 무엇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음이다. 올해의 수상자인 일본의 ‘이소자키 아라타’에 대한 심사평은 “그의 건축에서는 환경과 사회적 요구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고 했다. 작년 수상자인 인도의 ‘발크리슈나 도시’ 역시 빈민들을 위한 아라냐 공동주택에서 보여준 “사회와 인간에 기여하겠다는 책임감, 사회·경제·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건축”이 심사위원단의 수상 이유였다.

이쯤에서 우리 공공건축이 처한 현실을 한번 살펴보자. 민간건축은 말 할 것도 없고 아직까지 우리 공공건축 환경은 바탕부터 우리 건축사들의 역량을 키우기엔 너무나 열악하다. 기획이나 전략의 부재로 오로지 물량조달만이 정책목표인 상황에서 설계, 시공 등 부실한 생산주체시장으로 방치되어 온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이제까지 대다수 공공건축의 설계자 선정은 요행에 가까운 방식에서 가장 저렴한 설계비를 제시하는 가격입찰방식이었다. 설계비 1억 이상이면 공모방식으로 변경되는 등 최근 설계공모를 통한 선정방식으로 많이 전환되고 있긴 하나 여전히 많은 소규모 공공건축물들의 설계는 요행 끝에 얻은 가장 싼 낙찰가만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나마 공모방식은 공평한 기회로 설계자를 선정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최상의 방법인 듯도 하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의 도전이 끊이질 않고 갈수록 활성화되어 다양한 팀에 의한 훌륭한 결과물들이 줄을 이어야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언제부턴가 공모 참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궤변이 지배적 분위기다. 이는 각자의 디자인능력, 기술력, 경제력, 기타 인력과 시간 등 많은 이유에서 아무나 덜컥 도전하기엔 무리일 수 있다는 논지로 언뜻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제출한 작품이 본질만으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아심, 빈약한 로비력, 심사위원의 자질, 발주처의 평가방법, 점수배분방식 등에 대한 의구심, 즉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 또한 지자체에 따라 공개적인 방식으로 설계자의 설명을 듣고, 토론을 거쳐 투명하게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긴 하나, 공정심사는 유사 이래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공모에 당선되어도 난관은 지금부터다.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설계비 감액협상, 주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건 세상의 이치인걸, 답답한 노릇이다. 턱없이 부족한 설계기간, 무슨 심의는 그렇게 많으며 무슨 보고회는 또 그리도 많은지, 각종 심의위원들의 개성, 기관장의 기호에 따라 몇 바퀴 돌고 나면 당선안은 간데없고 생뚱맞은 낯선 물체로 돌변해 있다. 장담컨대, 그동안 원안대로만 지어져 왔다면 우리도 10개 정도의 청동메달을 가져오지는 않았을까? 

망상임을 잘 알고 있다. 서두에서 밝혔듯, 프리츠커는 핑계일 뿐, 그 세계는 나와는 차원이 한참 다른 별 세계임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해외토픽 중의 한 줄 정도였지 별 관심도 없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찌 지금까지의 두서없는 서술이 프리츠커를 타지 못한 이유가 될까. 빗대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고 싶었다. 위의 서술 또한 소규모 공공건축에 대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유례없는 불경기 속에 간소화는커녕 갈수록 쌓여가는 각종 규제, 끝도 없는 중복심의, 기약 없는 허가기간, 원칙 없는 부실한 설계시장 등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고단한 현실에 대한 긴 넋두리를 토하고 싶었던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실없는 독백은 이쯤에서 접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서술이 길었다. 푸념, 넋두리만 하고 있을 것인가. 남 탓은 무슨, 스스로를 돌아보자. 건축사의 위상,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일, 한동안 남 탓만 해 왔었다. 여전히 설계사로 통용되는 이 사회를 향해 왜 우리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느냐고. 이제라도 똘똘 뭉쳐, 규제는 풀어가고 잘못된 관행은 바로 잡아가자. 그리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가치를 높여 오히려 천직으로 알고 있는 건축설계, 이 일만으로도 가치 있게 해내고 제대로 대우받는 환경을 만들어 가자. 나름의 원칙과 자존감으로 브로커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덤핑은 영혼을 파는 행위와도 같다며 설계비 제값받기에 앞장서는 훌륭한 선배 건축사를 여럿 보아왔다. 항상 노력과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역량을 키워가는 훌륭한 후배 건축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BTS가 세상을 휘어잡고 있는 시대에 머지않아 이들 또는 고매하신 분들 가운데 메달을 가져 오는 이가 당연 있을 것이다.

올해 이소자끼 선생이 87세, 작년 도시 선생이 91세, 그렇다면 너, 나, 우리도 속단은 이르겠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생존한’이 우선 필수다.

 

글. 조형장 Cho, Hyungjang 건축사사무소 메종 <부산광역시건축사회>

 

조형장  건축사사무소 메종

 

조형장은 동아대 건축과를 졸업,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부산건축사회 미래전략위원장과 건축사신문 논설위원, 부산건축제 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겸임교수, 한국해양디자인기술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최근 주요 해양건축 및 공공프로젝트로는 △부산항 거점형 마리나 항만개발계획 △부산 해양정책 플로팅아일랜드 리조트 개발계획 △감천문화마을 작가레지던시 △홍티예술촌 등이 있다.

 

jecr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