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4.3그룹의 모더니즘과 이 시대 우리의 건축

2023. 1. 11. 09:2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건축은 산업이면서, 기술이고, 문화고, 예술이다. 물론 건설을 동반해야 한다. 혹자는 이런 부연 설명을 마다하고 “건축은 건축이다”라고 말한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공감하지만 건축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이나 문화, 예술로 빗대어 설명해야 한다.
건축은 한마디로 이런 모든 인문학과 공학을 담고 있다. 인문학과 공학을 엮으면 사유가 되고, 이는 철학이 된다. 그래서 건축의 연대기를 보면 수많은 철학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당연히 상징과 이면의 내용을 언급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학과 인문학적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건축에 ‘~ISM'을 붙인다. 철학이다. 그리고 이는 여러 건축을 구분하는 논리적 바탕이 된다. 
사실 우리나라 건축에서 가장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절실한 것이지만, 조선시대 이후 산업화 과정을 지나는 동안 우리에게 부재한 것이기도 하다. 존재가 없었다. 조선 건축 이후로 구분 지을 만한 건축의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다. 움직임도 크게 없었고…….
지난 19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에 IMF 경제 위기가 오기 전까지 ‘한국적’ 건축의 정체성 부재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어떤 구체적 철학적 이야기나 바탕이 만들어지기 보다는 한국 건축 ‘사회’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3040 건축계 인물들이 논쟁을 시작했다. 아마도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바로 ‘43그룹’이라고 하는 일단의 인물들이다. 이런 시도는 더 많아지고 치열해지고 다양해야 하지만, 산업 건축 주류인 우리나라에서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들 ‘43그룹’은 오늘날 대한민국 건축계의 원로들이 되었다. 
최근 “다시 한국 건축을 고민하자”는 언급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건축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서라도 우리 건축에 대해서 뜨겁게 논의했던 그 시절의 ‘43그룹’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이번 건축 담론에서는 ‘43그룹’이 다음 세대들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02 Modernism of the 4.3 Group and Echoes of an Era

 

“근대건축은 비인간적이므로 실패했다는 주장은 소위 국제주의 양식의 건축과 모더니즘 건축을 동일시하는 시각이다.” (이종상, 1992)
“재해석의 첫 대상은 모더니즘이다.” (민현식, 1994)
“여기서 얻은 결론은 비판적 모더니즘이나 비판적 전통건축으로 대응하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경국, 1994)

4.3그룹이 결성된 때가 벌써 30년 전이니 그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게 됐음은 분명하다.1) 1990년 4월 3일의 첫 회합 이래 수년 동안 세미나, 답사, 전시, 출판 등으로 함께 활동한 10여명의 소장 건축사들,2) 이들은 스스로를 4.3그룹이라 칭했다. 이 모임은 당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건축계에 내적 성장을 위한 자극을 줬는데, 모임의 중단 후에도 이들은 제각기 유의미한 활동을 지속해간다. 당대 30~40대였던 이 젊은이들은 이제 60~70대의 원로가 됐다. 지난 한 세대에 걸친 그들의 활동이 현재 우리의 건축 지형을 형성한 중요한 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리라.
4.3그룹 활동의 핵심은 결국 ‘공부’였다. 여러 전문가들의 초청강연과 답사, 서로의 디자인에 대한 비평과 방어는 그간 부족했던 학습을 보완했고, 그 바탕 위에 자기의 ‘말’을 벼려 전시와 출판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우리는 그들의 논의 속에서 ‘모더니즘(modernism)’이라는 말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공동으로 출판한 두 권의 책 『이 시대 우리의 건축』(1992)과 『Echoes of an era/ volume #0』(1994)을 보라. 건축역사 속에서 ‘모더니즘’이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의 경향을 가장 대표적으로 지칭한다고 볼 때, 커다란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넘어 1990년대의 한국에 이 말이 그리 중요하게 거론된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구성원들 각각의 건축 및 시대에 대한 인식에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모두 말끔히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당 부분 공유된 입장을 취했는데, 모더니즘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말머리에 인용한 세 문장을 보자. 전술한 두 권의 책에 출판된 서로 다른 세 사람의 글을 발췌해 조합한 것이다. 논리구조가 삼단논법에 기댄 듯 완결적인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세 번째 문장의 “비판적 전통건축으로”를 유보하면) 20세기 건축에 대한 교과서적이고 모범적 인식으로 보인다. 이는 당대 4.3그룹 멤버들 대개가 공유한 인식이었고, 지난 세기 한국 건축계 전체의 중심적 사고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첫 문장은 근대건축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채 외래사조를 무분별하게 수입한 한국 현대건축의 혼란을 꼬집은 이종상의 말이다(「1992.12 서울」, 1992). 당대의 상황을 “세기말”로 여기며 포스트모던이나 해체건축의 모방, 그리고 상업주의적 난개발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동료들의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승효상은 현란한 형태와 색상의 건축적 현실을 19세기 말 유럽의 “포촘킨 도시”에 빗댔는데(「빈자의 미학」, 1992), 이들에게 근대건축을 강의했던 김광현은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나 해체주의자가 되려면 먼저 근대건축에 철저해야 함을 역설했다(「근대건축 세미나 II」, 1992.5.30). 여기에 동반된 것이 아돌프 로스나 르코르뷔지에, 그리고 루이스 칸과 같은 대표적 모더니스트들에 대한 학습이었다. 침묵과 빛, 건축의 영속성 등 이 거장들의 건축에 대한 깊은 탐색은 “근대건축은 ... 실패했다”는 식의 찰스 젱크스적 진단에 제동을 건다. 혹시나 실패한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전체의 일부인 “국제주의”일지 모른다. 고로 근대건축을, 혹은 건축의 “모더니즘”을 다시 읽고 “재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민현식에게서 가져온 두 번째 문장이 이를 말한다(「지혜의 시대, 우리의 건축」, 1994).
모더니즘의 재해석에 대한 결론, 즉 세 번째 문장의 콘텍스트에서 우경국이 각종의 답사와 독서를 통해 얻은 결론은 “비판적 모더니즘” 혹은 “비판적 전통건축”을 통한 대응이었다(「흐르는 회색 공간」, 1994). 급격한 세계화와 상업화 속에서 우리 건축이 무분별한 외래사조 및 형태어휘로 가득했던 1990년대 초, 4.3의 젊은이들은 서구의 모더니즘을 중요한 공통 기반으로 학습하고 그것을 한국적 현실에 “비판적”으로 적용하려 했다. 비록 각각이 모더니즘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편차가 컸지만 말이다. 즉, 그들이 수용한 서구의 모더니즘은 필연적으로 여러 비판적 필터를 통해 걸러진 “비판적 모더니즘”일 수밖에 없었다. 그 필터는 “마당의 비움”이든, “서정적 추상”이든, 현대 “도시의 풍경”이든, 결국 우리의 ‘무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필터는, 민현식(1994)에 근거해 말한다면, “왜곡된 민족주의”나 “감상적 한국성”이 아닌 “세계적 보편성”을 내포해야 했다. 이는 동시에 “맹목적인 근대추종”과 “로맨틱한 서구부정” 모두에 대한 경계 역시도 함의하는 것이었다. 

서구의 모더니즘을 우리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비판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새롭지 않은, 이전부터 있었던 당연한 논지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바는 지난 세기 말 우리 젊은 건축인들이 주장한 비판적 모더니즘이 반성적 모더니즘이라는 세계적 흐름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들의 문맥에서는 케네스 프램튼의 “비판적 지역주의(Critical Regionalism)”(1983/1985)를 떠올릴 만하다. 주지하듯 이 개념은 보편적 세계 문명을 수용하면서도 지역 문화의 가치를 견지하려는 패러독스적 태도로서 현재까지도 영향력이 작지 않다. 우경국은 4.3그룹 결성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한 글에서 자신들이 표출한 이념 중 하나가 “비판적 지역주의”였다고 주장했는데(『공간』, 1990.8), 앞서 본 민현식의 어법이 프램튼의 입장과 조응한다. “현대 문명의 중심지에서 벗어나 있는” 주변에서 대안적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면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요점은 프램튼이라는 세계적 비평가의 개념에 대한 칭송이 물론 아니다. (우리는 이제 그의 개념을 비판할 여유도 누린다.) 그보다는 4.3그룹이 당대 제기된 유력한 건축 개념을 논의할 만큼 세계적 흐름에 민감히 반응했고, 실제 이를 한국적 현실에 대입하려 나름 고투했다는 사실이다. 김광현이 『이 시대 우리의 건축』 서문에서 비판했듯 이들의 “유토피아의 언어”가 한계를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들은 이러한 고투 위에 성장했고 부족하나마 현재의 한국건축을 일궜다. 이 점이야말로 4.3그룹이 한 세대를 지난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그들의 족적이 외형적으로는 건축계의 교육이나 제도 개선 등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이 어떠해야 할까에 관한 담론이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2020년,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은 어떠해야 할까? 이제는 ‘우리의 흐름’이 ‘세계적 흐름’이라 말해야 할 때가 오고 있지 않나? 선배들의 물음에 후배들이 답해야 할 차례다.***

 

 

 

 

 

 

 

 

글. 김현섭 Kim, Hyonsob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김현섭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서양 근대건축을 공부했고, 2008년 모 교인 고려대에 임용된 이래 건축역사·이론·비평의 교육과 연 구에 임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한국 현대건축에 대한 비판적 역 사 서술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 사』(2016), 『건축을 사유하다: 건축이론 입문』(2017), 「DDP Controversy and the Dilemma of H-Sang Seung’s “Landscript”」(2018), 「The Hanok Paradox: Modernity and Myth in the Revival of the Traditional Korean House」(2019) 등의 단행본과 논문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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