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축사협회 ‘김순하홀’ 명명식 개최…건축계 발전 위한 소통·교류 공간으로 조성 2020.6

2023. 1. 16. 09:24아티클 | Article/건축계소식 | News

대한건축사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5월 20일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을 비롯한 임원, 시·도건축사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건축사회관 2층에서 ‘김순하홀 명명식’ 기념행사를 가졌다. 협회는 작년 10월 건축사회관 2층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다목적홀로 조성하며, 당시 홀 명칭을 협회와 건축계 발전에 기여한 분의 이름으로 정하기로 한 바 있다. 이번 명명식은 김순하 협회 초대회장을 기리는 동시에 한국 근대 건축계의 선구적 역할을 한 그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김순하홀 규모는 면적 165제곱미터(60석 규모)이며, 교육·세미나·전시 외에 각종 건축문화행사를 열 수 있다. 협회는 앞으로 회원들과 건축계를 위한 소통·교류의 공간으로 활용해 건축문화 저변을 넓히고 건축사와 건축사협회, 건축홍보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5월 20일 열린 ‘김순하홀 명명식’


Remembering

월간 건축사는 ‘김순하홀’ 조성을 기념해 김순하 대한건축사협회 초대회장의 건축활동과 공로를 조명합니다. 



연암(然庵) 김순하 대한건축사협회 초대회장(1901~1966)

 

 

김순하 대한건축사협회(이하 협회) 초대회장은 1901년 강원도 삼척군에서 태어나 1918년 고향에서 삼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유학하여, 1922년 경기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유일한 건축 전문고등교육기관이었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해 1925년에 졸업했다. 
전남도청 토목과에서 근무하면서 건축계에 첫발을 내딛었고, 광주의 근대적인 여러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로는 전남도청 본관(1930년 설계), 전라남도 도청 평의원 회의실(1932년), 춘목암(1935년 준공), 정석호댁(1930년대 초) 등이 있다. 김순하의 건축양식은 벽돌과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하는 서양식 건축양식이었다. 김순하의 건축설계 작품은 섬세하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기능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건축양식의 경향을 표현했다. 해방 후 그는 조선주택영단에서 1946년 6월 말까지 근무하다 사직하고, 1950년 3월에 태평로에 삼육건설주식회사와 삼육건축설계사무소를 설립하여 대표로 취임했다. 6·25가 발발하며 그 해 12월 부산으로 피난, 건설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해방 후 건축과 관련된 여러 단체나 모임에서도 활동했다. 조선건축회를 이어 받아 1945년 9월 1일 결단한 조선건축기술단에서 활동하며, ‘건축표준용어제정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조선건축기술단은 1954년 대한건축학회로 다시 발족하게 된다. 1945년 12월 설립된 조선건축사회에도 참여하며 주택문제에 관한 강연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55년 대한건축사협회(구협)가 발족된 후, 1964년 4월 하순 구협의 김순하 회장은 ‘건축사법’에 따라 건축사협회 발기인회 구성을 위한 모임에 착수하고, 7월 6일 발기인회를 결성했다. 대표에는 김순하 구협 회장이 추대되었고, 11명의 위원들은 총무, 운영, 재정의 3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창립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발기인은 김순하, 김재철, 장기인, 차경순, 강봉진, 송민구, 한창진, 박춘명, 안인모, 김종식, 배기영이었다. 

 

전라남도 도청 회의실 사진 광주광역시


대한건축사협회는 ‘건축사법’ 제6장 제31조 제1항의 “건축사사무소 개설자는 품위의 보전, 업무의 개선과 건축물의 개량,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건축사협회를 설립하여야 한다”라는 근거에 의하여 1965년 10월 23일 건설회관에서 128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정관과 윤리규약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총회는 김순하 구협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도청 회의실 도면 _ 문화재 지정


협회 20년사에 따르면 ‘온유와 덕망으로 이끌어 친목융합으로 단합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인국은 현대건축론(1970년)에서 그의 창립 공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 김순하 씨는 다년간 건축실무에 종사하면서 건축사의 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를 어려운 시절에 창설하여 육성에 노력하면서 건축의 실무를 충실히 다루는 문제와 현실사이의 심연(深淵)으로 고민한 인물이라 하겠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966년 7월 10일 ‘신건축사’를 창간한 일이다. 이때 건축사 상징마크도 만들어졌다. 연암 김순하 초대회장은 1966년 12월 27일 오후 2시, 그가 설계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협회 창립 발기인이었던 송민구(대한건축사협회, 1967년 <건축계> 10-15쪽 ‘고 연암 김순하 회장의 서거를 애도함’ 중)는 그를 평하면서 “그는 한국건축근대사의 시점 바로 그것”이라며, “한국근대건축계의 선구적인 기술인이자 유일한 건축관계법률의 전문가”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대한건축사협회는 김순하의 사후 10주기와 20주기 때 그를 기리는 행사를 한 바 있다. 10주기 되던 해에는 추모비를 세웠고, 20주기 때는 공로패를 추서했다. 

 

참고=대한건축사협회 20년사, 김순하와 그의 건축활동에 대한 소고(김정동 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_한국건축역사학회 2007 춘계학술발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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