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5. 09:06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Church, transit from distinction to intimate Ecclesia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르면 교회는 유형의 물리적 건축물이 아니다. 라틴계열의 언어인 불어로는 교회를 에글리즈(eglise)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 어원 에클레시아(ecclesia = ek 밖으로 + caleo 부르다 의 합성어)에서 온 것으로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이라는 뜻 즉 ‘민회’라는 단어로부터 온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의미로 번역하자면, 교회는 구별 또는 성별(聖別)된 자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구별하는 교회
초기 기독교에서 교회건축은 구별, 또는 속세와의 분리라는 의미의 공간 조성에 집중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서 조성되었던 지하묘지 카타콤인데, 피신하고 스스로를 분리하고 추방하여 따로 모이기 시작한 공간이 초기 기독교 교회공간의 한 단면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중세로 넘어 오면서 수도원과 수녀원으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초기교회에서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분리된 공간이 선호되었다면, 중세로 들어오면서는 스스로의 추방, 일상과 신앙이라는 이원론적 철학을 기반으로, 세속으로부터의 망명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종교성에 있어서 구별, 망명으로서 참회와 자책의 이미지를 강화하며 속세로부터 분리된 건축의 형식은, 당시의 많은 신자들에게 공감과 지지와 존중을 받기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건축적 특징으로 볼 때에도, 중세 교회건축이 보편적으로 안쪽에 공간을 가두어 분리하고 한 켠에 세속인과 성직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예배당을 배치한 중정형으로 발전된 것은,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정통 수도원이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는 남부 프랑스의 토로네 수도원(Le Thoronet 1160-1230)이나 그 수도원을 참고하며 현대에도 그대로 배치하고 동일한 건축개념을 적용한 르 꼬르뷔지에의 라 뚜레뜨(la Tourette 1953) 수도원을 보면, 구별하는 교회, 겸손과 참회와 절제를 상징하는 거친 콘크리트 교회 건축의 진수를 볼 수 있다.
교류하는 교회
중세철학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현세에서도 유효한 신앙적 윤리와 개개인이 자유롭게 신과 대면하는 권리를 알게 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부터다. 이 시기부터 교회건축은 사후의 세계보다 어떻게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교회가 지원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교회는 시청과 마주보며 마을과 도시의 중심 광장을 이루었고, 또한 학교와 병원 곁에는 항상 교회가 함께 건설되기 시작했다. 구미의 대학 캠퍼스는 대체로 교회당을 중심으로 건설되었고, 북부 유럽에서는 전원 마을 중심에 항상 교회가 있고, 교회가 마을회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향은 교회가 인간의 일상적인 삶과 사회를 향하여 선한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태도, 즉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그리스도교적 철학의 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리하여 현대 교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어떻게 인간의 삶에 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인간 구원의 사역을 잘 감당해 갈 수 있도록 건축이 지원할 것인가에 있다. 르 꼬르뷔지에는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회 건축은 교회건축 사용의 주체인 구성원들이 신과 이웃과 더불어 공존하는 일상적 삶을 담아낼 그릇이며 기계이어야 할 것이다.
교류하는 연속성, 교류하는 들린 건축
신과의 개별적 만남을 통해서 은총을 입은 종교성은 이웃에게 공공의 축복이 되어 교류되길 바란다. 그 사이에 구도와 상징과 체험과 감동이 온누리에 펼쳐지는 것이다. 교회 건축은 이러한 의미에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기독교적 신앙의 교류를 유발하는 고상한 기계로 사용될 수 있다. 새문안교회 건축에서 시도된, 하늘로 열린 문 같고 어머니 품 같기도 한 광장은 추상적 상징을 통한 체험들로 감동에 이르게 하는 연속적 시퀀스를 시민에게 제공한다. 이와 같은 경우, 교회의 공공적 역할은 도심의 새문안로부터 교회의 광장과 내부 홀을 관통하고, 이면도로를 지나 문화 역사의 광화문로에 이르는 교류의 끈이 된다.
열린 공간은 서로를 바라보게 하고, 방문자들을 환대하며 초청해서 교류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들린 건축은 그 볼륨 아래의 열린 공간으로 소통한다. 그래서 들린 건축은 결국 열린 가치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늘보석교회는 삼각형의 삼위일체(Trinity) 형상으로 하늘을 앙망하도록 열고, 자연과 이웃을 향해 소통하는 자세로 볼륨을 들어서 열린 건축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필자는 현대 교회가 지녀야 하는 핵심적 건축의 목표로 구별하는 교회 개념을 고수하기보다 교류하는 교회로 인식하게 되었다. 도심의 상징적 광장에서 비롯되는 연속적인 시퀀스의 개방된 의미와 현대 구조기술이 제공하는 들린 볼륨으로 교류하는 공간을 조성해 가면서 오늘날의 에클레시아적 열린 가치를 적극 모색하려 한다.
글. 이은석 Lee, Eunseok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프랑스 건축사
1987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1996년 파리 국립 제1대학 판테옹 소르본느를 졸업하고 예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 파리 벨빌 건축대학에서 프랑스 정부공인 건축가(D.L.P.G) 자격을 획득했다. 1995년 LA 한미문화예술센터(KOMA) 국제 현상, 2000년 ‘천년의 문’과 2010년 새문안교회 현상설계에서 1등으로 당선한 바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으며, 주요경력으로 2016-2018년에 걸쳐 (사)한국 건축설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들린건축, 열린가치 >와 <아름다운 교회건축>이 있다. 국내외 다수의 주요 건축상과 2020년 Architizer A+Award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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