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7. 09:24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반세기 이상 유지되어 온 현행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자격증 소지자조차 자괴감을 느낄 만큼 긍정적인 면이 없습니다. 때문에 새 건축사 자격시험은 큰 틀에서 한국 건축사가 지녀야 할 직능 중심으로, 건축실무에 보다 유익하도록 재편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험제도를 과연 건축실무를 해본 사람이 만들었나?”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선진사례를 맹목적으로 참조하기 전 현업의 국내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의 의견과 제안이 중점적으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번 담론 글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쓰였지만 공통된 방향을 가리키며 가장 눈여겨볼 화두는 건축사의 직능은 ‘스킬이 아닌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겁니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방식이 있고 이에 익숙할수록 고득점이 가능합니다. 현행 건축사 자격시험이 대표적인 예로 실무능력을 검증하려는 취지이나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학원에서만 ‘시험을 위한 시험스킬’ 수련이 가능합니다. 최근 진행된 대부분의 연구들은 미국 제도를 참조 중인데 한국 것에 비해 검증항목이나 시험방식에 큰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이를 대입한다 해도 바뀐 제도를 잘 분석한 시험 전문 학원들은 사무소에서 바쁘게 실무 중인 응시생보다 고득점할 수 있는 스킬을 개발해 낼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전에 비해 정도만 다를 뿐 건축실무와 자격시험 간의 괴리감은 시간에 비례해 다시 늘어날 겁니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새 자격시험 제도는 수험스킬이 아닌 실무경험이 바탕이 된 직업적 판단력과 전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판정하는 일련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즉, 통상적인 시험방식이 아닌 한국적 실무상황에 맞춘 독창적인 검증방식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흔히 제도적 변화를 모색할 때 시작도 하기 전 변화폭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가리키며 현실성을 운운하기도 합니다. 현행 제도가 초래하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의 낭비와 비교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건축교육, 실무수련, 자격시험으로 구성되는 일련의 과정 중 가장 핵심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오래, 늦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번 개편에 실무계는 관심을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직업적 판단력과 전문적 문제 해결 능력은 일반인들이 전문직을 찾는 이유이고 전문자격증의 사회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 김주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한국 건축사·영국 건축사
01 The Future of Architectural Experience Program and Architect Registration Examination in Korea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와 의견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많은 연구와 제안이 동시에 나오고 있으며,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통일된 하나의 합리적 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처럼 외국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여러 방식을 절충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자는 경우, 구관이 명관이라 하여 오히려 전통적 방식으로 회기하자는 주장도 있다. 건축계에서 건축사 자격시험을 새로운 방식과 내용으로 보완개선하자는 의견은 단순히 오래된 것을 새롭게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짧지 않은 시간을 되짚어 보아야 하겠다.
2002년에 전국 39개 대학이 5년제 건축전문 프로그램으로 학제를 개편한 것은 한국 건축계에서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현재 전국에 71개 5년제 프로그램-비인증 포함-이 운영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의미 있는 시점은 2006년 명지대, 서울대, 서울시립대의 최초 건축학인증 프로그램의 출현이다. 이것은 건축사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요소(전문교육, 실무수련, 자격시험)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공식적인 제도로서 시행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학제 속에서 건축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과거 체계 속에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공존하는 시기가 10년 이상 이어져 왔으며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다. 학제 개편 10년 후인 2012년에 도입된 실무수련제도는 건축사 자격제도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전에 건축사예비시험 합격과 일정기간의 실무경력을 통해 주어지던 건축사시험 응시자격 요건이 ‘실무수련을 등록하고 일정 기간을 마친 자’로 변경되었다. 이 제도의 변화 역시 건축전문학위과정의 졸업생이 건축사가 되기 위한 일관된 세 가지 과정 즉, 전문교육, 실무수련, 시험제도의 연속성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건축전문학위를 받고 실무수련을 이수한 예비건축사들이 자격시험을 응시하고 있는 현재, 혹은 더 많은 전문학위 졸업자들이 응시하게 될 미래 시점을 대비하는 시험제도의 변화는 필연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주요한 변화들은 건축계에서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그 시점과 내용을 언급하는 이유는 자의건 타의건 약 20년 전 시작된 건축계의 변화는 한국 건축사의 전문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으로 재정립하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함이며,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변화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과도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함이다.
필자는 실무수련과 자격시험을 미국에서 마친 미국등록건축사이기에 한국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건축사제도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건축사의 전문성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건축사등록원(NCARB)는 해마다 건축사등록에 관련된 매우 광범위한 통계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무료로 대중에게 공개한다. 모든 통계 내용은 그래픽으로 시각화돼 있어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사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이다.
2019년의 조사결과를 보면 시민의 82%가 건축사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으며 76%가 건축사가 전문자격증(Professional licensing)이기 때문에 좀 더 안전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재미있는 조사가 뒤따르는데 건축사자격 취득과정을 설명한 후 실시한 설문응답에서는 91%가 이전보다 건축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94%는 건축사가 전문자격증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동일한 조사가 행해진다면 어떠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아마 미국에서의 경우보다 건축사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은 더 낮은 결과를 보여줄 것 같다. 만약 20년 전 건축공학, 건축학 학제 간 구분이 모호했던 시절로 시간이 멈춰 있었다면 한국사회에서 건축사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더 낮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러한 시민 인식의 변화를 통계로 추적하여 시민의 안전, 건강, 복지 등 사회 근간이 되는 분야를 다루는 전문가로서 건축사의 역할을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이 의료전문의, 법조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일반 상식처럼 대략의 과정을 알고 있듯이 건축사가 되기 위해 전문교육, 실무수련, 자격시험이라는 통일되고 일관된 길을 거쳐야 한다는 정보가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을 때 한국사회에서 전문가로서 건축사의 역할이 그만큼 확장되리라고 본다.
미국건축사협회(AIA) 공식홈페이지에 “우리(건축사)는 어디에 있나?”라는 서문에서 건축사가 단순한 건축 직능을 넘어 사회와 인류전체의 문제인 “기후변화, 평등, 다양성의 포용, 기반시설, 이민 및 비자 제한, 등록업무, 교육시설 설계 및 학생안정, 성감수성, 지속가능성(Climate action, Equity, diversity and inclusion, Infrastructure, Immigration and visa restrictions, Licensure,, School design and student safety, Sexual harassment. Sustainability)”에 대해 적극 대응하는 전문가 집단임을 밝히고 있음은 한국 건축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실무수련과 자격시험의 일치는 필연적인 수순
실무수련과 자격시험에 관해 우리나라와 제도적으로 가장 흡사한 것은 미국건축사제도라고 할 수 있다. 건축학교육의 학제 개편부터 롤 모델이 된 것은 미국의 시스템이었고 이미 20년 전 도입 당시 상당한 참고, 검토를 거쳐 한국화된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처음 벤치마킹했던 2000년대 이후 미국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건축사시험제도의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지금 다시 한 번 20년 전 당시 미국의 상황과 이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실무수련 산정방식이 우리나라는 일수(days), 연수(years)로 산정하는 반면 미국은 시간(hours)으로 산정한다. 대략 3년으로 알려진 수련과정은 5,600시간을 의미하며 미국에서 이를 마치는 데 통계적으로 평균 4.2년이 소요된다고 한다(NCARB By The Numbers 2019).
약 5년 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2015년 수련시간이 3,740시간(1/3 축소)으로 변경되었으며 2016년에는 인턴개발과정(IDP-Intern Development Program)이라 불리던 수련과정의 명칭을 건축수련프로그램(AXP-Architectural Experience Program)으로 변경하였다. 일반명사처럼 쓰이던 인턴과정의 명칭을 건축수련으로 명확하게 정의한 것이고 그 내용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또한 ARE로 불리는 미국건축사자격시험이 ARE4.0에서 ARE5.0으로 바뀌면서 실무수련 내용과 시험과목의 항목이 일치하게 된다. 실무수련을 통해 획득한 경험이 바로 시험에 응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철저한 실무수련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검증하는 것이 건축사 자격시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무수련이란 건축전문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실무를 통해 적용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며 자격시험이란 최소한의 문제해결 능력을 최종적으로 검증함으로써 건축전문인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미국 실무수련 항목과 시험과목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데 과거엔 건물을 구축하는 계획적 측면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의 이해를 측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변화된 내용에는 프로젝트 관리항목이 보완되면서, 단순한 건물설계의 직능적인 측면에서 프로젝트 베이스의 기획에서 최종완성까지의 유기적 관계를 측정하는 것으로 건축사업무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사 시험 방식에 대한 논의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자체의 과목, 형식 등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 중이며 훌륭한 제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여기에 새로운 건축시험의 주제, 유형,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제안을 하기 보다는 수없이 언급되어 왔던 논란에 대해서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예비시험에 해당됐던 필기시험의 폐지로 현재 실기시험만이 건축사시험의 유일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 시험에 대한 보완의 목소리는 더욱 더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건축사사무소의 납품 방식은 컴퓨터 출력물로 바뀐 지 오래고, 대부분의 실무수련생이 손으로 도면을 그린 경험이 전무하기에 업무를 그만두고 학원을 다니며 건축사시험을 준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시험의 형식을 필기와 실기로 구분하는 것조차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다시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미국에서 시행되고 되고 있는 CBT(Computer Based Test)가 대안의 하나로 제시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여기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컴퓨터로 실기시험을 대체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 실정에 운영이 가능한가의 문제다. 여기에는 한국 건축계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에서 컴퓨터기반 시험제도가 도입된 것은 캐드(CAD)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과거 손으로 작성하던 시험 유형이 컴퓨터로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건축사시험은 컴퓨터로 시험을 보기 이전에도 이미 작도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아닌 문제해결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컴퓨터의 도입은 단지 시험 채점과 운영 방식 효율성을 위한 것이며 CAD의 출현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 장의 드로잉을 수 시간 동안 작성하고 이를 통해 당락을 결정하는 한국 건축사 자격시험은 필수적인 드로잉능력이 없다면 답안을 작성조차 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를 바꾸려면 오히려 시험문항을 대폭 늘려서 조건을 제시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다항목 시험문제로 바꾸고 문항당 10∼30분 안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미국식 문제 유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건축사 자격시험은 결국 실무수련의 경험치를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해야 하며 이 능력을 적절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앞서 설명한 실무수련과 건축사 자격시험의 일치가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답안을 컴퓨터로 작성하느냐 손으로 제출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컴퓨터냐 아니냐의 논란을 비로소 끝낼 수 있는 것이다.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와 의견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많은 연구와 제안이 동시에 나오고 있으며,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통일된 하나의 합리적 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처럼 외국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여러 방식을 절충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자는 경우, 구관이 명관이라 하여 오히려 전통적 방식으로 회기하자는 주장도 있다. 건축계에서 건축사 자격시험을 새로운 방식과 내용으로 보완개선하자는 의견은 단순히 오래된 것을 새롭게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짧지 않은 시간을 되짚어 보아야 하겠다.
2002년에 전국 39개 대학이 5년제 건축전문 프로그램으로 학제를 개편한 것은 한국 건축계에서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현재 전국에 71개 5년제 프로그램-비인증 포함-이 운영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의미 있는 시점은 2006년 명지대, 서울대, 서울시립대의 최초 건축학인증 프로그램의 출현이다. 이것은 건축사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요소(전문교육, 실무수련, 자격시험)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공식적인 제도로서 시행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학제 속에서 건축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과거 체계 속에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공존하는 시기가 10년 이상 이어져 왔으며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다. 학제 개편 10년 후인 2012년에 도입된 실무수련제도는 건축사 자격제도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전에 건축사예비시험 합격과 일정기간의 실무경력을 통해 주어지던 건축사시험 응시자격 요건이 ‘실무수련을 등록하고 일정 기간을 마친 자’로 변경되었다. 이 제도의 변화 역시 건축전문학위과정의 졸업생이 건축사가 되기 위한 일관된 세 가지 과정 즉, 전문교육, 실무수련, 시험제도의 연속성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건축전문학위를 받고 실무수련을 이수한 예비건축사들이 자격시험을 응시하고 있는 현재, 혹은 더 많은 전문학위 졸업자들이 응시하게 될 미래 시점을 대비하는 시험제도의 변화는 필연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주요한 변화들은 건축계에서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그 시점과 내용을 언급하는 이유는 자의건 타의건 약 20년 전 시작된 건축계의 변화는 한국 건축사의 전문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으로 재정립하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함이며,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변화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과도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함이다.
필자는 실무수련과 자격시험을 미국에서 마친 미국등록건축사이기에 한국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건축사제도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건축사의 전문성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건축사등록원(NCARB)는 해마다 건축사등록에 관련된 매우 광범위한 통계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무료로 대중에게 공개한다. 모든 통계 내용은 그래픽으로 시각화돼 있어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사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이다.
2019년의 조사결과를 보면 시민의 82%가 건축사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으며 76%가 건축사가 전문자격증(Professional licensing)이기 때문에 좀 더 안전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재미있는 조사가 뒤따르는데 건축사자격 취득과정을 설명한 후 실시한 설문응답에서는 91%가 이전보다 건축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94%는 건축사가 전문자격증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공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동일한 조사가 행해진다면 어떠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아마 미국에서의 경우보다 건축사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은 더 낮은 결과를 보여줄 것 같다.
만약 20년 전 건축공학, 건축학 학제 간 구분이 모호했던 시절로 시간이 멈춰 있었다면 한국사회에서 건축사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더 낮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러한 시민 인식의 변화를 통계로 추적하여 시민의 안전, 건강, 복지 등 사회 근간이 되는 분야를 다루는 전문가로서 건축사의 역할을 알리고 홍보해야 한다. 또한 시민들이 의료전문의, 법조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일반 상식처럼 대략의 과정을 알고 있듯이 건축사가 되기 위해 전문교육, 실무수련, 자격시험이라는 통일되고 일관된 길을 거쳐야 한다는 정보가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을 때 한국사회에서 전문가로서 건축사의 역할이 그만큼 확장되리라고 본다.
미국건축사협회(AIA) 공식홈페이지에 “우리(건축사)는 어디에 있나?”라는 서문에서 건축사가 단순한 건축 직능을 넘어 사회와 인류전체의 문제인 “기후변화, 평등, 다양성의 포용, 기반시설, 이민 및 비자 제한, 등록업무, 교육시설 설계 및 학생안정, 성감수성, 지속가능성(Climate action, Equity, diversity and inclusion, Infrastructure, Immigration and visa restrictions, Licensure,, School design and student safety, Sexual harassment. Sustainability)”에 대해 적극 대응하는 전문가 집단임을 밝히고 있음은 한국 건축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실무수련과 자격시험의 일치는 필연적인 수순
실무수련과 자격시험에 관해 우리나라와 제도적으로 가장 흡사한 것은 미국건축사제도라고 할 수 있다. 건축학교육의 학제 개편부터 롤 모델이 된 것은 미국의 시스템이었고 이미 20년 전 도입 당시 상당한 참고, 검토를 거쳐 한국화된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처음 벤치마킹했던 2000년대 이후 미국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건축사시험제도의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지금 다시 한 번 20년 전 당시 미국의 상황과 이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실무수련 산정방식이 우리나라는 일수(days), 연수(years)로 산정하는 반면 미국은 시간(hours)으로 산정한다. 대략 3년으로 알려진 수련과정은 5,600시간을 의미하며 미국에서 이를 마치는 데 통계적으로 평균 4.2년이 소요된다고 한다(NCARB By The Numbers 2019).
약 5년 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는데 2015년 수련시간이 3,740시간(1/3 축소)으로 변경되었으며 2016년에는 인턴개발과정(IDP-Intern Development Program)이라 불리던 수련과정의 명칭을 건축수련프로그램(AXP-Architectural Experience Program)으로 변경하였다. 일반명사처럼 쓰이던 인턴과정의 명칭을 건축수련으로 명확하게 정의한 것이고 그 내용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또한 ARE로 불리는 미국건축사자격시험이 ARE4.0에서 ARE5.0으로 바뀌면서 실무수련 내용과 시험과목의 항목이 일치하게 된다. 실무수련을 통해 획득한 경험이 바로 시험에 응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철저한 실무수련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검증하는 것이 건축사 자격시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무수련이란 건축전문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실무를 통해 적용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며 자격시험이란 최소한의 문제해결 능력을 최종적으로 검증함으로써 건축전문인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미국 실무수련 항목과 시험과목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데 과거엔 건물을 구축하는 계획적 측면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의 이해를 측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변화된 내용에는 프로젝트 관리항목이 보완되면서, 단순한 건물설계의 직능적인 측면에서 프로젝트 베이스의 기획에서 최종완성까지의 유기적 관계를 측정하는 것으로 건축사업무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사 시험 방식에 대한 논의
앞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자체의 과목, 형식 등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 중이며 훌륭한 제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여기에 새로운 건축시험의 주제, 유형,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제안을 하기 보다는 수없이 언급되어 왔던 논란에 대해서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예비시험에 해당됐던 필기시험의 폐지로 현재 실기시험만이 건축사시험의 유일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 시험에 대한 보완의 목소리는 더욱 더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건축사사무소의 납품 방식은 컴퓨터 출력물로 바뀐 지 오래고, 대부분의 실무수련생이 손으로 도면을 그린 경험이 전무하기에 업무를 그만두고 학원을 다니며 건축사시험을 준비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시험의 형식을 필기와 실기로 구분하는 것조차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다시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미국에서 시행되고 되고 있는 CBT(Computer Based Test)가 대안의 하나로 제시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여기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컴퓨터로 실기시험을 대체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 실정에 운영이 가능한가의 문제다. 여기에는 한국 건축계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에서 컴퓨터기반 시험제도가 도입된 것은 캐드(CAD)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과거 손으로 작성하던 시험 유형이 컴퓨터로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건축사시험은 컴퓨터로 시험을 보기 이전에도 이미 작도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 아닌 문제해결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컴퓨터의 도입은 단지 시험 채점과 운영 방식 효율성을 위한 것이며 CAD의 출현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 장의 드로잉을 수 시간 동안 작성하고 이를 통해 당락을 결정하는 한국 건축사 자격시험은 필수적인 드로잉능력이 없다면 답안을 작성조차 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를 바꾸려면 오히려 시험문항을 대폭 늘려서 조건을 제시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다항목 시험문제로 바꾸고 문항당 10∼30분 안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미국식 문제 유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건축사 자격시험은 결국 실무수련의 경험치를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해야 하며 이 능력을 적절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앞서 설명한 실무수련과 건축사 자격시험의 일치가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답안을 컴퓨터로 작성하느냐 손으로 제출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컴퓨터냐 아니냐의 논란을 비로소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글. 김남훈 Kim, Namhoon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미국 건축사(AIA)
김남훈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미국 건축사(AIA)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건축대학 원(Harvard GSD)에서 Master of Architecture 학위 취득 후 Cannon Design, CBT Architects 에서 다수의 마스터 플랜, 병원, 고등교육시설 및 복합용도건물 설계를 담당했다. 미국 등록건축사이며 2007년 이후 명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하며 건축설계방법론과 건축설계 강의를 맡고 있다. 다수의 국내외 건축설계공모전에 참여하여 입상했으며 대표 당선작 으로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삼육대 청소년 비전센터, 임대주택100만호 기념단지 등이 있다.
knamhoon@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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