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3. 09:25ㆍ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Micro Architects, Macro Architects
건축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건축사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시각을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느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니 개인적 경험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이들도 전부 그럴 것이라고 확언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건축계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편집국장으로 지낸 2년 동안 내가 오래전부터 느꼈던 또는 개선되지 않은 문제들을 사설, 정책 제안 기사, 영화 이야기 등을 통해 누차 발언해왔다. 다른 건축사들도 여러 문제들을 제기했다. 그중에는 흥미롭고 긍정적인 글들도 많았지만 모순된 내용도 상당했다. 개인적인 상황을 시스템으로 혼동하는 내용 또한 많았다.
그중 하나가 건축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건축사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그 전제는 건축사들이 단체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인데, 현실에서는 건축사뿐만 아니라 건축사를 키워내는 학계, 건축사 산업과 관련된 집단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대한건축사협회와 몇몇 인사들만 열심히 말할 뿐이고,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크진 않다. 건축사의 수와 정치적 권익 향상은 관계가 없는 일이다.
의무가입 역시 마찬가지다. 의무가입의 기본 목표와 가치는 ‘건축사의 윤리 강화’를 통해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을 확립하는 데 있다. 시장 질서 교란을 예방하고 안전 관리가 강화되는 여러 상황들은 이러한 윤리 강화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무가입을 권력 게임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이익을 취할지 갈등하고 고민하는 현상도 심심찮게 관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설사 설계업 허용을 추진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계획 또한 놀랍다. 건설과 건축을 동일 산업으로 바라보고 상호 간의 차이를 무시한 채 독점과 규제로만 이해하고 있다. 의사의 진료 행위가 독점일까? 판사의 판결 행위가 독점일까? 독점이 아니라 전문가 본연의 업무다. 건설과 건축의 규제 칸막이를 운운하는 사고의 기저엔 건축사 업무가 전문가 영역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단 뜻이다.
그렇다면 굳이 5년제의 건축대학을 만들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국가건축정책위원회라는 조직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왜 만든 걸까? ‘설계의도 구현’이나 ‘감리 강화’ 같은 법·제도가 존재한단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이 법·제도들은 건설과 건축이 다름을 증명하는 동시에 각자 독립적 역할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물론 이들은 건축사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정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건축사보와 건축사들의 태도다. 건설사 설계업 허용 이야기가 나오니 고용과 경제적 보장을 근거로 삼아 긍정적 태도를 보인다. 지면관계 상 관련 논의를 계속 이어가진 않겠다. 다만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만큼은 강조하고 싶다. 그런 뒤에 함께 소리치고, 함께 연대하자. 우리 건축사들의 권리와 권익은 다른 누군가가 보장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노력해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결실은 우리에겐 권리와 영역이, 건축대학을 다니는 미래의 건축사들에게는 희망이 될 것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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