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사람과 기계의 즐거운 분포 2020.6

2023. 1. 16. 09:1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The Pleasant Distribution of People and Machines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 시대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건축가들에게는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건축으로 담아내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다. 건축가가 그러한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의 건축 작업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느냐를 떠나서 그것은 즐거움 그 자체이다. 
임재용, OCA Book 3: The Evolving Gas Station (2015), 366쪽.

“건축은 사회를 반영한다.” 임재용은 위와 같이 자신의 글을 시작하곤 한다. 옳은 말이지만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건축의 핵심 문제는 사회를 반영하느냐 못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다. 이 문구에서 보듯이, 그의 사무실 이름 OCA, Office of Contemporary Architecture가 말해주듯이, 임재용도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는 변화를 “건축으로 담아내고” 싶다고 한다. 근대 이전에는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의 변화는 모더니티의 가장 중요한 인식의 틀이며 현대 건축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진행되는 사회, 기술,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에 건축이 대응할 수 있을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전시가 최근에 열렸다. 구겐하임 미술관과 램 콜하스, AMO가 기획을 주도한 Countryside, The Future가 2020년 2월 21일 뉴욕 구겐하임에서 오프닝 했다. 평생 메트로폴리스에 매료되어 자기 사무실 이름을 OMA, Office of Metropolitan Architecture로 작명했던 콜하스가 이제 지구 면적의 98%에 해당하는 도시의 배후지에 관심을 돌린 것이다. 도시에만 집중했던 그 의 이력, “어느 만큼은 죄의식에 대한 고백”이라고 토로했다. 그런데 콜하스에 의하면 Countryside는 “건축과 전혀 관계 없는” 전시 (https:// wwd.com/eye/people/rem-koolhaas-guggenheim-countryside-1203310035/)라는 것이다. 6개월간 이어질 계획이었던 Countryside 전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3월 12일 뉴욕 구겐하임의 임시 폐관으로 중단되었으며 언제 재개관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콜하스도, 임재용도 잘 알고 있듯이 우리는 물리적인 공간과 사물을 근본적으로 재고찰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원고에서 주목하는 클리오라는 화장품 기업과 직접 관련된 이슈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인터넷 상거래가 성장하여 도시 매장의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가 그 “종말”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자동화에 따른 재택 근무의 확장과 고용의 축소, 디지털 패브리케이션과 리쇼링으로 규모의 경제 논리가 점차 쇠퇴하고 있다. 대형 생산 시설에 대한 재검토를 포함하여 산업 영역마다 제조, 유통, 판매의 글로벌 밸류 체인에 대한 재고가 진행되고 있다. 1993년 설립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의 중견 화장품 기업 클리오에게 직접적인 파장이 있는 변화들이다. 모든 산업 영역에서 마찬가지이지만 화장품의 매장, 흔히 로드샵이라 부르는 공간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감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쇼크로 이미 중국에서 클럽 클리오 매장들을 철수한 상황이었다. 이런 로드샵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권 젊은 소비자층을 확보하며 가파른 성장을 한 클리오는 2020년대 중반 매출액 1조원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한국에서 후발 화장품 기업으로 기업 내에 생산 시설을 직영하기 보다는 일찍이 OEM 생산 방식과 인터넷을 통해 가볍지만 강한 기업을 추구해 왔다. 이렇게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하며 성장했던 클리오가 성수동에 본사 사옥을 신축하면서 건축을 통한 기업 브랜딩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남궁선
©남궁선


클리오 사옥 디자인의 핵심은 사용자, 건축주, 시민, 그리고 건축사 누가 보더라도 자동차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OCA의 해법은 대지 1,000㎡ 이하의 오피스에 전형적인 편코어식 평면에 카 리프트로 지상 4~6층에 걸쳐 주차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규모의 대지와 건축면적에서는 진출입 램프를 둘 수 없고 대개는 주차를 기계식으로 해결을 한다. 지상의 주차 공간이 용적률 산정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장차 주변에 올라갈 고층 타워들 속에서 본사 사옥의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저층부에서 도시와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수 있었다. 임재용은 오픈 플랜과 하이브리드 구조를 도입한 자유로운 단면의 적절한 조합으로 클리오 사옥이 필요한 여러 조건을 충족시켰다. 기업 내부의 현상설계로 사옥 디자인을 선정했던 건축주의 입장에서 OCA 안이 당연한 선택이었을 걸로 생각한다.
OCA가 자동차의 해법을 중심으로 평면과 단면, 건물의 안과 밖 (임재용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용자의 시점과 관찰자의 시점)을 통합하는 설계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다. 서울석유, 한유 그룹 사옥, 양재 복합시설 등 “진화하는 주유소” 프로젝트, 수소자동차 충전소, 아모레퍼시픽 상해 뷰티 캠퍼스와 HK 도약관 등, 기계, 자동차,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고 분리하는가를 탐구해왔던 임재용이다. 지금 가장 즐겁게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인천 공항 주변에 위치한 애견 호텔이라고 한다. 파주출판도시 2단계의 여러 구역 중에서 인쇄소가 집중되어 있는 블록을 맡게 된 것도 임재용에게는 자연스러운, 그의 표현처럼 아주 즐거운 일이다. 오픈 플랜과 자유로운 단면은 사용자, 주인, 프로그램이 바뀌더라도 공간의 수평 수직 구조를 다양하게 연결하고 닫을 수 있는 장치다.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는데 현대 건축이 개발한 보편적인 장치다. 임재용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장치들이 자동차, 기계, 책, 동물, 석유, 화장품, 그리고 사람, 다종다양한 사물들의 공존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클리오 사옥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 6층 주차장이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사람과 차의 관계가 변할 것이라는 전제로 설계된 공간이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오피스의 수요가 늘어날 때, 회사 조직이 바뀔 때, 도시 공간에서 기업 브랜딩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자율 주행차, 전기나 수소차처럼 소음과 매연이 없는 차가 보편화된 이후의 상황까지 상상하게 된다. 멀지 않은 미래, 클리오 사옥이 대내외적인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이 6층에서 모이게 된다. 비평가로서 이 장면을 보는 즐거움은 이러한 작업을 하는 임재용의 “즐거움 그 자체”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 동물, 기계, (바이러스를 포함한) 사물들의 분포가 변하고 있다. 콜하스가 건축과 전혀 관계없다고 말한 도시 배후지의 문제를 포함한 변화다. 사람이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될 때,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될 때,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신할 때, 자유로운 평면과 단면과 같은 현대적인 건축 장치들이 이에 대응할 수 있는지는 멀지 않아 보게 될 것이다. 곧 클리오 사옥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건축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 변하고 새로운 장치를 제시할지도 모른다. 사물의 분포가 변할 때 공간의 변화만큼 중요한 것은 임재용이 말한 “욕망”과 “즐거움”이다. 서두에서 임재용은 자신의 욕망과 즐거움에 국한해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건축주,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의 욕망과 즐거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나와 같은 관찰자의 즐거움, 설계자가 갖는 작업의 즐거움, 사용자의 즐거움, 이것과 다른 새로운 주체와 인자들의 즐거움이 있을 수 있는가? 지금의 변화하는 세상에서 즐거움의 존재 여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글. 배형민 Pai, Hyungmin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생각과 글, 이미지, 공간, 설치 등을 엮어 관중과 소통하 고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는 전시기획’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배형민은 건축역사가이자 비평가이며 큐레이터이 다. 2008년,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큐레이 터로 참여해 2014년에는 최고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받 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광주 디자인 비엔 날레 수석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협력 감독, 삼 성미술관 플라토 초대 큐레이터 등 전시 현장에서 활동 해왔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환경대학원에서 학·석사,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 부 교수다. MIT 프레스에서 출간한 《THE PORTFOLIO AND THE DIAGRAM》은 세계 유수 대학의 필독서이다. 《한국건축개념사전》을 공동 저 술·편집했으며, 승효상의 건축을 다룬 《감각의 단면》, 기업과 건축의 관계를 다룬 《아모레 퍼시픽의 건축》 등을 저술했다.

 

pai@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