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5. 09:04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Your beauty continues to grow”
“여기가 노인만 않는 덴 줄 알아요? 노약자석이라고 써 있잖아, 약자도 된다고!”
“노인이 앉아야지 그럼, 젊은 것들이 어디를 앉아?”
출근 시간이 살짝 지나서 많이 혼잡하지 않은 지하철 안이었다. 이어폰 안으로 노약자석 쪽에서 일어난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백발의 할아버지 한 명과 아주머니 한 명이 시비하는 소리였다. 자리가 없어서 서있는 노인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잔뜩 화가 나서 폭언을 퍼부었다. 아주머니도 지지 않고 대꾸를 했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 싸움 끝에 늘 나온다는 나이타령이 등장했다.
“당신 몇 살이야?” 뜻밖에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물었다.
“나? 팔십 둘이다, 왜?”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내 남편은 일흔 다섯이야!” 이 말에 지하철 승객들의 웃음이 빵 터졌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할아버지는 웃지도 않고 씩씩거렸다.
내 나이가 모자라니 남편의 나이를 갖다 대는 아주머니가 천진난만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삿대질에 이어 몸을 밀치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한 아가씨가 신고할 거라고 핸드폰을 들고 제지하고 아주머니에게 자기 자리를 양보해 앉게 했다. 가만히 보니 그 아주머니는 옷을 곱게 차려 입고 염색을 해서 젊어 보이지만 60대 초반 나이는 되는 것 같았다.
노약자석에 앉아도 되는 나이는 몇 살일까?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만 65세가 되면 아무 거리낌 없이 노약자석에 앉아도 되는 것일까? 겉으로 봐서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좀 굽으면 앉아도 될까? 우리나라는 2017년에 이미 총인구 가운데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되었다. 2026년에는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가 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한다. 겨우 6년 뒤에는 5명 중 1명이 만 65세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좀 더 늙은 노인과 좀 덜 늙은 노인 사이에 노약자석을 둔 다툼은 늘어날 것만 같아 불안하다.
함께 탄 승객 모두를 불쾌하게 만든 노인의 패악질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이 들수록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아름다워질 수는 없을까? 세상 어떤 생명도 피해갈 수 없는 늙음과 소멸이라는 현상 앞에서 우아하고 당당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런 내 상념에 대답을 하는 것 같은 광고 영상이 있다.
자막) 나이는 못 이기지
정경화) 왜? 나이를 왜 이겨요?
나이와 함께 내가 깊어지는 거지.
나는요, 나만의 아름다운 소리가 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은 나보고 레전드 레전드 그러지만
매일매일 더 배우고 있어요.
자막) 정경화의
#아름다움은 자란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에서 올 여름 내보낸 ‘아름다움은 자란다’라는 캠페인이다. 광고에는 70이 넘은 현역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등장해 나이와 함께 매일매일 깊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이를 이기려 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캠페인에는 모두 4명의 모델이 등장한다. 클래식과 바이올린계의 거장 '정경화', 연기를 향한 오랜 열정과 깊이로 사랑받고 있는 배우 '이정은', 22년 차 톱모델 이자 워킹맘인 '송경아', 고유의 음악 색채를 만들어가고 있는 밴드 새 소년의 보컬 '황소윤'이 그들이다. 각각 한 명이 주인공인 영상 4편과 그들 모두가 등장하는 종합 편, 모두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캠페인이다. 다른 영상에서 전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모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자막) 저런 얼굴 저런 몸매로?
이정은) 이만한 외모, 금방 가질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의 제 눈빛, 그리고 표정…
시간이 만들어낸 이 얼굴이 전 좋아요.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만들어진 거 아닐까요?
자막) 이정은의
#아름다움은 자란다
자막) 이 바닥이 수명이 짧잖아
송경아) 글쎄요? 20년 넘게 전, 여전히 현역인데요.
아이도 있고요.
물론 어린 모델들이 표현할 수 있는 풋풋함도 있지만,
저처럼 베테랑 모델들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 바닥 수명은 제가 정해요.
자막) 송경아의
#아름다움은 자란다
설화수 관계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나이와 시간에 상관없이 자신 있게 누릴 수 있고, '아름다움이 한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깊어진다'는 브랜드 철학을 다채롭게 전달하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인해 받은 벌이 아니다.’ 내가 박범신의 소설에서 읽어 기억하고 있는 이 문장은 원래 퓰리처 상을 받은 일본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Theodore Roethke)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젊음은 아름다운 권력이고, 늙음은 감추고 치유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두 명 중 한 명은 곧 100살까지 살게 될 시대임에도 쉰 살만 넘으면 퇴물 취급을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도 하다. 나이 들어도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 나이가 몇 살이든 ‘지금의 내 나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이 가능할까? 설화수 캠페인의 대답을 들어보자.
송경아)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정경화) 20대의 아름다움을 위해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가고 싶을까?
이정은) 스무 살의 아름다움은 지금의 아름다움보다 나은 걸까?
황소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진짜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인 걸까요?
정경화) 난 안 돌아갈래. 왜냐하면은!
송경아) 젊음이 아름다움을 대표할 순 없잖아요?
황소윤) 저는 나이 드는 게 설레는 일이면 좋겠어요.
이정은) 10년, 15년 전의 이정은보다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으니까 지금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정경화) 당신이 몇 살이든
송경아) 무엇을 하든
황소윤) 지금의 당신이 가장
이정은) 아름답다는 믿음은
다같이) 언제나 옳다.
자막) #아름다움은 자란다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맞는 말이다. 젊음이 아름다움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나도 스무 살 시절이 눈물겹게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의 내 나이이기에 가능한 얼굴, 지금이기에 가능한 성찰과 사유, 지금이기에 가능한 문체와 문장……. 과연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나, 하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 하겠다. 세월과 함께 무표정해지는 나를 거울에서 마주칠 때는, 광고 속 모델들처럼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고 큰소리칠 수도 없다.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는다. 아직 늙어갈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잘 늙기 위해 노력하자. 세월의 향기로 익어야 가질 수 있는 외모와 지혜, 여유가 온몸에 배어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천천히 실천해 보자.
시월이다. 곱게 늙은 단풍에 눈이 시린, 아름답게 나이 들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mrgxb3pfD4&feature=youtu.be
아모레퍼시픽_설화수_아름다움은 자란다ㅣ정경화 편_2020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lSlm-3QIxw
아모레퍼시픽_설화수_아름다움은 자란다ㅣ이정은 편_2020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AlIBX4nNMaw
아모레퍼시픽_설화수_아름다움은 자란다ㅣ송경아 편_2020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FhbP3dxS7w
아모레퍼시픽_설화수_아름다움은 자란다ㅣ황소윤 편_2020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5erhr7Mi2lU
아모레퍼시픽_설화수_아름다움은 자란다ㅣ종합 편_2020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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