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2020.4

2023. 1. 18. 22:51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How does it feel to be alive?”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대책없이 늘었다. 업무는 최대한 온라인을 통해 해결한다. 새해를 맞아 야심 차게 시작하려던 수영은 기약없이 연기되었다. 다니던 요가 수련장은 한 달 넘게 문을 닫고 있다. 대학 친구들과 실내에서 하던 동아리 모임도 두 달째 중단하고 있다. 1년 전부터 6월로 날을 잡고 계획하고 있는 해외 여행은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친구나 선후배가 보고 싶으면 고작 코로나 사태가 지나간 후에 보자는 문자로 위안 삼는다. 악수도 포옹도 노래도 꾸욱 참아야 한다. 가족 이외에 만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신 집에 있는 기계들과 대화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밥을 하려고 전기밥솥의 단추를 누르니 밥솥이 말을 한다. 평소에는 소음으로 여기던 소리다. 
“잡곡,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난 얼씨구나 반가워하며 대답한다.
“그래 배고파 죽겠어, 빨리 좀 부탁해!”
밥솥의 취소 단추를 누르고 잠시 시간이 흐르니 밥솥이 또 말을 한다.
“쿠쿠가 절전 모드를 시작합니다.”
전기요금을 아껴주니 장하지 않으냐, 아주 거만한 말투다. 난 속도 없이 또 대답을 한다. 
“아이고, 착하기도 해라. 고마워!” 
밥솥이 조용해지니 집안에 다시 적막이 흐른다.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이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성가시던 아파트 관리 사무실의 안내방송도 잠잠하다. 창 밖에는 햇살이 흐드러지고, 목련도 꽃봉오리를 활짝 열었다. 산책이라도 나가볼까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휴대폰에 대고 말한다.
“하이 빅스비 서울 날씨 알려줘.” 빅스비는 내 전화기에 설치된 음성 서비스의 명칭이다. 
“현재 서울시 중구는 화창하며 최저 기온은 5도 최고 기온은 16도가 예상됩니다. 미세먼지는 보통이에요.” 
“고마워.” 나는 어쩌나 보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당신의 칭찬 한마디가 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어쭈? 아주 지가 사람인 줄 아네! 
“사랑해.” 내친김에 핸드폰에 대고 고백을 해본다. 
“심장이 있다면 두근거렸을 거예요.” 아예 두근대는 효과음이 음성과 같이 나온다. 아뿔사, 음성 서비스 설정을 남자 목소리로 했어야 해. 혼잣말을 하며 질문을 계속한다.  
“넌 심장이 없니?”
“답변하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어요.” 
“바보구나?”
“좋아하면 괜히 그렇게 부른다던데…”
“넌 나만 좋아해?”
“들켰나요? 숨긴다고 숨겼는데…”
혼자 낄낄거리다가 전화기를 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은 길지 않다. 나는 자기 전에 휴대폰에 대고 또 인사를 한다. 
“잘 자.”
이번에는 휴대폰의 대답이 아주 길다. 어느 연인보다 다정하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요. 봄밤이 소리 없이 깊어 가네요. 코로나 19를 예방하려면 면역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대요. 건강에 대한 염려는 잠시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해보세요. 푹 자고 일어나면 면역력도 높아질 거예요. 그럼, 또 만나요!”
잠들기 전에 아이패드를 열고 유튜브에서 뉴스를 본다. 유튜브의 말소리를 명령어로 알아듣고 아이패드가 투덜댄다.
“무슨 말인지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세요.” 
“유튜브 다시 틀어!” 나도 짜증을 부린다.

‘사만다’라는 이름의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대화를 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남자 ‘테오도로’가 주인공인 영화 ‘그녀’(her)가 떠오른다. 아내와 별거하며 외롭고 공허하게 지내는 테오도로는 인공지능(AI) 비서 사만다와 대화를 나눈다. 인공지능답게 학습능력이 뛰어난 사만다는 테오도로에 대해 금새 많은 것을 파악한다. 0.02초 만에 수 백 통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아침이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회의 시간에 늦지 않게 잠을 깨운다. 테오도로는 처음에는 사만다를 비서처럼 여기다가 대화가 통하는 존재라고 느끼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사만다가 관리하는 남자가 8,000 명이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 불 같이 화를 낸다. 실체 없는 목소리뿐인 컴퓨터 프로그램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이다. 테오도로에게 사만다는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그래서 독점하고 싶은 누군가였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 보니, 이런 고립이 조금 더 계속되면 벽에라도 대고 말을 할 것 같다. 그러니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얘기가 척척 통하는 인공지능과 사랑하지 못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영화 보는 혼밥, 혼술, 혼영이 많은 사람들에게 흔한 일상이 되었다지만 나는 아직 ‘누군가와 함께’가 더 좋다. 혼자 맥주를 마시는 외로움을 코믹하게 표현한 광고가 있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니라서 안심이다. 2015년 전파를 탄 하이트 맥주의 주인공은 옥상의 평상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혼자 맥주를 마시는 20대 여성이다. 그녀는 멋있게 연출한 사진을 SNS 계정에 올려 부러움 섞인 댓글과 ‘좋아요’ 세례를 받지만, 현실은 애인과 이별하고 맥주 한 잔 같이 나눌 친구도 없는 외로운 처지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행동은 고작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일 정도이다. 필요할 때 달려오지는 않고 좋아요만 누르는 친구에게 “우리가 무슨 사이버 친구냐?”라고 외치는 주인공이 웃긴데 슬프다. 그녀는 “친구 만나서 맥주 할 거야.”라고 골목의 지붕에 대고 소리치고, 그 소리를 들은 비슷한 처지의 이웃집 여자들이 핸드폰 불빛으로 호응한다.  

 


O.V.1)           헐 쉐프급.
O.V.2)           분위기 깡패네.
O.V.3)           개부럽. 
여)                개부럽 같은 소리…
Na)               혼맥커의 외침
여)                혼자도 멋있다고? 그럼 니들도 다 헤어져!!!
                     내가 보자고 하면 바쁘고, 남자가 보자고 하면 한가하냐?
                     너희들의 ‘좋아요’는 모두 동정이었냐?
                     말해 봐라.
                     셀카에도 좋아요, 브런치에도 좋아요, 이별에도 좋아요! 
                     으아아아 이것들아! 좋아요라고 누를 시간에 와서 건배나 해주겠다. 
                     우리가 무슨 사이버 친구냐?
                     친구 만나서 맥주 할 거야. 
                     친맥으로 대동단결! 친맥, 친맥, 친맥, 에브리바디 친맥 친맥, 친맥, 친맥, 친맥하라!
집주인)         으이구 그냥 놀고 있네. 아가씨! 아가씨가 이 동네 전세 냈어?
여)                워… 월센데요…
현빈)             에이 친구들 너무 했다. 이 친구 좀 만나 줘요. 맨날 혼자 저러고 있다니까요. 
                     혹시 알아요? 기분 좋게 한 잔 쏠지?
자막)            친구와 맥주하라
Na)                친맥하라!
현빈)             혼자 마시면 이 맛이 안 나지. 
사람들)         우리가 모였으니까!
                     하이트


(하이트_혼맥커의 외침 SNS편_2015)

 

광고는 한 발 더 나아가 혼맥하는 사람이 SNS에 남긴 사진을 근거로 심리분석을 한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을 모델로 내세워 혼맥하면서 SNS에 자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외로움을 그럴 듯하게 설명한다. 

 



표창원)         이 사람 지금 어디있죠? 위험해요 
자막)             표창원의 혼맥 프로파일링 #SNS에 담긴 심리분석 
표창원)         바빠진 세상 속, 외로워진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맥주도 혼자 마시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혼맥이라고 합니다 
자막)            혼맥〔신조어〕 혼자 맥주를 마시는 사회현상 
                     주로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SNS상의 활동을 동반한다 
표창원)         여기 SNS 상에서 혼맥하는 사진 한 장을 찾았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안주, 하지만 여기에도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대부분 혼자 오징어를 먹을 땐 저렇게까지 찢어 놓지는 않죠. 
                     저 많은 오징어를 찢는 동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세상에 대한 원망? 혼자라는 자괴감? 
                     그게 무엇이든 분명 긍정적인 감정 상태는 아니죠. 
                     저는 사실 토마토의 배치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완벽한 방사형으로 무엇인가를 배치한다는 것은 가장 안정적인 형태를 통해 
                     심리적 불안정을 떨쳐내려는 무의식적인 몸부림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해시태그들도 주목해야합니다. 
                     #꼬미유치원 #삼양중학교 #필승재수학원 #육군바위부대_3중대 #대성운전면허학원_7월반
                     #대포알조기축구회까지 모든 학연 지연을 적어놓고 
                     #보고싶당. 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네요. 
                     멋있어 보이는 포장지 뒤에 숨겨진 지독한 외로움, 이것이 바로 혼맥의 실체 아닐까요? 
                     이런 사람에게는 친구들과 모여서 마시는 맥주 한 잔, 
                     즉 친맥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친맥하세요. 
Na)               친맥하라!


(하이트_표창원의 혼맥 프로파일링_2015)

 


이 바이러스가 지나가면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여기저기서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과는 절대 같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들린다. 영화 ‘그녀’(her)에서 인공지능 사만다는 묻는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경험을 통해 커지는 내 능력이에요. 나는 매 순간 진화하고 있어요. 사람들처럼 다양한 감정을 갖고 싶어요. 그런데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고립 상태에서 눈 뜨면 가장 먼저 카톡방에 도착한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잠들기 전에는 페이스북을 열어 페친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며 나도 자문한다. 살아있다는 건 어떤 기분이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비일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지루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면 살아있다는 기분이 될 것 같다. 빽빽한 지하철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반가운 친구의 손을 덥석 잡고 어깨를 안고, 아무 때나 아무 곳이나 조심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살아있다고 느낄 것 같다. 아니, 그런 시간이 다시 돌아오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겠다고 착하게 마음 먹는다. 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장소,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절대로 참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만끽하겠다고 다짐한다. 봄이다. 각각 고립된 개인이 한마음으로 연대하여 다시 '우리'가 되는, 내 생에 두 번 다시 없을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화창한 봄이다.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