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파이를 키우자 : 건축사 본연의 역할 회복, 설계의도 구현의 필요성 2020.4

2023. 1. 12. 09:2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건축사의 핵심 업무는 설계를 잘하는 것이다. 그것은 품질이든 디자인이든 모두 해당한다. 법적으로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건축사들의 원작이 훼손되지 않고 본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적 보완책이다.
그런 제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 건축계는 척박하다. 광교 갤러리아를 설계한 네델란드 OMA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부다비 루브르박물관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사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건설사들이 시공을 위한 대부분 도면을 이들 건축사사무소로부터 승인을 받는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원 설계의 의도를 임의로 바꾸거나 훼손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방식이 정답은 아니다.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사고가 달라서 그 나라에 맞는 방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건축사의 원작 설계는 그대로 표현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완벽한 설계도면이 가능한가? 건축사가 시공사의 영역을 완벽하게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이유로 시공 도면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 시공을 위한 도면은 건설사가 작성하는 것이 맞다. 그들의 노하우는 시공 용이성과 경제성을 반영해서 개발하고 그렇게 시공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전제가 디자인을 바꾸거나 건축사의 설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시공 현장은 쉬운 길을 간다. 디자인을 임의로 바꾸거나 형태를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제도들이 나오고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설계의도 구현이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제도라 아직 경제적 대가 등의 기준이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건축 담론 주제로 설계의도 구현을 대상으로 했다. 물론 시공사 선정 및 선택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시공사가 제대로 선택돼야 건축사의 설계 의도가 명확히 구현되기 때문이다.

 


 

02 Let's expand the capacity : the need to restore the original role of architect and to implement design intention

 

재작년 말 무렵,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단어는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건축사들에게도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경우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표현일지 모른다. ‘설계의도 구현’업무는 건축설계자가 현장에서 수행하는 공사단계 업무로 설계의도에 부합하여 시공자가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후설계관리 업무’, ‘디자인 감리’ 등과 유사한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설계의도라는 말은 건축사가 ‘건축주’와 ‘공공’을 위해 제안한 최종적으로 확정된 설계안이 담고 있는 의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건축물은 시공단계에서 ‘건축주’와 ‘공공’을 위해 그 의도를 구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후설계관리 업무’ 및 ‘디자인 감리’ 등 공사단계의 설계자 참여를 위해 제시된 업무들은 각각 다른 여러 법령들에 의해 제안되어 왔지만 그 어느 하나도 실제로 실행되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제22조 설계의도 구현)에서 ‘설계의도 구현’에 대한 업무를 제시하며 이를 수행가능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이후 이를 제도화 하고자 하는 과정이 진행 중에 있다. 해당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업무범위 및 업무대가 확립 등 해결하고 풀어야 할 숙제들이 아직 산더미 같이 있지만, 설계자의 시공단계 참여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보다 나은 건축환경 구축을 위한 의미있는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건축사 본연의 역할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건축사의 업무를 설계로 국한시키지 않고, 건축사의 기본업무로서 업역과 그에 따른 대가를 재정립하기 위해, 국내의 현황에서는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업무이다. 국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현재 국내의 여건에서 설계의도 구현이 왜 필요한지를 소개하면서, 많은 건축사들과 함께 해당 업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싶다.

국내의 경우, 그동안 건축사의 공사단계 업무를 ‘감리’라는 일본에서 수입된 용어로만 국한하여 사용해 왔던 까닭에, 제도적으로 ‘감리’업무를 설계자가 못하게 되는 순간, 설계자가 공사단계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선진국 중에 설계자의 공사단계 참여를 법과 제도로서 막고 있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선진국1)을 중심으로 한 국외의 사례를 보면, 건축사의 기본업무는 항상 ‘설계업무’와 ‘공사단계업무’를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고, 건축사의 공사단계 참여는 건축사의 기본업무로서 보장받는다. (그림 1-1 참고) 이때, 건축사의 기본업무로서의 공사단계 업무가 바로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업무이다.

즉, 국내에서 건축사의 기본업무는 보통 설계업무로 국한하여 정의하는 경향이 있고, 설계 이후 공사단계의 모든 업무는 감리라는 명칭으로 뭉뚱그려져 있지만, 국외의 사례에서는, 건축사의 기본업무는 설계뿐 아니라 공사준비단계업무와 이후에 공사단계업무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업무에 대한 대가 또한 국내에서는 통칭 ‘설계비’에 대한 대가를 받을 때 국외에서는 건축사의 ‘기본업무’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그림 1-2] 국외 사례의 건축사의 단계별 기본업무,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공공건축 실태조사 연구, 국가건축정책위원회, 2019



유럽-미주-아시아를 대상으로 국외의 5개 국가(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일본)들의 경우를 정리해보면, 각 국가별로 [그림 1-2]의 표와 같이 건축사의 기본업무가 다양한 단계로 각국의 실정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국가별 제도적·단계적 업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공통으로 정의하고 있는 업무를 정리해보면, 설계자의 ‘기본업무’는 항상 ‘설계업무’와 ‘공사단계 업무’를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때, 공사단계의 업무는 설계의도 구현을 위해 설계자가 수행하는 업무를 기본업무로 하고 있다. ([그림 1-2] 참고)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업무로서, 공사단계에서 비전문가인 건축주(그리고 공공)를 대변하여, 설계자는 건축전문가로서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이 시공자에 의해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대로 시공되도록 현장을 방문하고 검사를 하고 시공상황을 파악한다. 이때, 설계자는 공사단계 참여를 통해서 건축물들이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바에 따라 공간환경을 갖추고, 형태-규모-재료-시공수준 등을 포괄하여 디자인의 품격을 갖추며 시공되는지를 검토 및 확인한다. 또한 공사현장이라는 얘기치 못한 조건과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특성으로 인해 현장에서 발생하게 되는 다양한 변경사항에 대해서도 설계자로서 대응하여 설계의도에 부합하여 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한다. 즉, 도시의 일부이자, 건축주의 소중한 자산인 건축물이 그에 걸맞는 격을 갖추며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대로 지어지기 위해 필수적인 전문가의 업무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외사례에서는 공사과정의 건축사 역할을 설계자에게만 맡기는가 의문이 들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업무이외의 업무, 즉, 해당 건축물이 건축물로 ‘기능함’에 있어 문제는 없는지, 구조체와 계단의 치수·폭·층고·건축물의 면적 등에 있어서 구조적으로는 안전한지, 법적으로 위반한 사항은 없는지 등, 건축물이 법적 기준과 공공의 안전에 부합하여 시공되는 지를 검사하는 역할(감리)은 많은 경우 공공에서 주도하여 수행한다.

즉, 공공의 안전과 법적 요건의 준수를 위해 국외에서는 공공에서 시공단계의 감리(Inspection)2)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때 해당 감리 업무의 수행은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공공기관에서 직접 수행하기도 하지만(공공기관의 담당자가 건축사로서 전문가인 경우), 공공기관에서 위탁받은 설계자 혹은 제3자인 건축사가 수행하기도 한다. 즉, 감리업무는 건축사의 기본업무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와 같이, 건축과 공사에 있어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업역의 범위와 역할을 정립해 온 국외사례를 보면, 국내처럼 설계자의 공사단계 참여를 막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설계자는 설계만으로 업무를 종료하지 않고, 이후에 공사준비단계에서도 건축주가 설계도서에 부합하여 시공을 잘할 수 있는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공사단계에서는 설계의도 구현을 위해서 시공자가 설계도서에 부합하여 시공하는지를 확인한다. (그림 1-2의 각국 공사단계 업무 참고) 건축물이 설계되어서 완공될 때까지의 포괄적인 업무가 모두 건축사의 기본업무인 것이다.

따라서 건축사 업무의 대가산정에 있어서도 국내에서처럼 ‘설계비’가 얼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설계만이 건축사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건축사의 ‘기본업무에 대한 대가’가 존재하고, 각 단계별로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 업무를 수행할지를 건축주와 협의를 통해서 대가를 산정할 수 있다. 설계자의 기본역할에 더하여 건축물이 법적 요건과 공공의 안전을 지키며 공사가 이루어지는 지를 확인하고 검사하기 위해 공공 혹은 공공이 지정한 감리자가 공사단계에서 감리업무를 수행한다.

이것이 건축물이 공공의 안전을 보호하면서도 우수한 디자인 결과물로서 사회의 물리적 환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진국들이 확립해온 건축사의 업무에 대한 기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세계 어느 곳에도 유래 없이 설계자가 공사단계에서 법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제3자에 의한 감리로 공사가 더 잘 실행되고 있는가? 공사단계에 수행해야 하는 건축사의 역할로서 감리가 전부인가? 전문가로서 건축사들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설계자가 설계의도 구현의 업무를 공사단계에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축사의 기본업무를 재확립하고, 건축사의 역할을 본연에 맞게 재정립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거라 생각한다. 설계자가 설계의도 구현업무를 함으로써, 감리자는 공공의 안전과 법적 요건을 확실히 점검하여 건축물이 공익에 부합되도록 하는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설계자는 건축물이 설계의도에 부합하여 우수한 공간환경을 갖추며 시공되어 공익에 부합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 혜택은 안전하면서도 훌륭한 물리적 환경을 누리게 될 건축주와 공공에게 돌아갈 것이다.

글을 마치며, 국내에서 설계의도가 더욱 필요한 이유를 몇 가지 더 언급하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던져 보면서, 설계의도 구현업무가 질문이 던지는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국내의 공사여건에는 꼭 필요한 업무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보고 싶다.

· 국내에서 상세시공도서를 제대로 갖추고 공사를 하는 시공사가 얼마나 되는가? 
· 상세시공도서가 부재한 영역의 공사는 어떻게 결정되고 수행되는가?
· 상세시공도서가 없는 상황에서 과연 시공자가 제시한 공사비와 내역이 실제로 지어질 건축물에 대해 충분히 반영하고 있을까? 
· 건축물의 공사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과는 환경적 시간적 여건이 확연히 다르다. 초기에 제시한 재료-장비-인건비 등이 이후 진행되면서 변경될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열악한 현장 여건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며 설계단계 혹은 초기 시공단계에서는 미리 예측이 불가능한 다양한 변수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것이 현장중심의 건축공사의 기본 속성이다. 이에 따른 필연적인 변경사항들에 대해 설계자 없이 적절한 대응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설계의도 구현업무는 제한된 크기의 파이를 더 작게 쪼개어 나누는 것이 아니다. 설계의도 구현업무의 확립을 통해서, 건축사의 업무대가 또한, ‘설계비’가 아닌, 건축사의 ‘기본업무 대가’로 재정립 되어야 한다. 그동안 많은 건축사들이 설계의도 구현에 해당하는 업무를 업무로서 인정받지 못하며 대가없이 무상으로 수행해왔다. 이를 확립하고 사회에 알리는 것이 전문직업인으로서 건축사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서, 건축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본 업무에 부합하는 충분한 크기의 파이를 가지고 건축사가 일할 수 있도록, 업역을 재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글. 남정민 Nam, jungmin 고려대학교 조교수 · AIA

 

 

남정민 고려대학교 조교수 / AIA / 서울시 공공건축가 /

OA-Lab 건축연구소(www.OA-Lab.com)

남정민은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OA-Lab건축 연구소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학교의 디자인 연구와 실무를 통한 현실적용 간의 상호 연계를 통해서, 관찰과 실험에 기반 한 디자인이 일상 속에서 삶의 경험을 담고, 사회와 물리적 환 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연세대 학교에서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설 계석사(M.Arch I) 학위를 받았다. 이후 KVA, OMA, Safdie Architects 등 다양한 사무소에서 인턴과 실무경험을 수행 한 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하버드대 학원에서 졸업논문상 파이널리스트 및 추천장을 받으며 졸업 하였고, 2009 AIA미국건축사협회(MA주 챕터)의 주택공모 전 대상, 2015 AIA미국건축사협회(국제 챕터) 건축부분 대상, 2018 젊은건축가상(문화체육관광부) 등 다수의 수상을 했다.

nammin54@gmail.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