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건축물 설계의도 구현의 필요성과 방향 2020.4

2023. 1. 12. 09:24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건건축사의 핵심 업무는 설계를 잘하는 것이다. 그것은 품질이든 디자인이든 모두 해당한다. 법적으로 설계의도 구현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건축사들의 원작이 훼손되지 않고 본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적 보완책이다.
그런 제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나라 건축계는 척박하다. 광교 갤러리아를 설계한 네델란드 OMA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부다비 루브르박물관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사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건설사들이 시공을 위한 대부분 도면을 이들 건축사사무소로부터 승인을 받는 식으로 일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원 설계의 의도를 임의로 바꾸거나 훼손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방식이 정답은 아니다.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사고가 달라서 그 나라에 맞는 방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건축사의 원작 설계는 그대로 표현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완벽한 설계도면이 가능한가? 건축사가 시공사의 영역을 완벽하게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이유로 시공 도면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 시공을 위한 도면은 건설사가 작성하는 것이 맞다. 그들의 노하우는 시공 용이성과 경제성을 반영해서 개발하고 그렇게 시공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전제가 디자인을 바꾸거나 건축사의 설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시공 현장은 쉬운 길을 간다. 디자인을 임의로 바꾸거나 형태를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제도들이 나오고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설계의도 구현이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제도라 아직 경제적 대가 등의 기준이 정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건축 담론 주제로 설계의도 구현을 대상으로 했다. 물론 시공사 선정 및 선택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시공사가 제대로 선택돼야 건축사의 설계 의도가 명확히 구현되기 때문이다.

 


 

01 Need and plan to implement building design intention

 

건축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 중 하나는 길을 가다가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내가 설계한 건축물이 도심 속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다 큰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이 된다. 그러나 현장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그 자식이 남의 손에 키워진 것과 같은 경우에는 그 뿌듯함과 보람이 식어짐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내가 고민하며 결정했던 디자인의 일부 모습이나 재료의 색상이나 텍스처가 변경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면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필자는 항상 설계는 자식을 낳는 것으로, 공사감리는 자식을 키우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제도는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설계자가 공사감리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별로 많지 않다. 국내 전체 허가 연면적의 20% 전후를 차지하는 공동주택과 35%를 전후하는 공공건축물의 경우를 비롯하여 건축법으로 시행되는 대부분의 주택과 책임감리를 해야 하는 일부 다중이용시설물의 경우에는 설계자가 감리할 수 없도록 아예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공사감리 업무에서 지금보다 적극적인 점검의식의 필요성이 건축사들에게 인식되고 있으며, 체계적인 점검내용들이 구체적으로 확보되었으며, 공사현장의 부실을 억제하며, 제값도 못 받고 책임만 지고 있는 공사감리의 불리한 현실을 타파하고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감리는 설계의 연장’이라는 건축의 기본적인 요소를 없애고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22조(설계의도 구현) 제1항에 명시한 설계자의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이러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지금은 우선적으로 설계비 1억 원 이상의 공공건축물의 경우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민간건축물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확대되고 있다. 건축물을 설계한 설계자가 현장에 가서 본인이 설계한 건축물이 설계한 것과 같이 시공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건축 재료의 원가절감 및 품절 등의 이유로 인한 재료의 변경여부와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거나, 불가피하게 변경이 필요한 디자인 일부 변경 등에 대하여 설계자가 관여할 수 있도록 의무화시킨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공공건축물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든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설계자로 하여금 설계의도 구현 업무를 통하여 현장업무에 관여하게 하는 것은, 아기를 낳은 엄마에게 키울 권한을 주지는 않았지만, 쑥쑥 자라고 있는 아이를 자주 만나 부모의 사랑과 가치관을 전할 수 있는 면담권을 주는 절실한 경우와 다를 바 없다.

 



건축물의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크게 나누어 다섯 가지 정도의 업무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설계도면의 설명이다. 도면으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해설해 주고, 같은 부분에 대한 상세도가 달리 적용되었거나 설계자의 실수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일이다.
두 번째는 설계변경에 대한 적정성 검토 및 협의이다. 마감 재료의 변경이나 색상의 변경 및 확정은 물론이고 평면, 입면, 단면의 변경된 디자인을 검토해 주고 협의해 주는 업무이다.
세 번째는 현장방문을 통하여 회의에 참석하고 공사장 점검을 하는 업무이다. 현장의 회의에 참석하여 전반적인 공사내용에 대하여 설계자의 의견과 설계의도를 설명하고 설계의도 구현 업무와 관련되어 협의된 내용들에 대하여 현장에서 실행된 내용들을 확인·검토하는 작업이다.
네 번째는 연면적 5,000제곱미터 이상의 중·대규모 현장에서 의무적으로 작성하고 있는 시공도면(shop drawing)에 대한 검토 및 승인작업과 시공도면 작업이 의무화되지 않는 소규모 현장에서의 시공을 위한 도면 보완작업이다. 지금까지 시공도면은 대부분 감리자의 승인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 감리자는 제출된 시공도면으로 인하여 공사의 품질과 공사 후에 하자발생 여부에 대하여 점검하고 검토할 뿐이다. 시공을 위한 상세도가 디자인에 영향을 주거나 설계의도에 맞게 적용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위하여 부분적인 디자인 변경여부까지 검토해 줄 수 있는 업무는 설계자만이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설계의도 구현이 적용되어 완성된 건축물의 관리를 위한 준비작업이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제22조(설계의도 구현) 제2항에 따르면 “건축물 등의 설계자는 설계의도가 구현될 수 있도록 건축주·시공자·감리자 등에게 설계의 취지 및 건축물의 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제안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지만 필자는 설계자가 유지관리를 위한 업무를 제안할 수 있다가 아닌 필수 업무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설계의도대로 공사를 완료하여 품격있는 건축물을 건축주에게 인도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건축물이 설계된 내용대로 유지되고 관리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에서 제시되는 이 업무들은 법률상 설계의도 구현 업무의 법위에 포함되지 않아 당장 업무대가에 포함시키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적인 업무가 바로 준공도면의 승인작업이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준공도면의 작성은 건축물을 시공한 건설사가 하고 있다. 설계변경으로 허가 처리된 내용은 이미 도면작업이 이루어져 있지만 설계변경 허가가 필요하지 않은 사소한 변경들은 현장소장만이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관리법이 2020년 5월 1일부터 시행된다. 건축물의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정기점검 여부와 관계없이 준공도면에 대한 검토와 승인작업은 건축주를 위하여 필수적이다. 또한 준공도면은 설계자의 저작권이 있는 도면에 대하여 건설사에서 일부 수정작업을 하였으므로 설계자의 승인을 받는 것은 설계자의 당연한 권리로 판단된다. 아울러 건축물의 수선 및 유지관리를 위해서는 건축물에 사용된 마감용 건축 재료에 대한 리스트와 전기, 소방, 냉난방설비, 통신 및 보안용 CCTV 등의 각종설비와 기구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비롯한 건축물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서가 필요하다. 몇 만 원짜리 전자제품에도 사용설명서가 있는 것을 고려하면 건축물의 안내서 작성업무는 당연한 필수조건으로 판단된다. 또한 건축물관리법, 환경법, 주차장법, 엘리베이터관리법령 등에 따라 의무적으로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한 내용에 대한 안내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건축물의 유지관리를 위한 준비작업들은 건축주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설계자 입장에서는 작업내용들이 무척 복잡해 보이기는 해도 한두 번 작업하고 나면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어 건축사사무소마다 기본 틀을 가지고 운영되므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계의도 구현을 의한 업무대가는 실비정액가산방식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며 필자는 한국건축정책학회에서 그 연구를 책임지고 진행 중이다. 우리가 연구하기 이전에 이미 2곳에서 선행된 연구결과가 있는데,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는 그 대가를 설계비의 8%로,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는 설계비의 29∼43%의 큰 차이가 나는 두 가지로 제안되어 있다. 그러나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할 경우 소규모와 대규모건축물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의 규모에 똑같이 일률적인 비율을 적용할 수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현재 국토교통부의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에 적용되고 있는 비상주 감리비의 수준이 설계비의 25%정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건축물의 설계의도 구현 업무는 일정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만이 아닌 민간건축을 포함한 모든 규모의 건축물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한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고 건축주와 시공자가 설계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살아나서 건축사를 꿈꾸는 후배들이 그 꿈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기대해 본다.

 

 

 

 

 

글. 전영철 Jeon, Youngcheol 열린모임 참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전영철 열린모임 참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 5년제와 서울과학기술대 및 한양대산업 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함.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위원장, 법 제이사, 상근이사를 거치며 건축사법 전면개정을 비롯하여 건축 기본법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의 제정에 기여함. 저서로는 ‘건 축법실무해설집’과 ‘내 건물을 지으려면’이 있고 국토교통부의 중앙건축위원으로 건축민원전문위원장과 건축분쟁전문위원장 을 역임함. 작품으로는 성내동 성당, 육군훈련소 성당, 정자꽃뫼 성당, 삼중건설 사옥, 조세통람사 사옥, 취영가 등이 있음.

 

cham-arc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