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7. 09:12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건축상이 존재한다. 아쉽게도 사회적 권위와 명성을 확보한 건축상의 존재는 자신할 수 없다. 국전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어 왔던 과거 건축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각 부처가 담당하는 건축상도 우후죽순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국토교통부에 이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에서 부여하는 건축상도 수없이 많다.
이렇게 많다 보니, 우리나라를 대표할 건축상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건축 수준을 높이는 방법으로 해외 유수의 건축사사무소에 파견지원을 하면서 프리츠커 상을 언급했다. 매우 투박한 사고방식이다. 차라리 ‘로마의 미국학술회(American Academu in Rome)’나 ‘로즈 장학금(RRhodes Scholaship)’ 같은 제도를 언급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런 개념과 유사한 것은 재미건축사인 김태수씨가 주는 ‘김태수장학 TS Kim’ 상이 있어서 매년 시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프리츠커 상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다. 사회적 태도와 수용하는 능력이 커지지 않으면 결코 프리츠커 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공공건축이어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설계를 해야 상을 받는 사실에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건축 중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 대상들을 보면 그나마 건축 완성도에 무게중심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 스스로도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건축 완성도 따위는” 관심 없고, 그 용도의 건물을 짓는 것에 여전히 무게중심을 두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설계비를 줄여야 할 경비나 비용으로 생각하는 발주처 앞에서 과연 후대의 유산이 될 도시를 남겨줄 수 있을까?
이런 공감대 차원에서 이번 건축 담론으로 다양한 건축계 인사들에게 의견을 받았다.
Our conferring is hopefully worth more than award
사람의 수상욕심은 어렸을 때부터 각인된 DNA일 것이다. 체력이 국력이라고 한 시절의 올림픽에서의 상은 나라를 알렸고, BTS의 빌보드 상은 금메달보다 더 어렵다고들 한다. 국가대표급의 수상은 국민들을 웃게 만드는 효과만점의 한 방이다. 국토부의 프리츠커 프로젝트(NPP)는 건축계에서는 거센 반향이 있었지만, 준비해준다는 데 안 받는다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라 씁쓸하다. 상을 둘러싼 애증만 남을 뿐인가? 에둘러 가는 길도 한번 가볼 것인가?
미국의 American Academy in Rome은 1896년부터 매년 15명의 아티스트, 작가, 건축사들을 선발하여 로마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건축에서는 스티븐 홀, 리차드 마이어, 찰스 무어 등의 미국인들이 1970년대에 젊었을 때 선정되어 로마에서 공부하며 일할 기회를 가져서 자신만의 건축어휘 형성에 빠른 기회를 가졌다. 세계적인 건축상의 수상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지만, 장학금과 같은 형식의 지원은 저변확대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이런 후학양성방식의 방식 말고 건축의 역사에서 증명된 또 다른 방식의 저변확대를 생각할 수 있다. 19세기 말 독일의 건축공무원 헤르만 뮤테지우스(Herrmann Muthesius, 1861-1927)는 1896년에 런던에 독일대사관에 파견되어 그 후 6년 동안 영국의 수공예운동에서 비롯된 영국 중산층의 실용적인 주택에 대하여 직접 조사하고 연구하여서 1905년에 영국의 집(Das Englishe House)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산업혁명 후 영국의 집들은 실용적이며 동시에 수공예적인 텍토닉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가장 근대적으로 발전된 주거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의 리더십을 따르고자 했던 독일은 헤르만 뮤테지우스의 저작이 시의 적절했으며, 건축에서는 자체적으로 공방문화를 독일공작연맹(Werkbund)으로 탈바꿈하여 영국에 비해서는 늦었지만 오히려 더 영향력있는 근대건축문화를 이루게 됐다.
시대가 흘러 모든 가치가 변하는 현대문화에서 최근 프리츠커 상의 심사기준은 ‘건축의 우수성’에서 ‘건축의 공공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프리츠커 상 수상자인 이소자키 아라타의 건축은 “환경과 사회적 요구에 대한 섬세한 배려”라는 평을 받았으며, 2018년 수상자인 발크리슈나 도시 역시 “사회와 인간에 기여하겠다는 책임감, 사회·경제·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건축”으로 공공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건축은 건물이라는 한정되었던 범위를 넘어 도시, 사회, 인간, 환경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건축은 이제 복합적인 물음이자 사회적 요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열악한 건축 설계 환경과 제도적 지원, 그리고 경제위기와 경기불황을 소위 존버하고 있는 건축사들에게는 너무나 무겁고 가혹한 멍에가 아닐 수 없다.
건축사들이 처한 상황과는 무관하게 정부의 제안은 NPP사업이었고 이는 건축계의 거센 반향을 가져왔다. 최근의 프리츠커 수상자들은 공공성있는 건축을 통해 사회적 소임을 함으로써 탄생하지만 우리의 공공건축 환경은 턱없이 열악하다. 내년부터는 설계비 추정가격이 1억 원 이상인 공공건축물은 설계공모방식을 통해 최적의 설계안을 선정한다. 이는 도시공간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디자인 향상을 통해 변화하는 건축문화의 패러다임에 발맞추기 위함이다. 우수한 안이 당선되더라도 실현 과정에서 각종 심의와 인증제도의 벽에 막히고 결국 재료와 시공 단계에서 싼값으로 저질 건축이 되기 십상이다. 즉, 상을 받을 후보자도 넉넉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왜 상을 타오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아이러니와 모순의 상황에서 공공건축의 실현과정을 개선하기 보다는 늘어나는 각종 건축상을 통해 달래기에 급급하다. 물론 상 자체는 젊은 건축사들이나 소규모 아틀리에에게 좋은 홍보 수단이자 보상이 된다.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공건축가제도 역시 건축사들에게 비슷한 효과를 줄 것이다.
건축사들에게 공모전이나 다양한 건축상의 수상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상을 받았느냐 보다는 어떤 상을 받았는지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상을 탄생시킨 사회의 건축문화의 저변이 얼마나 심도 있고 성숙했느냐는 사실일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관련 학계와 실무 전문가들은 보다 나은 건축과 도시의 공공성을 위하여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으나 현실의 변화는 더디다.
상의 수가 많아서 많은 건축사들이 상을 받고 수면 위로 등장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며, 상을 받은 이들이 더욱 의욕 충만하게 건축과 도시의 성장에 일조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그들이 제대로 역할 할 수 있는 공공 건축의 토대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상은 그 자체로 가치와 영향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프리츠커 상이 건축계의 노벨상이자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건축계가 나아가야하는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상이 갖는 무게는 그 상의 의미와 가치에서 나온다. 우리는 안다. 어떤 상이 수상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지, 어떤 상이 그저 수상의 기쁨만을 주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수상授賞은 수상受賞보다 가치 있어야 한다.
글. 송하엽 Song, Hayub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미국건축사
송하엽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 후 미시건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과정, 펜실바니아대학에서 데이빗 레더배로우(David Leatherbarrow) 교수의 지도아래 ‘파사드 포셰: 마르셀 브로이어, 리처드 노이트라, 호세 루이 서트 건축에서 창-벽 기능의 표상(Facade-poche: Performative Representation of Thickened Window-Walls in the Works of Marcel Breuer, Richard Neutra, and Jose Luis Sert)’ 논문으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필라델피아에서 건축사로 활동하며, 미술관, 청소년관, 공동주거 등을 설계했다. 2009년부터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디자인과 역사 및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건축과 도시, 환경의 공통영역을 다루는 건축, 도시, 공간환경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hysong@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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