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9. 09:22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건축사_설계의 확장성을 묻다
최근 SNS에서 지난 20∼30년간 건축사의 설계대가 변화에 대한 토론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사실 공공에서 발주하는 설계대가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증가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민간 설계 시장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이는 90년대 이후 전체 소비자 가격 가운데 실질적으로 하락한 항목이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컴퓨터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시장에서 설계비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 하나를 분양하면 가장 큰 이익은 시행사와 건설사의 몫이고, 두 번째가 공인중개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주방가구 업체와 건축사 순이라고 말하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한 주장은 아니다. 대한건축사협회 차원에서 이를 보완할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 교육도 5년을 다녀야 하고, 어느 직종보다 전문적이면서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업역임에도 정작 현실에서의 보상은 다른 직종에 비해 요원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설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산업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건축물이 있고, 이와 관련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장과 관련 산업은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축사는 전통적인 산업구조 안에서 설계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나쁜 소식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급변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이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일부 건축사들을 중심으로 설계를 넘어 다양한 산업으로의 창의적인 확장성을 도모하는 움직임과 이에 따른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작은 변화는 다분히 놀랍기도 하고 후배 건축사들을 위해 반갑기도 하다. 이제 설계 이전 단계에서 기획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에 맞춰 건축물을 넘어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계를 하고 이후 운영까지 맡아 수익구조에 긍정적인 변화를 얻거나, 본인이 설계한 새로운 방식에 대해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기도 한다. 나아가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개발하고 건축 과정 전반을 공유하는 플랫폼 등도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도전과 성과가 어떤 의미가 있고 앞으로 전통적인 설계를 넘어 어떻게 확장성을 가지게 될지 관련된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본다.
글. 김창균 (주)유타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2 About Architecture Industrialization_The Era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e Scope Expansion of Architects
들어가며
20세기에 규정된 근대적 삶의 양식과 사고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가 ‘기술’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건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건축이란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문화적 산물이다’라는 주장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산업화시대에 건축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산업구조는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했다. 그리고 AI가 자동차를 스스로 운전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디서든 인터넷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21세기 현대 삶 속에서 건축과 ‘기술’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해졌다.
기술과 지적재산권
기술의 의미는 점점 광범위해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진리라는 뜻으로 사용된 테크네(Techné)는 ‘만들다’ 혹은 ‘생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tetk’에서 파생된 단어로, 특정한 방식을 이용하는 수단처럼 사용된다. 생산활동이나 과정, 이와 연관된 실천적 행위나 의지 또한 기술로 간주되곤 한다. 가령 물건을 생산하고 도구를 제작하는 것도 기술이지만 대중의 심리를 선동하는 것에도 기술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이처럼 특정한 목표를 향한 인간 활동의 총체로 정의할 수 있는 ‘기술’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정의된다. 기술의 다양성만큼이나 세분화되고 제도화된 현대사회에서 기술은 산업을 만들어내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도출한다. 20세기 산업화를 통해 기술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왔고, 이에 우리는 광범위한 기술을 정리하고 규정할 필요가 생겼다.
인류는 지적재산권이라는 방식으로 개별 기술을 분류하고 정의하며 관리해왔다.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은 20세기 초 칙령 제 196호의 특허령 제정에 의해 처음 도입된 특허제도와 함께 등장했다. 1977년 특허청이 개청한 뒤 2만 5천여 건의 산업재산권이 등록됐고 37만여 건이 출원돼 한국은 세계 4위 출원 대국이 됐다. 건축과 관련된 지적재산권도 상당수다. 건축에서도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이슈가 여러 개 있다. 건축사의 설계업무를 창작활동의 결과물로 보고 건축사가 지적재산권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수년 동안 있었다. 2008년 민규암 건축사가 제기해 승소한 헤이리 UV하우스 소송은 TV광고 배경으로 등장한 건축물에 대해서도 ‘건축저작권’을 인정한 사례다. 상업적 목적으로 건축물을 배경으로 사용한 경우 이를 설계한 건축사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009년엔 ‘설계공모 수상작의 설계 저작권은 건축사에게 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조치에 따라 대한건축사협회가 TF팀을 꾸려 건축사의 설계권을 보호하기도 했다. 2020년 강릉 테라로사 카페 설계 모방에 따른 ‘저작권 침해’ 판결은 건축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건축사의 창작물을 모방했을 경우 이를 저작권 침해로 본 사례로, 법원이 ‘모방’이라는 정성적인 부분을 인정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처럼 무형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사회적으로 넓어졌다.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사례들을 통해 건축사의 창작물인 건축설계의 저작권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그러나 앞에서 본 일련의 사건을 통해 건축사의 지적재산권을 고찰해보면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바로 지적재산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건축사 업무에 적용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건축사, 적극적으로 지적재산권을 행사해야
대부분 건축사는 누군가가 본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할 때에서야 문제제기를 하며 대응에 나선다. 즉, 수동적으로 지적재산권을 보호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설계는 대부분 하나의 대상지에 설계돼 일회성이 높은 까닭에 ‘특허’ 혹은 ‘디자인 등록’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건축사가 설계한 계획안을 지적재산권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허청에서도 설계안 전체를 평가하기보다 보편적 요소를 제외한 독특한 창작성에 대해 평가하고 이에 지적재산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하게 될 때에도 그 기간이 너무 길고 많은 시간이 소요돼서 건축사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건축사의 입장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사가 선제적으로 지적재산권을 획득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건축사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현한 부분이 보편적 건축요소가 아닌 독특한 기술이라면 지적재산권리에 대해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방어 차원이 아닌 업역 확대의 발판을 만드는 외연의 확장이다. 다행히 국가는 건축사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고 공공 프로젝트에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26조(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는 경우)’는 이러한 독특한 아이디어에 대해 직접 계약을 할 수 있는 여러 조항을 만들어 창작자가 직접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계약을 성사시키기까지 건축사가 갖춰야 할 자격조건들이 있기에 이를 함께 준비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이디어 구현’이란
디지털시대에 건축사의 창작활동은 모니터 안 가상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에서의 디자인을 현실세계에 구현하는 일에는 구축적 성격이 있다. ‘중력’과 절대적 ‘시공간’ 속에서 물리적 존재 기반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구축성을 거부하고는 존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일회적 퍼포먼스나 여타 가설적 예술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현재 건축사의 업역은 설계, 공사감리, 건설사업관리(CM) 등이다. 구축 부분은 ‘시공’의 영역에 포함된다. 건축사는 이를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산업구조의 결과다.
하지만 우리는 융복합의 시대라고 말하는 4차 산업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3D 프린터와 디지털 데이터로 가상공간에서의 디자인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고 현실세계에 구축해준다. 3D프린터 결과물을 생활 속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해 기존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이디어와 디자인이란 것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진 모니터 속에 갇힌, 말 그대로 무형의 가치다. 구축을 거쳐야 무형의 지적재산권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온다. 건축사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꼭 건축돼야만 지적재산권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축사의 창작물을 왜곡 없이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건축돼 공간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구축 또한 창의적 방식으로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타 분야와의 다양한 협업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고, 직접 구축의 과정에 뛰어들 수도 있다. 구축 방식은 이미 건축보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다른 영역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니체가 말했듯이 ‘계획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실행하고 수정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창작자의 창의적 아이디어는 모든 디자인이 그러하듯이 구축과 수정의 반복적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창작자가 직접 구축 과정에 참여해 만들고 다듬은 아이디어는 단단하고 파급력이 높다. 창작자는 최고의 아이디어 전문가가 되고 창작자에겐 그에 맞는 권위도 주어진다. 건축엔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공의 성격이 있다. 그러므로 건축사는 건축 창작물의 구축 과정에 직접 개입해 건축이 갖춰야 할 기본을 충실히 지켜야 할 것이다.
건축사,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적응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는 극심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산업구조, 기후환경, 방역환경, 인구구조 모두 극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변화하고 적응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급변하는 사회와 산업구조 변화를 보면서 건축사의 업역과 외연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건축사자격시험 제도의 변화로 많은 건축사가 배출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통적 산업구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창의적 발의가 가능한 시스템과 업역을 찾아야 한다. 지적재산권을 이용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건축사가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수정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건축사는 건축문화를 선도하며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 할 전문가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성취해야 하기에 건축사에게 새로운 도전은 의미 있고 계속돼야 할 것이다.
글. 유주헌 Yu, Jooheon JHY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유주헌 JHY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조소과, 건축학 과를 졸업했다. 김태수장학재단, 장프르베(김중업장학제) 장 학제에 선발되었으며,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 17(건축사 권문 성), 자끄페리에아키텍쳐(Jacques ferrier architecture)에 서 실무를 익혔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겸임교수를 역 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건축사를 취득하고 현재 JHY건축사 사무소(jhyarhchitects&associate), ㈜제이에이치와이조형 을 함께 운영,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넘는 건축적·공간적 실험 을 하고 있다. 2018신진건축대상 및 서초건축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The East Garden, 천경재, 판교 시전당, 통인 동 스튜디오하우스, 대관령 눈꽃광장 조성사업, 송파 야간관광 명소화 조성사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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