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실외 공간으로서의 발코니 구현을 위한 건축적 제안 2020.8

2023. 1. 18. 09:2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해외 도시들의 풍경과 우리를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 나는 점은 무엇일까. 단연 발코니 하나 없는 밋밋한 외관의 아파트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실외 공간이었던 발코니가 하나씩 불법 확장되면서 2005년부터 양성화되었고 우리의 도시경관에서 아파트 발코니는 사라지게 되었다.
건설사들은 애초부터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를 내놓았다. 같은 값이면 소비자나 공급자나 발코니를 확장하여 더 큰 실내면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도시의 경관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서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매연, 먼지 등으로 도심지의 외부공간이 쾌적하지 않았다. 지금은 핫플레이스 식당이나 카페에 외부 테라스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정도로 건축물에서 실외로 연결되는 외부공간이 중요해졌다. 도심지의 사무실들도 발코니가 있는 곳이 더 선호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는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아직도 없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은 다음의 문제들을 낳고 있다. 첫째, 내부공간은 넓어졌지만 외부와 단절되어 삶의 쾌적성이 떨어진다. 둘째, 실사용 공간인 발코니 확장 부분이 전용면적에서 제외되어 면적 산정 기준에 혼란을 준다. 세 번째, 밋밋한 아파트 디자인은 세계 10위권 내의 대도시인 서울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
이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발코니 확장은 이제 실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발코니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세 분의 의견을 구했다.

글. 조성욱 (주)조성욱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3 Architectural Proposal for Balcony Installation in the post COVID era

후지모토 소우가 설계한 라브르 블랑(L`Arbre Blanc)은 '흰색 나무'라는 뜻이다. 주거와 사무, 문화 공간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본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발코니다. 나무에서 수많은 가지들이 뻗은 것처럼, 넓고 다양한 발코니들이 돋보인다. 발코니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야외 생활 및 거주민들의 밀접한 관계 형성을 위해 계획되었으며, 일부 복층 아파트의 경우 외부 계단을 통해 발코니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얼마 전 일본 건축사 후지모토 소우가 설계한, 프랑스의 주상 복합 건물이 완공되어 화제에 올랐다. 이 건물은 최대 7.5m 길이의 캔틸레버에 이르는 7∼35㎡ 면적의 다양한 발코니가 건물 입면을 뒤덮어, 마치 잎사귀 가득한 한 그루의 나무처럼 디자인되었다. 최근의 전 지구적인 코로나 사태와 맞물려, 둥그런 건물 입면을 가득 메운 개성 만점의 수많은 발코니들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국내에도 점차 외부 공간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발코니를 가진 건물들이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역동적인 각양각색의 발코니들을 설계하고자 하여도 국내의 관련 법규들로 인해, 실제 구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발코니는 서양 건축에서 입면의 일부가 튀어나온, ‘(지붕 없는) 옥외 플랫폼’을 의미하였다. 이는 지상이 아닌 고층의 실내공간에서 외부의 자연을 접하는데 용이하였기에, 초기의 국내 아파트에서도 도입되었다. 그렇게 들어온 발코니 문화는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실내 확장의 교묘한 수단으로 변질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발코니 확장과 관련된 수많은 논란들은 오랜 세월 ‘태생적으로 옥외공간’이었던 발코니를 ‘실내공간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관련된 법규 및 지침들 역시 ‘발코니의 옥외공간으로서의 성격’ vs ‘보편화 불법 확장의 현실’ 속에서 타협점을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먼저 건축법에 명시된 발코니의 정의를 보면, 외벽에 접하여 부가적으로 설치되는 공간으로서 발코니의 취지가 드러나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필요에 따라 실내공간화가 가능한, 이중적인 성격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옥외 공간이었던 발코니가 이처럼 실내로서 편입이 가능해지다 보니, 역설적으로 ‘발코니 관련 기준 해설’에서는 과도한 실내공간화로 인해 ‘발코니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를 규정하기까지 하였다. 여기서도 발코니의 성격을 ‘실내화된 옥외공간이자, 실내·외 사이의 절충 공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면적 산출 방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건축법상의 면적은 원칙적으로 벽과 기둥으로 둘러싸인 실내공간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발코니는 사전적 의미로서 외벽 바깥에 위치하는 옥외공간임에도, 언제든지 실내화하거나 지붕이 덮인 공간으로 기정사실화하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면적 산출 기준까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일반적으로 실내공간화에 대한 가능성을 처음부터 염두한 발코니와 달리, 발코니의 원래 취지에 부합하는 내용도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건축물 심의기준’에는 외부 벽면 길이나 벽면 면적에 대비하여, 발코니 설치를 제한하는 내용이 있는데, (실내공간화가 불가능한) ‘실외공간의 발코니 형태’를 설치할 경우, 규정 완화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발코니와 관련된 조항이나 지침들을 보면, 우리 시대 발코니가 처한 이중적인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내공간으로의 확장을 고려한 기존의 발코니와 달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실외공간으로서 활용도가 높은 발코니를 장기적으로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발코니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옥외 성격을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발코니 상부에 해당 층의 지붕(또는 지붕 역할을 하는 슬래브)이 있는 경우, 실내공간화가 용이해지므로 옥외 공간형 발코니 타입에는 지붕이 배제된 형태를 전제 조건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명실상부한 ‘실외공간’이므로, 건축법상의 면적 및 관련 기준도 보다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필요하다면 2000년도 이전의 건축법에서처럼 발코니 외곽선으로부터 수직면의 면적 중 1/2이상이 난간벽이나 유리 새시 등으로 덮일 경우, 바닥면적에 산입하는 패널티 방안 등도 복합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prefabricated balcony 1 ⓒ www.wahoodecks.com


아울러 개방형 발코니보다는 돌출형 발코니를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개방형 발코니는 외벽의 길이와 발코니의 길이가 거의 동일하면서 얇고 긴 선 형태였으므로 실내공간화가 용이하였다. 이와는 달리, 점 형태의 돌출형 발코니는 필요한 구간에만 설치하여 일부의 실내 공간에서 외부 공간인 발코니로 나올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1년 중 장마나 혹한기를 비롯하여 실외 활동이 어려운 시기가 뚜렷이 존재하며, 난방 문화로 인해 실내외 온도차가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입면을 따라 설치되는 개방형 전면 발코니는 그만큼 개구부의 투명성이 요구되고 발코니로의 진출입을 위한 창호 설치가 다수 필요하기 때문에, 일부 구간만 설치되는 돌출형 발코니에 비해 열효율이나 실외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건물 전체의 열효율과 미관 등을 고려한다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개방형 발코니 보다는 필요 구간에만 설치되는 돌출형 발코니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prefabricated balcony 2 ⓒ www.wahoodecks.com
prefabricated balcony 2 ⓒ www.wahoodecks.com
prefabricated balcony 2 ⓒ www.wahoodecks.com



이를 좀 더 발전시킨다면, 신축 건물만이 아니라 기존의 건축물에도 손쉽게 부착이 가능한 선 제작 방식(pre-fabricated)의 발코니 시스템 역시 개발이 가능할 수 있다. 기존 건물에도 쉽게 설치가 가능한 이러한 산업화된 방식은 발코니의 다양한 활용법을 개선할뿐 아니라, 유사시 대피가 어려웠던 오래된 건물들의 피난 용도 등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실내공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실외공간’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 실내·외 사이 전이 공간으로서의 발코니도 이에 해당한다. 오랜 세월 발코니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실내 확장의 교묘한 수단으로서 타협점을 찾아왔다. 이제는 본연의 형태에 어울리는 옥외 공간이자, 돌출형 타입의 발코니로서 화려하게 귀환할 시간이다. 다양한 발코니들이 이 땅에도 많이 등장하여, 멋진 입면과 깊이 있는 공간감을 뽐내는 건물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글. 이양재 Yi, Yangjae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이양재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다년간의 시공회사와 설계사무소 근무 후,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건축사로서 항상 디자인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건축물 시장의 산업화와 신뢰도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lavisita@studio-elephan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