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건축사’, 정말 고난의 환경을 가졌다 2020.4

2023. 1. 12. 09:26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Architect’ in Korea, having a really difficult environment 

 

건축은 창작일까? 편집일까? 생뚱맞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본다. 규모가 아주 작은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건축사의 성과가 제대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민간 프로젝트든 공공 프로젝트든 척박한 건축 환경 내에서 매년 건축상을 수상하는 완성도 높은 건축 작품들을 보면 이를 만들어내는 건축사들이 경이롭다. 우리 월간 건축사에 게재되는 작품들을 보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신년 벽두부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세상을 휩쓸고, 경제 순환 구조의 고장으로 생계 절벽에 매달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한가한 소리로 들리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축사들 역시 절벽에 서 있는 위기의 존재는 맞다. 대형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풍요로운 건축사건 나홀로 건축사건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수시로 존재한다. 당연히 극복해야 할 것이다.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환경이 바뀌어야 하는 것도 있다. 개인의 범위야 뭐라 할 수 없지만, 환경에서 야기된 문제들은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다.
우리나라 건축 환경은 그런 모순이 차고 넘친다. 건축 작품을 건축사의 설계의도대로 온전히 구현해내는 과정을 굳이 표현하고 제도로 만든 용어가 ‘설계의도 구현’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용어다. 건축 제도에서 가장 황당한 두 가지 표현이 ‘역량 있는 건축사’와 ‘설계의도 구현’이다. 취지도 알겠고, 의미도 알겠다. 하지만 얼마나 건축사의 창작 성과물인 건축이 원래 설계대로 지어지지 않았으면 이런 용어가 나왔을까 싶다.
사실 건축사의 자질 문제는 별개다. 건축이 건축사의 설계 의도대로 지어지지 않은 이유는 많다. 시공자가 공사비를 아끼려고, 본인의 실수를 덮으려고 원작 설계를 훼손하는 일이야 하도 많아서 지적하기도 민망하다. 건축 의뢰인들이 공사 중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마음 따라, 취향 따라 바뀌는 일도 정말 많다. “내 돈으로 내 건물 짓는데, 왜 건축사가 왈가왈부해”라는 갑질 마인드도 일상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갑질 마인드가 민간뿐만 아니라 공공 건축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선출직이던 임명직이던 의사결정권자들은 국민의 세금 절약 운운으로 핑계 대며 원작을 훼손한다.
어디 그뿐이랴? 공무원의 면피 절차인 각종 심의에 참여하는 꿈 많은 위원의 경우 그야말로 설계를 난도질한다. 경직된 건축 가이드라인은 지구단위계획 지침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무조건”을 외치며 저고리에 양복바지를 강제로 입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마디로 책임 있게 주도하는 건축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총괄건축가’나 ‘공공건축가’라는 직제까지 만들었는데 광고업자, 시각디자이너, 인테리어, 도시계획가 등 비전문가들이 민간 전문가라는 자격으로 자리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에서 건축사의 건축이 완성될까? 그런 제도가 없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나오는 건축적 성과는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사석에서 만나는 발주자들은 한국 건축사들을 폄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말 이런 환경을 어떻게 깨뜨리고 나가야 하나? 패배주의 유령은 시장에 있는 몇몇 건축사들의 냉소적 선동을 자극한다. 도대체 앞이 안 보인다... 코로나19가 걷힌들 이런 환경들이 나아질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