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근대적 대립구조의 시선 2020.10

2023. 1. 25. 09:2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Conflicting Perspectives of Contemporary Dwelling

 

일광 유얼스 옥상 ⓒ 윤준환

 

일광 유얼스에 관한 자료를 보다 사소한 사진 설명 하나가 관심을 끌었다. 일광 유얼스의 대지는 한 쪽은 바다, 다른 쪽은 배후지를 면하고 있는데, 배후지 도로 쪽 사진이 정면, 바닷가 쪽 사진이 배면으로 되어있다. 바닷가에 세워지는 건축이면 보통 바닷가 쪽이 파사드 아닌가 라고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배후지 쪽과 바닷가 쪽의 디자인 밀도가 사뭇 다르다. 

오신욱 건축사는 대지를 주변으로부터 에워싼다. 반쪽집에서 시작되어 인터화이트, 마로인 빌딩 등에서 나타났던, 가로변에 세워지는 프레임이 일광 유얼스에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나머지 대지는 낮은 담으로 에워싸여 주변과 분리된다. 마로인 빌딩에서 나타나는, 외부 벽체와 거리를 두고 허공에 떠 있는 가벽은 그가 ‘들띄우기(spacing)’라는 용어로 즐겨 사용하는 건축언어인데, 대개 이 벽도 대지경계선 위에 떠있음으로써 도시와 대지를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일광 유얼스의 주진입은 대지를 에워싸고 있는 이 프레임을 지나 대지 형상과 틀어진 1층 외벽을 따라 이루어진다. 진입로는 대지 형상에 나란하게 세워진 ‘공간부스’와 만난 후 1층 유리창을 넘어 바다로 시선을 연장시킨다. 공간이 엇갈리고 겹쳐지면서 다양한 공간감과 깊이감을 만들고 있는데, 오신욱 건축사가 공간의 수평적 변위에 의한 ‘들띄우기’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싶다.
바다 쪽은 월파를 막기 위한 낮은 담장 사이로 테라스를 지나 진입하게 되는데, 매장-테라스-바다로 연결되는 시선의 개방 외에는 다른 공간적 장치가 없다. 건축도 매스의 어긋남은 인지되지만 삼면을 유리로 처리해서 공간의 볼륨감도 평면적이다. 바다로 열려진 내부공간을 수평으로 구분하는 굵은 띠가 공중에 떠 있을 뿐이다.

도시에 지어진 오신욱 건축사의 다른 작품들처럼, 접근도로 쪽에서 보는 유얼스는 주변을 향해 ‘나는 다르다’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거리를 두고 열림은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바다 쪽은 바다로 열리기 위한 유리와 스팬드럴이 있을 뿐, 그의 건축언어는 사라진다. 
도시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려는 건축, 자연 앞에서 멈추려는 건축이 일광 유얼스의 ‘정면’과 ‘배면’이라면, 오신욱 건축사에게 도시와 자연은 어떤 존재일까.

매스를 층별로 엇갈리게 적층함으로써 흰색 덩어리를 분절하여 조형적 인지성을 얻는 것은 오신욱 건축사의 작업에서 자주 나타나는 건축언어다. 바닷가에 세워지는 상업공간인 유얼스에서, 이것은 바다로 향한 다양한 조망의 확보와 함께 아래층 옥상을 테라스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얼스는 가늘고 긴 매스 두 개가 굽어지고 엇갈리며 쌓이는데, 공간의 깊이감을 얻기 위하여 평면을 굽히고 레벨을 달리했지만 내부공간은 하나의 덩어리로 읽힌다. 삼면이 바다로 열려있어 바다로 확장되는 공간이 내부 공간을 압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부공간에는 바다로 향한 시선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쾌적한 건물 안에서 유리 너머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볼 뿐이고,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을 볼 때 느끼는, 우리가 가서 닿을 수 없는 경외와 숭고의 대상으로 바다는 인식된다. 바다는 저 너머 멀리 있다.

 

일광 유얼스 실내 ⓒ 윤준환

 

일광 유얼스에서 또 다른 자연으로의 열림은 옥상에서 이루어진다. 일광 유얼스에서 오신욱은 계단을 다른 공간과 띄우고 길게 늘임으로써 계단이 독립적인 오브제로서 다른 공간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게끔 하고자 하는데,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계단의 방향성이다.
일광 유얼스의 계단은 각 층의 공간을 감아 돌면서 옥상으로 상승한다. 레벨차가 있는 매장공간은 계단참처럼 계단의 상승하는 방향성을 연결한다. 그리고, 옥상에서 우리는 하늘을 만난다. 계단은 하늘을 만나게끔 우리를 이끄는 장치이다. 오신욱 건축사의 다른 작품인 O+A 빌딩처럼 길게 늘어진 계단의 목적지는 하늘이다.

그러고 보면, 오신욱 건축사가 즐겨 사용하는 건축언어인 수직적 ‘들띄우기’도 하늘로 향한다. 앞서 나온 마로인 빌딩의 가로변에 있는 가벽과 외벽 사이의 공간이 수직적 ‘들띄우기‘에 의한 공간인데, 이 가벽은 입면의 깊이감과 함께 도시로 향하는 시선의 차폐, 그리고 3층에서는 스크린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공간에 주목해보면 두 벽 사이의 공간은 땅에서 하늘로 열려 있어 우리로 하여금 고개 들어 하늘을 보게 한다. 
하늘을 본다는 것은, 근대적인 대립구조의 거주개념으로 보자면, 인간의 거주를 허락하는 신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오신욱 건축사에게 자연은 경외와 숭고의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것이며 신성을 경험하게 하는 대상이라면, 일광 유얼스의 공간은 인간의 건축적 조작 없이 바다를 향해 온전히 열려야 하며, 계단은 옥상으로 상승해 가림막 없이 하늘을 만나야 하며, 도시에서 ‘들띄워진’ 공간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에게 건축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도시로부터 구분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지는 에워싸여 주변과 구분되며, 건축은 혼란한 도시에 대하여 순수한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자연이 온전히 열어야 하는 신성한 대상이라면 도시는 부분적인 풍경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다. 마로인 빌딩처럼 가벽으로 시선을 차단하든가 O+A 빌딩처럼 불규칙한 형태의 작은 창으로 시선을 파편화시킨다. 그의 건축이 유독 흰색으로 드러나는 것도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에 대하여 거리를 둔 채 존재하려는 방식의 하나일 것이다.
그에게 자연과 도시는 근대적인 거주개념의 대립적 시선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오신욱 건축사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건축은 ‘실존하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으며 궁극적으로 도시와 자연에 대한 관계를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하이데거의 사유로부터 그의 건축이 출발하는 것이라면, 근대적 대립구조를 넘어 우리의 도시를 ‘소중히 보살피며 구원하는’ 다음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안성호 Ahn, Sungho (주)시반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안성호 (주)시반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안성호 건축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 고 부산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한국근대주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Cardiff 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을 보냈으며, 월 간 건축과 환경과 공간사 편집부를 거쳐 부산에서 발간되었던 건축지 이상건축의 편집장을 지냈다. 일본 아타미시 한국정원, 관음포 이순신순국공원, 광명사 대웅전 등 전통양식건축과 거 창 노인,여성,장애인 삶의 쉼터, 진해시 동부도서관, 성산패총 야철지보호각, 세브란스외과, 해양대학교 국제교류협력관, 화 명수목원, 서귀포시 상효원 등을 설계하였다. 일본국토교통성 공원콘테스트 대상과 부산건축가회 신인건축가상, 그리고 몇 개의 완공건축물상을 받았다. 현재 (주)시반건축사사무소 대 표로 있으며 동아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tcamail0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