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0. 17:23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Another wonderful nature in frugal nature Trifling reviews are worse than nothing
오래 전, 김중업 선생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있다. “건축이란 알뜰한 자연 속에 또 하나의 멋진 자연을 만들어내는 소중한 작업.” 거슬러 올라 우리 전통 건축이 보여주는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건축인지”와 같은 맥락이다. 자연 속에 비집어 들어온 콘크리트 구조물이 주경이 아니고 배경이 되는 경지, 그것이 최고의 경지라 일갈하셨다.
지리산 굽이굽이 고갯길을 한참이나 돌고 돌아 집 앞 진입로에 막 들어서면, 눈앞에 ‘less is more’ 마치 미스의 미니멀리즘 건축철학을 연상시키는 듯한 담백한 건축물 하나가 간결하고 심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산허리 자락에 적절히 스며들어 있다. 무심한 직육면체는 경사지에 순응하며 대지 속을 파고들듯 더욱 깊숙이, 그리고 나지막이 자세를 낮추고 있다. 오랜 이웃인 윗집과 옆집의 채광과 경관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런 정겨운 배려가 시골 자연 속에서 모더니즘 형상이라는 어울리지 않을듯한 이질감마저 말끔히 희석해버린다.
한참을 달려온 지리산 고갯길의 연장과도 같은 구불구불한 내부 경사길 막바지를 돌아서면, 벽체를 뚫고 우뚝 솟아 나온 바윗돌 하나와 우선 마주하게 된다, ‘통도사 자장암 법당 바닥 위로 솟은 바위, 바깥엔 바위를 피해 지은 기와지붕, 또한 흘러가는 물줄기를 위한 소쇄원의 뚫어진 담장’.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우리 전통건축의 혜안을 느꼈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설계자의 고민 끝 지혜로운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현관 앞에 도달하면 또 하나 탐스럽고 매력적인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집의 진정한 주인이며 팔 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내신 최고의 어르신, 어머님을 위한 사랑마당이다.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창문아래 특별히 마련한 소담스런 마루공간이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드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떨어지는 자그마한 중정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배면은 거의 흙 속에 묻혀 있는 터라 이 공간이 주는 매혹적인 분위기는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이 날은 햇살이 맑게 빛나는 화사한 날이었으나, 겨울바람도 세찬 몹시 추운 날이었다. 하지만 집안은 보일러도 켜지 않았는데 따뜻하기 그지없다. 남쪽 투명유리벽을 통해 종일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 북풍한설을 근원적으로 차단시켜버린 흙속의 배면 벽체, 거기에 아늑한 실내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화목벽난로까지 더하면 한겨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자연형 단열시스템의 완벽한 사례를 경험할 수 있다. 거실을 비롯하여 모든 방의 문을 열면 창밖으로 그림 같은 자연풍광이 액자처럼 걸려있다. ‘차경’의 이치를 보여주는 셈이다. 차경, 즉 경치를 빌린다. 이 또한 우리 전통건축의 고품격 가운데 하나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투명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끝없이 펼쳐진 지리산 능선의 장관과 눈이라도 푹푹 내리는 날의 설경을 상상하기라도 하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압권은 따로 있었다. 거실 맞은편, 주방 옆 썬큰으로 들어서며 스킵으로 이어지는 수영장을 지나쳐 계단을 타고 올라서면 이 집의 정원 격인 뒷마당으로 접어든다. 우리 전통건축의 정원은 후원이 아니던가.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차치하고, 흥미로운 부분은 어디까지가 흙이고 어디까지가 건물의 옥상인지 구분이 모호한 동일 레벨의 확 틔어진 마당 공간이 넓게 펼쳐진다. 뒷마당이긴 하나, 터의 최상위에 위치하여 뒤로는 경계를 알 수 없는 지리산 수풀로 이어지며 좌우 할 것 없이 전면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절경에 탄식이 새어나온다.
진정한 한국적 포스트모던은 과연 어떤 맥락일까? 전통성을 녹여내는 방법론은 또한 무엇일까? 한 번쯤은 틀림없이 고민해 보았을 우리 모두의 화두. 단순히 기와, 초가의 형태를 콘크리트로 흉내내는 치기는 아닐 터, 철, 유리, 콘크리트라는 현재의 재료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자칫 갓 쓰고 넥타이 맨 듯한 우둔함을 보아 오기도 했고, 반면에 공간 속에 전통의 맥락을 잘 녹여 낸 참신한 사례를 여럿 보기도 했다.
지리산 골짜기 풍광이 기막힌 시골 집 옥상에서 압축시켜보는 한줄 비평,
“간결하고 담백한 모더니즘 형태 속에 구수하고 질박한 전통을 녹여 낸 느낌.”
건축주인 막내아들의 한 가지 요구는 “가족들의 화목함을 우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이 언제든 함께 모여 떠들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구심점을 원했다. 쉽지 않은 대지조건과 주변현황 속에서 큰 방향과 맥락을 고민하며 아주 섬세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애썼을 김태현 건축사와 이다운 건축사의 노력이 눈에 선하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치밀한 그들의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다.
우리 집에 온 손님은 절대 배 곯리어 보내지 않는다는 모친의 굳은(?) 신념에 못 이겨 손수 차려주신 귀한 점심을 대접받았다. 정이 넘치는 뜨거운 고붕 밥에 반찬 하나하나 맛깔스럽기 그지없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며 넌지시 질문을 드렸다.
“어머니, 막내아들이 이렇게 멋진 집을 지어드리니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그러자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라는 표정과 함께 세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국이 모자라면 더 줄까? 깻잎을 맛있게 먹네, 집에 갈 때 좀 싸 줄게”하며 그야말로 우문현답을 주셨다.
형태가 어떻고, 재료가 이러하고, 공간이 저러하고… 알아듣기 힘든 진부한 평론은 어쩌면 부질없는 언어의 유희일 수도. 익어가는 나이의 피붙이들이 그들의 2세를 데리고 다시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며 함께 웃고 떠들고 뒹굴 수 있는 고향집이 새롭게 마련되었는데, 더 이상 무슨 자질구레한 평이 필요하겠는가.
한여름 밤, 옥상달빛 아래 모깃불 피워놓고 수박 썰어가며 깔깔거리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글. 조형장 Cho, Hyungjang 건축사사무소 메종
조형장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메종
동아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한국해양대 해양공간건축학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부산광역시, 양산시 공공건축가 및 부산광역시건축사회, 부산건축제 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한국해양디자인기술연구원 부원장 겸 전략기획본부장직 등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최근 주요 프로젝트로는 ‘부산항 거점형 마리나 항만개발계획수립’, ‘신전항 어촌뉴딜선정 총괄계획수립’, ‘부산남항 일대 재창조 마스터플랜’, ‘홍티예술촌’, ‘해운대 파라드호텔’ 등이 있으며, 2020년 ’대한민국 국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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