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면 표준화·모듈러 건축…“BIM의 시대? 이미 왔다”_권순욱 교수

2023. 1. 17. 09:21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도입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됐던 건설정보모델링(BIM :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이하 BIM)이 어느새 성큼 다양한 분야에 진입했다. 영국, 싱가포르,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공공사업 시 BIM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2018년 국토교통부에서 ‘스마트 건설기술 로드맵’을 마련한 후 공공사업에 BIM을 단계적으로 도입해왔다. 대부분의 발주기관들은 오는 2025년까지 공공사업에 BIM을 전면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및 미래도시융합공학과 교수이자 국제건설자동화학회의 종신 상임이사인 권순욱 교수는 ‘스마트 건설 관리’ 연구자이자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CM, BIM의 권위자다. 관련 분야의 책 8권과 100편 이상의 논문을 집필하고 30여 개의 특허·소프트웨어 등록을 보유하고 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 토목공학 박사 출신으로, 삼성물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일반 기업과 국가기관에서 실무와 이론을 두루 경험하며 경력을 쌓았다. 건설연구 개발사업, 첨단 융복합 건설기술 등 다수의 국가 건설 R&D에 참여해 초고층 자재, 안전 모니터링, BIM 프로세스 표준개발 등의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해외 연구자들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세계 석학들과 ‘노령 공학’ 관련 영문교과서를 공동 집필(스마트주택 챕터 담당)했고, 2016년과 2019년엔 국제건설자동화학회와 국제프로젝트관리학회의 연사 자격으로 강단에 섰다.

“영국, 싱가포르 등에선 공공사업을 100% BIM으로 발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일정 규모의 발주 물량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공공기관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국가가 전체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 아닐까요?” 6월 10일 그의 연구실에서 권순욱 교수를 만나 BIM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스마트 건설 관리 연구자 권순욱 교수가 6월 10일 성균관대학교 연구실에서 월간 건축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설 정보화 연구 등 그 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대한건축학회 교육상을 수상했다.


Q 발주기관들이 BIM 전면 도입을 목표로 시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BIM과 관련해 기업 컨설팅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BIM을 도입한 기업들이 얼마나 되는 편인가요?

디스플레이, 반도체를 만드는 전자기업들의 경우 몇몇 곳들에서 기획-설계-시공-유지 전 단계를 풀(Full) BIM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BIM 데이터로 시공도 하고 샵 드로잉도 합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BIM을 팹(Fabrication: 산업 플랜트 생산시설)에 단계적으로 도입해왔습니다. 이때 건축사사무소-발주처-건설사-협력사들이 BIM의 룰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생산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4~5년 정도 PI(Process Inovation) 컨설팅을 해줬습니다. 전자기업의 팹은 모듈화하기 쉬울 뿐 아니라 패스트 트랙(Fast Track), 즉 설계도면이 완성되기 전에 시공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자기업 측에선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바꾸길 원합니다. 그래픽, 논 그래픽 정보를 축적해놓으면 유지·보수할 때에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라인 전체나 부분을 바꿀 일이 많은 팹에선 3차원 정보를 갖고 있으면 변형이나 응용이 쉽거든요. 팹은 안전과도 관련이 큰데요, BIM은 이런 것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공헌합니다. 전자기업은 속도가 중요한 분야라 그들 자체가 선진화된 메모리를 신속·정확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BIM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Q BIM은 최첨단 기술인만큼 연구적인 측면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건설 쪽 상황은 어떤가요.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사례들이 꽤 있습니다. 모 대형 건설사에선 아예 BIM으로 전환 설계를 한 뒤 공공주택을 짓기도 했습니다. 기업 내에 BIM 전담팀을 꾸리고 이들을 현장에 투입해서 물량을 뽑고 자재 발주를 진행했습니다. 정확한 물량 산출이 가능하니 과오더하지 않고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또 BIM 모델을 VR이나 AR로 바꾼 뒤 시공해야 할 부분을 현장에서 3D로 확인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BIM이 아직 연구단계가 아니냐고 했던 대형 건설사 혹은 공공 발주기관 종사자들이 지금은 학교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Q 건축계에선 BIM을 얼마나 활용하고 있을까요. 

조선 산업에선 주요 부분을 시공할 때 대부분 역설계(레이저 스캐닝 등 3차원을 통해 얻은 현장 이미지로 3D 모델을 얻어내는 기술)를 시행합니다. 건축계에선 최근 리모델링 등에 사용되고 있어요. 기존 도면이 현재 시공된 건물을 반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이 기술을 활용해서 부재를 바꾼다고 하면 기존 도면보다 정확한 시공위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화재로 전소됐던 숭례문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역설계로 형상화된 BIM 데이터 덕분이었습니다. 과거엔 문화재를 중심으로 3D와 BIM 등이 사용됐다면 앞으로는 산업 플랜트와 일반 건축물에도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이라 봅니다. 특히 비정형 건축물의 경우 패널들이 워낙 복잡하게 엮어있어 준공(As-built) 모델과 제작한 패널이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요, 골조를 맞춘 뒤 스캔을 해서 준공 모델을 잡은 다음 그에 맞게 패널을 제작하거나 수정하게 되면 현장에서 재시공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지금 건설업계에선 부재를 공장에서 만들고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자는 것이 트렌드입니다. 이를 OSC(Off-Site Construction)라고 부르는데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업무 환경이 가속화됨에 따라 이런 오프사이트 중심의 업무환경에 대한 흐름은 더욱 빨라지고 건축계에도 영향을 끼칠 겁니다. 

Q 현재 건축 관련 법제가 건축사에게 책임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개정되는 추세입니다. BIM을 적용하면 그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물량을 자동으로 산출해서 뽑아주니 공사비를 보다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고 오류도 잘 잡아낼 수 있습니다. 효율 또한 좋아질 겁니다. 가령 한 달 간 열 명이서 하던 업무를 BIM을 활용할 시엔 다섯 명이 보름 안에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BIM 기반의 설계가 가능해진다면 그 다음은 정형적인 건물의 도면이 표준화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될 겁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할 때 교수님께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이젠 설계도면을 많이 그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요 도면을 몇 개만 그리면 건물을 결정하는 요소에서 파생되는 라이브러리들로 디테일한 설계도면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표준화 아닌가요? 앞으로는 충분히 가능해질 일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모듈러 건축, PC공법(Precast Concrete), 스마트건설도 함께 발전할 겁니다.

Q 그럼 모듈러, OSC, Prefabrication, PC(Precast Concrete) 등이 가능하려면 BIM은 필수인가요?

그런 셈이죠. 3차원 객체 기반 설계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것들이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출발점은 디지털 건축이 돼야 하겠지만요, 그 기반은 BIM입니다. BIM 기반의 설계가 가능해야 하고, 이를 통해 완성된 패널들을 세미 오토메이션화해 사람이 손쉽게 또는 건설장비가 자동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돼야 해요. 이는 한국에선 ‘스마트건설’로 정의하는 내용입니다. 

Q BIM이 현장에 적용되는 속도가 뉴스로 접하는 것보다 빠른 것 같습니다. 

지금은 클라우드와 컴퓨테이션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습니다. 버추얼 데스크탑 기술을 활용하면 컴퓨터에 있는 소프트웨어를 핸드폰으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느리거나 끊기는 것 없이 다 됩니다. 경량화 등 몇 가지 문제들이 해결되면 BIM을 기술적으로 적용하는 덴 현재 무리가 없습니다. 경제성, 생산성 측면에서의 효율성 때문에라도 결국 업계 대부분이 첨단화될 겁니다. 건설사 쪽은 특히 그렇습니다. 인건비는 올라가고 노동자들은 고령화돼 상품 품질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중소 건축사사무소들 중에서도 설계 프로세스를 BIM 기반으로 바꾸려고 준비하는 곳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Q BIM을 적용한 건축사사무소에 대해 더 말씀해 주세요. 

1세대엔 건축사사무소에서 2D로 설계를 하고 BIM 업체에 외주를 맡기는 식이었습니다. 이 경우 건축사사무소 측에선 BIM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죠. 하지만 현재는 건축사사무소 직원들 스스로가 BIM을 배워서 전문 BIM업체에 물어보기도 하고 그럽니다. 바람직한 형태예요. 업체와 협업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은 BIM 역량을 쌓고, 사무소는 사무소대로 설계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해요. 그렇게 돼야 BIM이 갖고 있는 엔지니어링 정보로서의 가치를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Q 결국 BIM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설계, 발주, 시공 등 관련 업계들이 모두 BIM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단 말로 이해됩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동시에 우려스러운 부분이에요. 대형 기업들이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관련 협력사들이 BIM을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의문입니다. 발주처, 건축사사무소, 협력사 등의 역량이 전체적으로 올라가야 그것들이 맞물리면서 진정한 BIM이 구현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BIM이 언제쯤 건축계에서 활발하게 사용될지를 묻는다면 저는 그런 시기는 “이미 왔다”고 대답하고 싶어요.

Q 대형 업체야 BIM을 위한 투자나 시도들이 가능하겠지만 큰 자본이 안 들어가는 프로젝트엔 BIM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PC공법을 연구할 적에 연구원, 건축사사무소, PC사, 건설사가 다 함께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이 우리나라 기술이 뒤쳐져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편견 때문에 진전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나라엔 역량을 갖춘 건축사사무소들도 있고, BIM 팀을 꾸린 기업들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주목할 국가로 일본, 싱가폴, 홍콩, 중국을 보는데요. 이들은 우리와 환경이 비슷하고, PC공법 프로세스(설계도면을 PC사로 넘기면 그곳에서 폼을 만들어 PC를 제작한다) 적용에도 적극적입니다. 일본은 PC공법으로 30층짜리 공동주택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런 추세로 볼 때 향후 3~5년 사이에 비용 크로스가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PC가 더 저렴해지는 단계가 오는 것이죠.

Q BIM 확산·정착을 위해선 어떤 정책적 도움이 필요할까요?

정부가 관여하긴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계별로 디테일하게 납품하거나 시공 단계 중 어떤 부분에서 강제로 적용하는 규정을 만들면 업계에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선 발주처에 BIM 전문가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단계별로 촘촘하게 나눠서 관리를 해줘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없이 결과물을 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중간 과정은 형식적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어요. 풀 BIM으로 시공된 런던 히드로 제5청사 이야기를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발주처 측은 히드로 제5청사를 BIM 기반으로 설계·시공하기 전에 먼저 공항 주변에 부지를 마련하고 관련 팀 직원들에게 BIM 설계로 목업용 사무실을 짓게 했어요. 직원들은 BIM 기반 업무의 문제점을 리포팅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은 뒤 ‘적용된 BIM 프로세스’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BIM 스터디를 하게 됐죠. 쉽게 말해서 본 시합에 나가기 전에 직원들에게 연습 경기를 뛰게끔 한 셈이죠. 발주처 입장에서 보면 투자를 한 거예요. 이처럼 발주처가 전문성을 갖고 업계에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업계에서 알아서 해라 또는 강제적으로 이렇게 해라 하는 식이 아니라 발주처에서 BIM 인력을 확보하고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뒤 업계에 가이드를 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 없이 형식적으로 일이 진행됩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자체적으로 BIM 설계를 하도록 유도하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엔지니어링 플랜트(Plants Engineering) 쪽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BIM을 활용한 시공성 향상에 관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습니다. 건축계에서도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본인들의 필요에 의해서 BIM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쉽진 않을 테니, 교육 분야가 먼저 혁신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코로나19 사태는 건축계를 비롯해 산업 전반의 경제를 무너뜨린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힘겨운 상황에서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요즘, 건축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국, 싱가포르 등에선 공공사업을 100% BIM으로 발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일정 규모의 발주 물량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공공기관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국가가 전체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 아닐까요? 이를 실현할 네트워크 기술력은 충분히 갖춰져 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업무방식이 빠르게 정착되는 중입니다. 현재 젊은이들은 게임 세대예요. 3차원, 4차원에 감각적으로 익숙하죠. 이들에게 2D 도면을 이해하고 그려서 설계하라고 한다면?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다가오는 스마트 시대와 창의적인 인재를 맞이할 준비를 할 시점입니다. 변해야 합니다. 건축계에서도 이들을 위한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BIM이 테마에 불과했던 몇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발주처 중심 첨단 제조업계에서 BIM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기업 내에 전문 팀을 꾸리고 있습니다. 교육계 또한 BIM 툴을 다루는 스마트 관련 강의를 늘린다거나 관련 기업에서 투자를 받는 등 변화를 꾀하는 중입니다. 스마트 인재들이 조만간 현장에 투입될 텐데, 이때 업계에서도 이들에게 투자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들은 창의적인 젊은 아이디어로 보답할 겁니다.

 

 

 

 


대담 김주원 편집위원 · 글 이유리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