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한국만 쏙 빠진 ‘발코니 합창’ 2020.8

2023. 1. 18. 09:24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해외 도시들의 풍경과 우리를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 나는 점은 무엇일까. 단연 발코니 하나 없는 밋밋한 외관의 아파트들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원래 실외 공간이었던 발코니가 하나씩 불법 확장되면서 2005년부터 양성화되었고 우리의 도시경관에서 아파트 발코니는 사라지게 되었다.
건설사들은 애초부터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를 내놓았다. 같은 값이면 소비자나 공급자나 발코니를 확장하여 더 큰 실내면적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 도시의 경관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서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매연, 먼지 등으로 도심지의 외부공간이 쾌적하지 않았다. 지금은 핫플레이스 식당이나 카페에 외부 테라스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 정도로 건축물에서 실외로 연결되는 외부공간이 중요해졌다. 도심지의 사무실들도 발코니가 있는 곳이 더 선호되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주거공간인 아파트에는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발코니가 아직도 없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은 다음의 문제들을 낳고 있다. 첫째, 내부공간은 넓어졌지만 외부와 단절되어 삶의 쾌적성이 떨어진다. 둘째, 실사용 공간인 발코니 확장 부분이 전용면적에서 제외되어 면적 산정 기준에 혼란을 준다. 세 번째, 밋밋한 아파트 디자인은 세계 10위권 내의 대도시인 서울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
이 규정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발코니 확장은 이제 실내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발코니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세 분의 의견을 구했다.

글. 조성욱 (주)조성욱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2 Balcony chorus missing in Korea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에 잊혔던 공간 하나가 주목받고 있다. 발코니다. 각국의 봉쇄 정책에 세계인은 이동의 자유를 잃었다. 그야말로 기약 없는 ‘집콕’ 시대다. 집 밖은 위험하고 안은 갑갑한 상황인데 어디선가 노래가 피어오른다. 이윽고 ‘떼창’이 된다. 집안인데 방 밖인 공간, 발코니에서 펼쳐지는 ‘발코니 합창’이다.
집 밖을 못 나가니 빨래를 널거나 화분을 두는 정도로 쓰던 발코니에서의 활동량이 증가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SNS시대, 발코니는 그야말로 힙한 공간이 됐다. 세계 각국의 발코니 합창이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동주택 발코니에서 시작된 팝송 ‘아브라치아미(Abbracciamiㆍ안아주세요)’가 발코니를 따라 동네 전체로 퍼진다. 또 어느 나라에서는 EDM을 틀어놓고 춤 추기도, 각종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유명인사의 퍼포먼스여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 갇혀 있더라도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연대의 공간으로 발코니가 부상했다. 무명씨들의, 평범한 이웃 간의 소통이 더 훈훈함을 안겼다. 힘들지만 괜찮다고, 떨어져 있지만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현장이었다.

 

코로나 록다운 후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연대의 공간으로 아파트 발코니가 부상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주민들이 아파트 발코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가 바꾼 아파트 평면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이 발코니 합창에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해외 팝스타들이 한국 공연을 오면 그것도 일본 공연을 앞두고 흔히 하루 정도 일정을 껴서 서울 공연을 왔을 때도 감명 깊어 하는 것이 있다. 한국 팬들의 ‘떼창’이다. 언어가 다른 극동 아시아의 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을 다해 함께 불러주는 모습에 팝스타들은 반해 앞다퉈 약속한다. 꼭 다시 오겠다(말뿐인 경우가 더 많지만)고. 그런 떼창 강국인 한국인데 발코니 합창은 볼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발코니가 없어서다. 가구 수로 보면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 주택 유형 중 60%가 아파트다. 단독주택은 얼마 안 되고 다가구, 다세대 등이 주를 이룬다. 모두 아파트를 닮은 공간들이다. 방 밖인데 집 안인 외부 공간이 없는 집이 대다수다.  
2005년 베란다 확장 합법화로 건설사들이 아예 확장용 평면을 내놓으면서 더 고착화 됐다. 흔히 아파트에서 베란다라고 부르는 공간의 법적 명칭은 발코니다. 건축물의 외벽으로부터 돌출된 구조물이다. 베란다는 아래층이 더 넓어 아래층 지붕 덕에 생기는 여유 공간을 일컫는다. 폭 1.5m 이내인 발코니는 확장이 합법화되어 있지만, 베란다 확장은 불법이다.
발코니 확장 시대에 아파트 평면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남향으로 밝고 환한 집을 선호했다. 30평대 아파트를 보면 현관문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거실과 안방을 두고 북쪽으로 작은 방 둘과 부엌을 두는 것이 전통적인 배치였다. 20평대로 가면 방 사이즈가 작아지고, 40평대로 가면 방이 남쪽에 하나 더 붙었다. 아주 넓은 평수가 아니고서야 아파트 내부에 복도를 두지 않았다. 복도는 그야말로 버리는 공간이자, 어둡다는 인식이 컸다.
이런 평면 배치 때문에 밖에서 발코니만 봐도 아파트 평수를 짐작할 수 있었다. 2베이, 즉 발코니 쪽 창이 2개면 20∼30평대, 3개면(3베이) 40평대 이상의 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코니 확장으로 평면 배치의 법칙은 깨졌다. 모든 방들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20평대에서도 4베이가 가능하다. 즉 ‘방-거실-방-방’이 가능한 남쪽으로 쭉 나열되는 구조다. 실제 면적을 생각해 보면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지만, 마법 부리듯 그렇게 짓는다. 발코니 확장을 통해서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가면 더 극명하게 보인다. 발코니는 선만으로 존재한다. 방 안에 난데없이 하얀 선이 그어져 있다. 선을 없애지 않고서는 공간이 성립되지 않는다. 방은 좀 과장해서 눕지 못하고, 서서 자야 하는 수준으로 작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주방의 싱크대도 이 하얀 선에 걸쳐져 있다. 만약 확장을 하지 않으면 싱크대를 놓을 수가 없다. 공간이 쭉 나열되니 그렇게 기피하던 복도는 당연히 집 내부에 생긴다. 그런데도 발코니 확장을 통해 얻는 공간이 커서 복도가 생겨도 신경 쓰지 않는다. 20평대 아파트의 경우 5∼7평 가량이 발코니 확장을 통해 추가된다. 새 아파트의 경우 20평대가 30평대처럼 넓게 느껴지는 이유가, 실제로 넓어서다. 발코니를 확장한 면적까지 셈하면 요즘 20평대가 옛날 30평대다.
확장으로 얻어지는 공간을 서비스 공간으로 부른다. 이렇게 많은 공간을 고객에게 서비스로 준다 하니 싫어할 입주민은 없다. 마치 유통회사들이 ‘1+1’로, 붙여주는 하나가 공짜인 것처럼 홍보하듯, 건설사도 발코니 확장을 홍보하기 좋다. 하지만 발코니 확장비도 따로 있고, 애당초 바닥 면적을 넓히기 위해 건설비는 더 든다. 이는 분양가에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집이 상품화된 세계에서 발코니 확장은 모두가 행복한 선택이 아닌 필수품이 됐다.

 


#발코니 확장 합법화 전, 언제부터 새시를 달았나  

아파트 발코니는 엄밀히 대피공간이다. 고층 건물에서 화재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바깥 공간에 면한 중간 영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저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발코니를 한국처럼 실내공간으로 확장해 쓸 수 없다. 재난 발생 시 피난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웃집과 발코니를 붙여 설치하게 하고, 일본에서는 발코니 바닥에 여닫이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유사시에 옆집 또는 아랫집으로 대피할 수 있게 하는 용도다.
해외의 경우 확장은커녕, 새시도 설치 못 하게 한다. 발코니 합창은 이렇게 외기와 맞닿아 있는 공간이었기에 울려 퍼질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발코니 확장 합법화 전부터 새시를 달아서 내부 공간처럼 썼다. 언제부터였을까. 한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였던 마포 아파트(1962년 준공) 입주민도 새시를 달았다고 한다. 박 교수는 “마포 아파트 옛 사진을 보면 일부 세대는 비어 놓고, 일부 세대는 새시로 막아 써서 6층 아파트의 절반 가까이가 새시를 달았다”며 “엄밀히 공용공간이지만 스스로 확장하는 것에 누구도 말리지 못했고, 행정력이 쫓아가서 계도할 형편이 못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발코니가 밖이냐, 안이냐의 이슈는 반세기 전부터 논란이 됐다. 인구가 집중되는 대도시에서 한 평이라도 더 넓은 공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발코니를 내부 공간화 했다. 빨래와 장독대가 더 부추기기도 했다. 일상과 아파트 공간의 미스 매치로 일어난 일이다. 너도 나도 발코니에 빨래를 널었는데 나라님들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도시 미화를 위해 빨래가 보이지 않게 해라”는 지시에 발코니에 새시 마감을 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또 아파트 입주민들이 땅 속에 묻지 못한 장독을 발코니에 뒀는데 겨울이 되면 자꾸 얼어 터졌단다. 이를 막고자 발코니에 새시를 달아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실의 경우 바닥 난방이 아니라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다 보니 혹한에는 추웠다. 창호 기밀성도 당연히 떨어졌을 터다. 그래서 새시를 닫았다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이렇게 모두 발코니에 새시를 달아 내부처럼 쓰니, 더는 불법이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피공간으로서의 기능도 부각되지 못했다. 심지어 옆집과 맞닿은 발코니 벽은 유사시 부술 수 있게 경량 벽체를 뒀는데 거기다 수납공간을 짜 넣는다. 결국, 2005년 정부는 발코니 확장 합법화를 결정했다.
 


#외기 공간의 소중함, 집의 문법 또한 달라질 것

코로나 사태로 한국인들은 그야말로 바깥 공간을 그리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 이후 검색 키워드를 살펴보면 햇빛, 외출, 산책, 일상, 가족 등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집은 그야말로 모든 행위의 중심지가 된 터다. 장재영 신한카드 빅데이터 사업본부장은 “집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인테리어 관련 소비도 급격히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이런 시대에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외기 공간에 면한 발코니는 어떻게 바뀔까.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면 상품은 바뀔 거고, 관련 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집의 내부는 좀 작아지더라도, 햇볕 쬐고 바람 쐴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여론이 무르익는 때가 된다면 발코니를 포함해 집의 셈법과 문법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글. 한은화 Han, Eunhwa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중앙일보 기자

‘우리 생활에 더 가깝고, 쉬운 건축’,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위해 건축이 쉬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중앙일보 ‘한은화의 생활건축’ 칼럼을 비롯하여 생활 속, 쉽고 재밌는 건축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