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건축사의 위상과 자격시험 제도 개선 2020.7

2023. 1. 17. 09:2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반세기 이상 유지되어 온 현행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자격증 소지자조차 자괴감을 느낄 만큼 긍정적인 면이 없습니다. 때문에 새 건축사 자격시험은 큰 틀에서 한국 건축사가 지녀야 할 직능 중심으로, 건축실무에 보다 유익하도록 재편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험제도를 과연 건축실무를 해본 사람이 만들었나?”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선진사례를 맹목적으로 참조하기 전 현업의 국내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의 의견과 제안이 중점적으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번 담론 글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쓰였지만 공통된 방향을 가리키며 가장 눈여겨볼 화두는 건축사의 직능은 ‘스킬이 아닌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겁니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방식이 있고 이에 익숙할수록 고득점이 가능합니다. 현행 건축사 자격시험이 대표적인 예로 실무능력을 검증하려는 취지이나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학원에서만 ‘시험을 위한 시험스킬’ 수련이 가능합니다. 최근 진행된 대부분의 연구들은 미국 제도를 참조 중인데 한국 것에 비해 검증항목이나 시험방식에 큰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이를 대입한다 해도 바뀐 제도를 잘 분석한 시험 전문 학원들은 사무소에서 바쁘게 실무 중인 응시생보다 고득점할 수 있는 스킬을 개발해 낼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전에 비해 정도만 다를 뿐 건축실무와 자격시험 간의 괴리감은 시간에 비례해 다시 늘어날 겁니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새 자격시험 제도는 수험스킬이 아닌 실무경험이 바탕이 된 직업적 판단력과 전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판정하는 일련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즉, 통상적인 시험방식이 아닌 한국적 실무상황에 맞춘 독창적인 검증방식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흔히 제도적 변화를 모색할 때 시작도 하기 전 변화폭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가리키며 현실성을 운운하기도 합니다. 현행 제도가 초래하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의 낭비와 비교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건축교육, 실무수련, 자격시험으로 구성되는 일련의 과정 중 가장 핵심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오래, 늦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번 개편에 실무계는 관심을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직업적 판단력과 전문적 문제 해결 능력은 일반인들이 전문직을 찾는 이유이고 전문자격증의 사회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 김주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한국 건축사·영국 건축사

 


 

02 Improving the Status of Architects and the Architect Registration Exam System

 

2020년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화두 안에서 급격한 사회적, 기술적, 환경적, 제도적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다. 역사책에서나 있을 법한 전염병이 전 세계적 팬데믹으로 매일 우리를 압박하는 와중에 건축설계 분야에서도 재택근무와 비대면 회의의 비중이 커졌다. 또한 휴대폰이라는 기술을 넘어 날아다니는 택시는 물론이고 자율 운행 자동차도 이미 출시돼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거기에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연 2회 건축사 시험도 시행 첫 해를 맞아 지난 6월 20일 상반기 시험을 막 치룬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1년에 2회 치르게 되는 우리나라의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와 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까?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이 수행한 ‘건축사자격제도 운영에 대한 개선방안 연구(2019년 2월)에 따르면 연 2회 시험 도입에 이어 미국에서 아주 오래전에 시행한 컴퓨터 프로그램(AUTO CAD 등)을 이용한 시험방식이 개선 방안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손으로 그리는 것을 컴퓨터로 대체한 것을 제외하고는 건축사 시험의 내용면에서 크게 변경된 부분은 없어 보인다. 

건축사 자격시험을 둘러싼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 보인다. 그 가운데 건축사와 시험의 위상과 실효성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이다. 의사, 판사, 변호사, 세무사와 같은 다른 전문직의 경우 학원을 다니건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건 시험 공부를 위해 습득한 내용을 자격증 취득 이후 실무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그런데 건축사의 경우 시험과 현실 실무에서의 괴리가 너무 크다. 시험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수험생은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건축사의 여러 가지 자질과 능력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작도하는 스킬만을 준비하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1학년 때만 제도판에서 작도를 할 뿐 이후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진행하다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선긋기 연습부터 시작하며 시간을 보내고, 합격한 후에는 다시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이후 컴퓨터로 작도가 바뀌어도 시험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자격증 취득 이후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 시험만을 위한 시험이고 거의 제도 기능사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상과 실효성에 대한 이슈는 출제되는 문제 방식과 그 평가에서 더욱 문제시되고 있다. 대개 학원을 다녀야만 합격이 가능한데, 이는 시험이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기획력, 계획적인 요소, 법제도 이해력, 설계자 고유의 창작적인 면을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험과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정작 이 부분에서 오히려 모순이 생긴다. 기획과 창의력 대신 짧은 시간에 기계적으로 출제자의 의도만 파악하고 예상되는 모듈에 맞춰 실수 없이 그리기만 하면 된다. 자격증 취득 후 본인이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니 건축사라는 자격증 자체의 위상은 공무원과 공기업 시험에서의 가점, 일부 급여 인상에 대한 기대, 그리고 사무소 개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다.
이 부분은 대학 졸업 후 실무수련 시에도 연속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는 5년제 대학 졸업 후 3년의 실무수련을 하면 건축사 자격시험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주변에 실무만 3년차인 건축사사무소 소장(건축사)이 다수 존재한다. 뭐 국가에서 공인한 건축사이니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얼마 전 시행한 서울시 모 소방서 공모전에선 참여작 모두 미관지구 3미터 후퇴를 적용하지 않아 당선작 없음으로 허무하게 심사가 마무리됐다. 아무리 참여 건축사가 젊다고 해도 이러한 사례는 예비 건축사의 실무수련 관점에서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리고 도시의 대부분인 일반주거지역 중소형 건축물에서 가장 중요한 정북방향 일조사선 적용의 경우 실제로 학원에서 처음으로 이 부분을 접하고 문제 풀이 자체로 접근하는 예비 건축사 혹은 실무수련자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마저도 부족해서 일부 학원에서는 1교시 배치 문제의 경우 답안 작성 시 스케일을 조금 작게 그리면 훨씬 여유 있어 보여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얘기를 하고 수험생들은 이를 더 귀담아 듣는다. 이쯤 되면 건축사와 시험의 위상은커녕 합격을 위한 실무수련 자체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졸업 후 다양한 사무소에서 실무수련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3년이라는 짧은 실무수련 기간에 건축사가 알아야 할 모든 내용을 습득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사무실의 규모와 수행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법규와 기술적인 부분이 너무 다양해서 무엇이 실무수련에 우선시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이런 다양함을 담지 못하는 시험과 이를 준비하는 실무수련자의 입장이 더해져 매년 시험 준비를 위해 반복되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 사무소에서의 경력직 직원 부족 현상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건축사자격제도 연계성 강화_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개선 시 중요한 점은 ‘실제 실무를 열심 히 수련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설계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시험·제도’로 변경되 는 것이다.



기획부터 준공까지 건물 하나를 완성하는 동안 건축주, 시공사, 허가권자와 끊임없이 협의하고 문제없이 업무를 진행하기 위한 ‘건축사의 역량’은 물론이고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까지 건축사 시험과 실무 수련 제도에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양한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이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내용도 준비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실무를 열심히 수련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설계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시험·제도로 변경되는 것이다. 출제 의도에 맞는 작도 방법을 배우기 위해 굳이 학원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응시자가 교육받고 수련한 것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린 후 자격증을 주고 이를 실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선순환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건축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시험제도가 정착될 것이고, 많은 실무 수련자들 또한 학원이 아닌 본인이 하고 있는 업무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글. 김창균 Kim, Changgyun (주)유타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김창균 (주)유타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 위를 받았다. 이후 건축설계뿐 아니라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며 실무경험을 쌓았고 2009년 UTAA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현재 (주)유타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당진시 공공건축가로 활 동하고 있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젊은 건 축가상’, 2013년 목조건축대상, 2018년 스틸하우스 건축대전 최우수상, 2019년 경남건축대전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주 요 작업으로 포천 피노키오 예술체험공간, 서울시립대학교 정 문, 삼청가압장, 보성주택, 이천 상가주택(Sugarlump), 용인 단독주택(규우주), 파주 시네마하우스, 양산 언덕위의 집, 제주 H-HOUSE, 청담동 비원, 도시다반사, 여수 모이핀 카페, 은혜 의 교회 채플 등이 있다. prism082@nate.com (주)유타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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