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왜 건축은 서비스산업인가? 2020.9

2023. 1. 19. 09:2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건축사_설계의 확장성을 묻다

최근 SNS에서 지난 20∼30년간 건축사의 설계대가 변화에 대한 토론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사실 공공에서 발주하는 설계대가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증가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민간 설계 시장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어떤 이는 90년대 이후 전체 소비자 가격 가운데 실질적으로 하락한 항목이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컴퓨터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시장에서 설계비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단지 하나를 분양하면 가장 큰 이익은 시행사와 건설사의 몫이고, 두 번째가 공인중개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주방가구 업체와 건축사 순이라고 말하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한 주장은 아니다. 대한건축사협회 차원에서 이를 보완할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 교육도 5년을 다녀야 하고, 어느 직종보다 전문적이면서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업역임에도 정작 현실에서의 보상은 다른 직종에 비해 요원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설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산업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건축물이 있고, 이와 관련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시장과 관련 산업은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축사는 전통적인 산업구조 안에서 설계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나쁜 소식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급변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이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일부 건축사들을 중심으로 설계를 넘어 다양한 산업으로의 창의적인 확장성을 도모하는 움직임과 이에 따른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작은 변화는 다분히 놀랍기도 하고 후배 건축사들을 위해 반갑기도 하다. 이제 설계 이전 단계에서 기획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에 맞춰 건축물을 넘어 소소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계를 하고 이후 운영까지 맡아 수익구조에 긍정적인 변화를 얻거나, 본인이 설계한 새로운 방식에 대해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기도 한다. 나아가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개발하고 건축 과정 전반을 공유하는 플랫폼 등도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도전과 성과가 어떤 의미가 있고 앞으로 전통적인 설계를 넘어 어떻게 확장성을 가지게 될지 관련된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본다.


글. 김창균 (주)유타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01 Why does architecture belong to service industry?

 

연구소 재직 시절 건축설계를 산업화 개념으로 처음 접근했을 때 그 반응들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그 당시 건축계는 ‘예술’과 ‘기술’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담론조차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고, 건축을 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비스’는 굳은 일을 대신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음식점을 가거나, 물건을 구입한 후 그에 대한 친절한 배려를 받았을 때, ‘서비스가 좋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서비스’는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용역(用役)’이다. 그 뜻은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 업무로 산업적 차원으로 보면 ‘사람을 대신해서 일반적이거나, 전문적인 일을 대신해서 처리해주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말하며, 이를 ‘3차 산업’이라고 한다. 따라서 ‘서비스산업’은 크게 ‘일반서비스’와 ‘지식서비스’로 구분되며, 건축설계산업은 단순히 특정지식이 없어도 수행이 가능한 ‘일반서비스’가 아니라 고도의 지식을 기반으로 전문적인 능력을 발현하는 ‘지식서비스산업’에 속한다. ‘지식서비스산업’군에는 의사, 변호사 등도 함께 포함된다. 이러한 이유로 맨 처음 ‘건축서비스산업’이라는 화두를 꺼냈을 때 구구절절이 자세한 내용을 설명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나라 건축설계업계는 열악한 산업환경으로 기형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사고 등을 통해 설계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열악한 건축사사무소 대신 건설사가 모든 책임을 질수 있도록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해서 참여하는 ‘일괄도급 방식(Turn key)’이 공공분야에 채택되면서 사무소는 대형화 되고, 산업구조가 개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사고의 원인이 부실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부실시공의 문제로 밝혀지긴 했지만, ‘책임소재를 분명히 한다’는 논리에 막혀 설계업계는 점점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잃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사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 컴퓨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운데, 컴퓨터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크게 하드웨어 부분과 소프트웨어 부분의 발전이 수반되어야 한다. 초창기에는 하드웨어 부분산업이 괄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소프트웨어가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앞서 개발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을 수반한 하드웨어가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 기술과 하드웨어 기술은 서로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는 건설은 하드웨어, 건축설계는 소프트웨어로 생각한다. 이 두 가지의 산업이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데 우리는 지난 20년간 건축설계산업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고, 건설사 책임의 설계시장이 괄목하게 성장하면서 건축설계시장은 침체되고 말았다. 침체된 건축설계산업을 개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재를 지원․육성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야 하며,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산업구조를 개선하여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도가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부의 지원에 의해 발전하였지만, 우리 건축계는 이러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뒤늦게나마 관련 법안을 제안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다. 많은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노력과 인내로 법안을 준비한지 5년 만에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가 입장에서 산업적 정책을 수립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산업생태계’를 구축하여 국․내외 시장을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건축설계산업은 연계된 후방산업에 많은 영향력을 끼쳐, 건축설계산업이 활성화 된다면, 내수시장의 활력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산업적 차원에서 중요성이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설계산업은 대규모 건축사사무소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소규모 사무소는 시장진입 자체가 어렵다. 쉽게 설명하면 전체 건축사사무소 중 대규모 사무소가 약 1% 정도이나 전체 매출규모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법령을 제정할 때 산업생태계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대규모 사무소에게 편중되어 있는 국내 물량이 중규모, 소규모 사무소까지 확장되는 방향을 모색하고, 건축분야의 지원정책을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대규모 사무소가 해외시장에 진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항목을 마련하여 시장규모의 확대를 모색하였으며, 소규모의 역량있는 건축사들은 공공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령에 그 길을 열어 주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행정조직을 운영 중에 있고, ‘공공건축가’ 제도를 활용하여 공공프로젝트에 ‘조력자’로 건축사를 참여시키고 있지만, 산업적 지원을 위한 ‘건축진흥원’은 아직 설립되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산업차원에서 정책은 미온적이라 할 수 있다.

서비스산업으로서 건축설계산업은 제반 환경 투자가 적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고도의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이다. 재화를 생산하지 않지만, 건설산업을 견인할 수 있고, 후방산업에 대한 영향력도 막대하다. 우리 건축계는 어렵게 제정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글. 김진욱 Kim, Jinwook 예지학 대표

 

김진욱 예지학 대표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정책센터장, A&U 도시디자인본부장, 중 앙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 법, 경관법 연구책임자로 활동한 바 있다.

 

jwkim@yezih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