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건축, 기획의 시대 2020.9

2023. 1. 19. 09:2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건축사_설계의 확장성을 묻다

최근 SNS에서 지난 20∼30년간 건축사의 설계대가 변화에 대한 토론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사실 공공에서 발주하는 설계대가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증가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민간 설계 시장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이는 90년대 이후 전체 소비자 가격 가운데 실질적으로 하락한 항목이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컴퓨터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시장에서 설계비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 하나를 분양하면 가장 큰 이익은 시행사와 건설사의 몫이고, 두 번째가 공인중개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주방가구 업체와 건축사 순이라고 말하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한 주장은 아니다. 대한건축사협회 차원에서 이를 보완할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 교육도 5년을 다녀야 하고, 어느 직종보다 전문적이면서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업역임에도 정작 현실에서의 보상은 다른 직종에 비해 요원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설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산업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건축물이 있고, 이와 관련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장과 관련 산업은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축사는 전통적인 산업구조 안에서 설계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나쁜 소식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급변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이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일부 건축사들을 중심으로 설계를 넘어 다양한 산업으로의 창의적인 확장성을 도모하는 움직임과 이에 따른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작은 변화는 다분히 놀랍기도 하고 후배 건축사들을 위해 반갑기도 하다. 이제 설계 이전 단계에서 기획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에 맞춰 건축물을 넘어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계를 하고 이후 운영까지 맡아 수익구조에 긍정적인 변화를 얻거나, 본인이 설계한 새로운 방식에 대해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기도 한다. 나아가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개발하고 건축 과정 전반을 공유하는 플랫폼 등도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도전과 성과가 어떤 의미가 있고 앞으로 전통적인 설계를 넘어 어떻게 확장성을 가지게 될지 관련된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본다.


글. 김창균 (주)유타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3 The Era of Planning Has Arrived in the Architectural Field

 

‘확장시대’에서 ‘축소시대’로

지금까지 한국은 전 세계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경험했다. 매년 10%에 육박하는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들은 도심에 몰렸다. 주택은 늘 부족했고 상업공간과 사무실 공간은 짓자마자 임대가 완료됐다. 같은 시기 단독주택은 다세대, 다가구 주택으로 분화되고 아파트를 위시한 공동주택은 부동산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대규모 공급이 이뤄졌다. 대형 건물도 시공하는 족족 분양과 임대가 됐다. 지금까지는 ‘시행’, ‘시공’, ‘분양’의 시대였다. 반면 저성장 시대는 시행, 시공, 분양보다 ‘임대관리’, ‘금융’, ‘개발’, ‘리모델링’이 더 중요해진다. 즉 매각차익보다 임대수익이 더 중요해지므로 종합 부동산 서비스나 자산 관리업체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더불어 공급자 중심의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수요자의 요구에 대응하는 형태로 건축 업무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실제로 건축 설계 단계 이전에 사전기획이 잘 된 경우에는 불필요한 설계 변경이나 공기 연장, 공사비 증액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건축물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 더불어 가장 큰 이유는 공실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신축과 리모델링 시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 대부분 건축주는 펀드나 금융권에 대출을 받기 때문에 상업건물의 경우 예상대로 임대가 되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건축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등장하고 설계자와 협업해 공간 콘텐츠를 구상하고 운영 전략을 수립하는 ‘기획 중심’의 건축서비스 업무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건축서비스산업과 기획업무의 현주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건축서비스 산업으로서 ‘건축기획’ 업무의 제도적 정착은 미흡한 실정이다. 2014년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을 통해 건축서비스란 단어가 처음으로 법정 용어로 인정받았고, 주요 업무인 건축설계가 「건설기술 진흥법」의 건설기술에서 제외됐지만, 설계에 앞서 수행해야 하는 기획 업무는 여전히 건설기술의 개념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설계 업무와 연속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공발주 사업의 경우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상 ‘사업계획 사전검토’는 전체 예산의 약 5% 이내로 정의하는데, 여전히 건축사사무소의 영역이 아닌 엔지니어링 업체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최근엔 입찰 참가 자격이 학술연구 용역기관, 엔지니어링사업자, 기술사사무소가 주이나 일부 건축사사무소가 포함되기도 한다. 해당 업무는 보통 ‘기본구상’, ‘타당성 조사’, ‘기본계획’이란 이름으로 분리되어 단일 사업보다 건축설계와 공동으로 발주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건축기획이란 정확하게 어떤 업무일까? ‘건축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서 설계 이전에 기본 방향을 설정하고 설계와 공사 이후에 유지 관리를 위한 사전 전략을 수립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업의 특성에 따라 ‘사업기획’과 ‘설계기획’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사업기획은 사업의 전반적인 기본 방향을 정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업무로, 사업의 일반적인 개요에서 시작해 현황분석, 건축물 규모 분석, 예산과 사업관리, 운영계획 등을 수행하는 종합적인 활동이다. 또한 설계기획은 사업기획을 토대로 건축물 디자인 방향을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설정하는 업무로, 대지와 건축의 세부적인 설계 조건을 제안하는 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설계기획은 「건축사법」에 따라 그 업무를 규정하는데, ‘건축물의 규모검토’, ‘현장조사’, ‘설계지침’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건축기획의 개념이 현재 건축법상 명확하게 없고, 유사한 기술서비스 업무가 「건설기술 진흥법」,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건축사법」 곳곳에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산재해 있다. 그마저도 대부분 극히 일부의 공공건축에 국한되며, 소규모 사업은 제외된 실정이다. 「건설기술 진흥법」에는 기본 구성, 타당성 조사, 건설공사 기본계획 수립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고,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에는 공공건축에 관한 사업계획, 「국가재정법」에는 예비타당성조사, 「지방재정법」에는 투자심사를 기획업무로 볼 수 있다. 

정음철물 매장 전경
정음철물 매장 전경



기획업무의 과정과 단계

일반적으로 ‘방향 및 목표설정’, ‘현황조사 및 분석’, ‘유사사례조사’, ‘사업규모 분석 및 범위검토’, ‘사업성 조사 및 전략구상’, ‘사업계획관리’ 등으로 세부 업무의 범위를 구분할 수 있는데, 2016년 창업한 건축기획사 프로젝트데이는 위의 업무와 프로세스를 정리해 다음과 같은 단계별 기획업무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이는 공공프로젝트보다 상업 프로젝트나 개인 프로젝트에 더 적합한 방식이나 사전 기획의 세부 업무 내용엔 큰 차이는 없다.
1) 요구사항 분석(OPR 도출): 건축주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OPR(Owner’s Project Requirements)을 설정한다. 먼저 목표 설정과 이유, 사실 수집 및 분석, 목표 달성 방법, 필요성 결정(자원과 시간), 중요도 결정과 같은 4단계를 거친다. 
2) 지역 분석(Areal Research): 인근 지역의 인구, 상권, 업종, 교통, 주거환경 등 기초 지역 분석 자료를 토대로 해당 대지의 기본적인 규모와 법규를 분석하는 과정이다. 
3) 프로그램과 콘셉 만들기(Architectural Programing): 앞선 두 가지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건축 프로그램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정하고, 이에 따라 설정 가능한 건축물과 공간의 전체 콘셉트를 수립한다. 
4) 기획 디자인(Concept Designing): 주변 부동산 정보와 시장 데이터를 기반한 상업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5) 임차인 분석(Tenant Research): 기획 디자인에 따라 어느 정도 건물의 볼륨과 면적이 나오면 층별로 분할하고 각 공간에 적합한 업종을 제안한다. 
6) 제안요청서 및 리포트 작성(RFP): 지금까지 조사한 데이터와 분석을 바탕으로 향후 필요한 건축사사무소, 시공사, 운영사 선정을 위한 RFP(Request for Proposal) 보고서를 작성한다. 
7) 종합운영서비스(MS, Management Service): 구체적으로 임차인에 대한 정보와 건물을 설계할 실시설계사, 시공할 시공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및 운영사 등에 대한 정보와 연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획업무의 법제화와 업무 대가 기준

기획업무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프로세스는 아직 부족하지만, 법적으로 명확하고, 사회적으로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대가 기준의 경우도 설계비같이 규모나 공사비 대비 일정 비율로 책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집행비를 기준으로 산정되므로 기존 설계비가 아닌 별도의 기획비를 책정할 수 있다. 또한 사후 운영 전략의 경우도 브랜딩이나 마케팅 전략 수립의 차원과 같이 별도의 비용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대기업이나 대형 빌딩, 일부 자산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건물도 체계적인 계획과 개발 그리고 운영이 필요하다. 그 방법은 개발시대의 ‘속도’와 ‘크기’, ‘용도’의 기준을 따르는 게 아니라 지역에 적합하고 필요한 개별적인 방법이다. 이는 지역의 이야기(콘텐츠)를 발굴하고 장점을 극대화해 공간화하는 방식인데, 이것이 앞으로의 공간 개발의 모델이 될 것이다. 그 방법은 단일 건물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맥락을 분석하고 개발해야 마을의 앵커가 될 수 되고 임팩트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부동산, 금융, 건축, 시공, 운영 등 분야별 칸막이식 컨설팅이 아닌 종합적이고 순차적인 기획이 중요하다.

정음철물, 실증 데이터를 기반한 공간운영 전략

지난 9월부터 프로젝트데이에서 운영하는 연희동 정음철물은 건축기획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넘어서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모델이다. 주식회사 정음은 2019년 7월 로컬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와 지역 관리사인 쿠움파트너스, 건축 기획사 프로젝트데이가 세운 조인트벤처로 연희동에 있는 30년 된 낡은 전파사 겸 철물점인 정음전자를 ‘동네 집수리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철물 편집숍인 정음철물로 리뉴얼했다. 정음철물 2층에는 지역 기술 장인과 예술가를 연결해 DIY 워크숍 교육을 진행하는 정음제작소가 있고 낡은 건물을 쓸모 있는 공간으로, 가치 없어 보이는 것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활기를 넣는 컨설팅을 하는 정음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공간 컨설팅과 공간 기획업무를 하며 실제 데이터를 기반한 사용자 경험 설계를 한다.

앞으로 건축기획은 지속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있다. 중소규모 건물의 임대, 개발, 관리 등 토탈 서비스의 필요성과 개별 건물이나 공간이 아닌 지역 맞춤 콘텐츠의 필요성에 따라 건축설계 산업보다 큰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관련 전문가가 부족하다. 경영이나 마케팅 지식과 경험으론 종합적인 공간 기획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공학과 건축학으로 분리된 대학에는 엔지니어 혹은 디자이너만 양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2학기 국내에서 처음 개설되는 울산대학교 건축학부의 건축기획 수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은 전공필수 과목은 아니지만, 향우 건축기획 전문가를 양성하는 첫 과정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김은희 외, ‘건축기획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 개선 방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7

 

 

 

 

 

 

 

 

글. 심영규 Shim, Youngkyu 프로젝트데이 PD · 울산대학교 겸임교수

 

심영규 프로젝트데이 PD·울산대학교 겸임교수

 

건축기획사 프로젝트데이의 대표이자, 정음철물 대표, 울 산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다. 중앙일보 디지털뉴스룸, 월간 를 거쳐 건축재료 처방전 <감(GARM)>, <아는동 네> 매거진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건축주와 건축사, 건자재업 체와 소비자, 공공과 시민을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정음철물을 통해 낡고 오래된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며 공간 기획과 운영의 실증적인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shim09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