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개선에 대한 고찰 2020.7

2023. 1. 17. 09:2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반세기 이상 유지되어 온 현행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자격증 소지자조차 자괴감을 느낄 만큼 긍정적인 면이 없습니다. 때문에 새 건축사 자격시험은 큰 틀에서 한국 건축사가 지녀야 할 직능 중심으로, 건축실무에 보다 유익하도록 재편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험제도를 과연 건축실무를 해본 사람이 만들었나?”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선진사례를 맹목적으로 참조하기 전 현업의 국내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의 의견과 제안이 중점적으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번 담론 글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쓰였지만 공통된 방향을 가리키며 가장 눈여겨볼 화두는 건축사의 직능은 ‘스킬이 아닌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겁니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방식이 있고 이에 익숙할수록 고득점이 가능합니다. 현행 건축사 자격시험이 대표적인 예로 실무능력을 검증하려는 취지이나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학원에서만 ‘시험을 위한 시험스킬’ 수련이 가능합니다. 최근 진행된 대부분의 연구들은 미국 제도를 참조 중인데 한국 것에 비해 검증항목이나 시험방식에 큰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이를 대입한다 해도 바뀐 제도를 잘 분석한 시험 전문 학원들은 사무소에서 바쁘게 실무 중인 응시생보다 고득점할 수 있는 스킬을 개발해 낼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전에 비해 정도만 다를 뿐 건축실무와 자격시험 간의 괴리감은 시간에 비례해 다시 늘어날 겁니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새 자격시험 제도는 수험스킬이 아닌 실무경험이 바탕이 된 직업적 판단력과 전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판정하는 일련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즉, 통상적인 시험방식이 아닌 한국적 실무상황에 맞춘 독창적인 검증방식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흔히 제도적 변화를 모색할 때 시작도 하기 전 변화폭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가리키며 현실성을 운운하기도 합니다. 현행 제도가 초래하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의 낭비와 비교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건축교육, 실무수련, 자격시험으로 구성되는 일련의 과정 중 가장 핵심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오래, 늦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번 개편에 실무계는 관심을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직업적 판단력과 전문적 문제 해결 능력은 일반인들이 전문직을 찾는 이유이고 전문자격증의 사회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 김주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한국 건축사·영국 건축사

 


 

03 Consideration on the improvement of the architect qualification exam system

 

“미국, 영국 모두 건축사협회 또는 건축사등록원 주도로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기준을 가장 먼저 수립, 
 이를 중심으로 건축학교육, 실무수련, 실무교육제도 설계해”


현황 및 개요

2027년부터 시행 예정인 새 건축사시험제도를 두고 여러 방안들을 모색 중인 현재, 최근 진행된 대부분의 연구는 학계나 교육계 주관이었다. 제도 분석 및 개선은 연구 영역이니 학계가 하는 것, 서로 다른 역할일 뿐 큰 틀에서 학계, 실무계 모두 건축계 내 공생관계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관련 제도의 주요 참조 대상이었던 미국, 영국 모두 건축사협회 또는 건축사등록원 주도로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기준을 가장 먼저 수립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건축학교육, 실무수련, 실무교육제도를 맞추어 왔다. 이는 2006년 건축교육제도, 2012년에 실무수련, 실무교육제도, 2027년에야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가 개편 예정인 우리와는 완전히 반대 순이다.

이러한 국내 상황을 들여다볼수록 단순한 순서 문제 이상으로 건축사 자격증. 건축사의 업역과 역할에 대한 우리 건축계 내부의 인식이 비춰지며 이는 우리 건축계가 처한 사회적 현실과도 연결된다. 이 글은 가장 중요했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진 단추가 제대로 끼워져 한국 건축사의 대내외적 인식과 입지를 크게 개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 제도별 현황과 건축사시험제도와의 연계성을 되짚어 본다.
건축교육 과정의 재편

2006년부터 시행된 국내 건축학 교육인증 과정은 WTO 시대에 대비해 국가 간 전문자격증의 통용을 염두에 두고 시작된 건축사제도 개편의 일환이었다. 이는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존 건축사란 전문직을 바라보던 개념을 서구 기준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였다. 서구의 중세까지는 종별 길드의 장인들이 모여 설계와 시공을 하며 건축물들을 지었지만, 르네상스 시기 건축물의 예술적 가치가 중시되며 화가, 조각가 출신의 건축가들이 그린 설계도에 따라 시공업자가 건물을 짓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후 건축가들은 건축주의 다양한 인문학적 요구 조건들을 수렴, 건축적으로 재해석(설계)하고 이를 시공하기 위한 전문언어(설계도서)로 변환하는 전문서비스 업역을 형성하였다.

국내에 건축학교육인증이 시행되기 전 건축교육은 학교에 따라 건축설계가 필수과목이 아닌 경우도 있었으며 건축전공자의 학부 지식수준을 검증하던 예비시험 역시 건축설계 외 과목들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건축설계를 중심으로 한 서구적인 건축학교 과정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반면 현 건축학 교육인증 교과정은 건축설계능력을 중심으로 서구 건축가의 광범위한 지식체계를 모형화한 체계이며 건축학교육인증원은 수업환경, 교과정, 수업결과물을 세부 항목별로 검증, 인증함으로써 기존 예비시험의 기능을 대체한다. 더불어 대부분의 국내 건축학 교육인증 교과정들이 전공과목들로 5년을 빼곡히 채우는 비대한 체계라는 점에서 이전 4년제와는 다른 수준을 요구함이 비교적 명백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학부 과정은 어디까지나 실무 전 소양을 다지는 단계이며 학습범위가 넓은 만큼 졸업 후 설계 외 분야로의 진출이 빈번하다.1)

실무 중심 시험제도로의 재편

① 실무수련제도

영미권 건축사시험제도는 건축실무 경험의 질과 양을 검증하려는 취지이기에 실무수련 제도와 연동되며 우리나라는 2012년 건축사등록원을 통해 실무수련제도를 시작하였다. 이는 단순히 재직 기간만을 산정하던 건축사보 실무경력제도와 달리 건축사 업무를 항목화하여 시간단위로 일정 기준 이상을 경험하도록 요구한다. 이를 위해선 모범적인 실무모형을 바탕으로 건축사업무를 항목화해야 한다. 나아가 현실 속 실무 양상이 사무소, 프로젝트별로 매우 다르기에 실무수련자 스스로 균형 잡힌 경험을 얻으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사측을 대변하는 감독건축사, 직원인 실무수련자 양측 모두에게 실무수련서상 요구사항을 사실과 다르더라도 최대한 빨리 달성함이 유리하기에 작성 내용이 진실되지 않을 수 있고 현 제도상 그 진위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

대부분 국내 실무자들은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가 실무경험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건축사사무소에서 현 실무수련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거나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2) 이는 아직까지 새 건축실무제도와 연계되지 않는 이전 시대의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가 운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새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실무수련 기록의 진실성을 검증하고 높이는 방안은 여전히 마련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보완책으로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의 연구는 면접을 통한 검증3)을 제안한다. 이는 영국 건축사시험제도를 참조한 것으로 보이며 영국 건축사시험제도는 건축사협회의 시험감독관(현업 건축사)이 건축사자격시험 응시생의 실무수련기록(PEDR), 프로젝트 분석보고서(case study) 등의 제출물4)을 분석한 후 진위가 의심되거나 취약한 부분에 대해 묻고 응시생의 답변을 통해 진실성을 검증하는 면접이 최종 관문이다.

일단 실무수련자들이 균형 잡힌 건축실무를 추구하기 시작하면 소형 건축사사무소 비중이 압도적인 국내 현실에 비추어 매우 유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는 프로젝트 단계별 경험 외 프로젝트 관리, 사무소 관리 등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엔 소규모 사무소가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며 실제로 영국 건축사보들은 대체적으로 건축사자격시험 응시 전 작은 사무소에서의 실무를 선호한다.
  
반면 일부 고르지 못한 경험이 있는 실무수련자들에겐 간접경험을 통한 전반적 이해를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한다. 영국 실무수련제도는 큰 프로젝트의 팀원인 경우 주요 회의에 참석한 담당자에게 프로젝트 상황을 물어 이해를 하는 간접경험(shadowing)5)을 허용하며 이를 통해 실무수련자 스스로 프로젝트 진행의 전반적 상황과 나아가 사무소 경영 이치를 이해하는 데 노력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실무수련자인 직원에게 매우 큰 동기부여가 되며 노사 양측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추가적으로 실무수련 기록서는 프로젝트 및 자신의 업무에 대한 분석을 상세히 서술하도록 보완되어야 한다. 항목별 시간만을 기록하는 현 양식으론 내용의 진위성을 파악하기도, 경험의 깊이를 검증하기도 어렵다.

②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새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를 모색함에 있어 미국과 영국 등을 주로 참조하겠지만 국가별 실무환경과 업역의 차이를 감안할 때 한국 상황에서 요구되는 실질적인 업무능력들을 항목화하여 독자적인 모범 실무모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공사감리에 대한 책임범위가 나날이 가중되는 현 상황에 비추어 관련 항목을 보다 세부화할 수 있겠다. 단, 국내 건축사의 업무항목을 언급할 때 주로 참조되는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과 같이 도서명 위주로 항목화할 경우 주요 업무임에도 도서화되지 않거나 중요성에 비해 항목 수가 적을 수 있기에 영미권처럼 업무 내용과 성격 중심으로 항목화하여 직업적 판단력과 전문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어떠한 시험제도라도 수험자 입장에선 시험 형식을 습득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현행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실무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학원에서만 요령 습득이 가능한 형식이기에 문제가 크다. 컴퓨터를 이용하도록 기술적 보완을 하고 보다 다양한 답안작성 방법을 통해 실무경험치를 검증하도록 개선할 순 있겠지만 이 역시 시험 형식을 습득하는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면 사무소에서의 실 경험보다 학원에서의 요령연습이 합격에 유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건축사 자격시험은 응시생이 일상적 실무를 지속하는 가운데 실무경험의 질과 양을 쉽게 검증받을 수 있고 나아가 모범적인 실무모형을 습득하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재편되는 게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실무경험 중심으로 직능을 평가하는 시험제도인 만큼 비인증 건축교육과정 출신 실무수련자에게도 응시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한국건축학교육인증제도의 주 참조대상인 미국, 영국도 비인증과정 이수자에게 보다 긴 실무수련기간을 조건화함으로써 건축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데, 우리는 2024년 이후부터 비인증과정 졸업자에겐 자격을 부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건축사에 대한 건축계 내부의 인식

우리 건축계 내 건축설계직을 대표하는 단체가 대한건축사협회 외에도 여럿 있는 상황은 건축사·건축가의 업무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대한건축사협회 외 단체들은 건축설계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차별점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건축설계능력을 중심으로 교과정을 재편한 건축학교육인증제도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예를 들어 건축학교육인증과정의 필수과목인 건축설계수업은 과거와 달리 스튜디오 단위로 편성되어 실무건축가들에게 디자인 중심 교육과 평가를 받고 건축이론 및 역사 과목들은 건축설계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충분히 다룬다. 이러한 인증교과정이 건축사 자격제도와 맞물린 현재 한국건축사의 상은 이미 과거와 달라지기 시작한 셈이며 실무수련제도 및 새 자격시험제도의 이행으로 그 변환이 완성될 것이다. 따라서 새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는 모든 건축설계직 단체가 존중할 만한 직업능력과 가치를 기준으로 내세움으로써 장차 건축계 내부의 통합을 도모하고 건축 관련 제도의 지속적인 개선으로 이어질 첫 단추가 되길 바란다.

 

 

 

 

 

 

글. 김주원 Kim, Juwon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한국 건축사 · 영국 건축사

 

김주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한국 건축사 · 영국 건축사

 

김주원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런던 에이에이스쿨 디플로마 과정을 졸업했고 영국, 한국에서 건축실무 후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설계전임교수 및 건축사사무소 알에이더블유 대표이다. 한국 건축사, 영국 건축사를 소지했으며 연구와 건축설계를 병행 중이다.

 

 

 

 

juwon.raw@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