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7. 09:04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Don’t pretend there’s no problem”
올해 여든 여덟이 되신 우리 엄마는 다섯 살 어린애 같을 때가 많다. 잇몸이 퉁퉁 부어 치과에 갔는데 이를 뽑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진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을 치셨다. 엄마를 모시고 간 동생은 허둥지둥 진료비를 내고,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엄마를 잡으러 뛰어야 했다. 평소에는 무릎이 아파 거북이 걸음이던 엄마가 얼마나 날쌔던지 동생은 따라가느라 땀을 다 흘렸다고 한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치과에서 왜 도망 갔어?”
“무서워서.”
“애기도 아니고 뭐가 무서워?”
“아유, 윙 소리만 나도 무서워. 이제 살 만큼 살았어,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
앓던 이가 저절로 흔들려서 빠지고 어금니까지 성치 않으신데도 엄마는 치과에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자식이라면 야단을 쳐서라도 데리고 가서 치료하고 틀니나 임플란트를 할 텐데, 못된 딸은 엄마가 알아서 하시겠지 바라만 보고 있다. 엄마 집에 갈 때 고작 죽 한 그릇을 포장해 가는 것으로 마음의 부담을 덜어 내면서, 엄마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도 한참이 지난 일요일 저녁이었다. 마루에 있는 집전화가 울렸다. J의 전화였다. 시장에 나왔다가 내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공중전화라 ‘툭’하고 동전 들어가는 소리와 ‘덜꺽 덜꺽’ 동전의 액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공중전화 한 통화 값이 20원이나 30원이던 수십 년 전의 얘기다. J의 목소리는 어딘지 들뜨고 불안하게 들렸다. 만난 지 두어 달이 되었던가? 걸어가면 닿을 곳에서 하는 전화였는데 나는 만나자는 말은 끝내 안 하고 수화기만 30분 넘게 붙들고 있었다.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함께 아는 다른 친구들의 안부를 나누었고, 여전히 서툰 대학생활을 얘기했던 것 같다. 무슨 책을 읽었나 얘기하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전혜린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언급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1주일쯤 뒤에 J의 부고를 들었다. 자살이었다. 겨우 스무 살이었다. 엄마의 검정 스커트를 빌려 입고 영안실로 달려갔다. 영정 사진을 마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화장터에 가고 가루로 변해버린 J의 일부를 받아 산에 뿌리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J의 공중전화를 받던 날, 만나서 얼굴을 보고 얘기했다면 그 아이는 죽지 않았을까? J는 안아줄 사람이 필요해서 내게 전화했던 건 아니었을까? 옷 갈아입는 것이 귀찮아서, 다음 날 1교시 수업이 있어서, 다음에 만나면 되니까… 나는 속으로 변명을 늘어 놓으며 J의 신호를 모르는 척 했던 건 아닐까?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관의 가혹행위로 흑인 남성이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시위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나이키는 30년 동안 유지해온 슬로건 ‘Just Do It’(그냥 해라) 대신 'Don't Do It'(하지 마라)이라는 슬로건의 광고를 내보냈다. 나이키가 무엇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띄운 건 30년 만에 처음이다. 나이키는 이 광고에서 ‘딱 한 번만 하지 말라’고, ‘미국에 문제가 없는 척하지’ 말고 ‘인종차별주의에 등 돌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나이키는 ‘평등을 위해 계속 일어 서고 전 세계 운동 선수의 장애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선언했다. 아디다스는 "함께 하는 것이 변하는 방법(Together is how we make change)"이라며 경쟁사인 나이키의 광고를 리트윗 함으로써 나이키의 생각에 공감을 표시했다.
자막) For once,
Don’t Do It.
Don’t pretend there’s
not a problem in America.
Don’t turn your back on racism.
Don’t accept innocent
lives being taken from us.
Don’t make any more excuses.
Don’t think this doesn’t affect you.
Don’t sit back and be silent.
Don’t think you can’t be part of the change.
Let’s all be part of the change.
(한 번만 하지 마세요.
미국에 문제가 없는 척하지 마세요.
인종차별에 등을 돌리지 마세요.
무고한 생명이 죽는 것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더 이상 핑계를 만들지 마세요.
나와 아무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침묵한 채 가만히 있지 마세요.
당신이 변화의 일부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변화의 일부분이 되어주세요.)
‘문제가 없는 척하지’ 말라는 카피 한 줄에 마음이 켕겼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기분이었다. 내가 얼마나 자주 문제가 없는 척하며 살아 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나 사회정의, 환경오염 같은 커다란 문제만 외면하며 살았던 게 아니다. 가까운 가족의 슬픔이나 아픔도 못 본 척 넘어가기 일쑤였다. 해결해 주지 못 할 바에는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친한 친구의 상처나 노여움을 발견하지 못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면서도 내 어려움을 헤아리지 않는 친구가 야속하고 서운했다. 친구라면서 가족이라면서 내 곁의 사람들에게 나는 가끔 먼 외계에 사는 낯선 인류처럼 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안에 있는 상처와 분노, 소망과 절망을 외면했다. 없는 욕망까지 끄집어 내서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은 챙겼지만, 진짜 내 마음의 소리에는 귀를 막았다. 하루를 어떻게 채우고 싶은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고 싶고, 죽어도 보기 싫은 이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질문은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시대를 살면서 더이상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문제가 없는 척하며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한다. 4년 전 5G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SK텔레콤이 던졌던 카피가, 지금의 나에게 하는 얘기로 새삼 다시 읽힌다. 오래 전의 광고를 다시 보며 나는 다짐한다. 반갑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다 다른’ AC(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 말자. 내 안의 문제이든 내 밖의 문제이든 문제가 없는 척도 하지 말자.
지금까지 하던 대로는, 충분하지 않다.
Na) 우리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반갑지 않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속도에 적응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귀찮을지 모른다.
오직 인간만이 생각하고 예측하고 소통한다는
당신의 믿음이 깨질 것이다.
익숙했던 지금까지의 생활을 버리고
다 달라진 5G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환영받지 못해도 괜찮다.
늘 그렇듯 새로운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는 거니까.
5G에 다다르다.
자막)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다 다르다.
Na) Everything is alive Quantum
자막) SK텔레콤.
https://www.youtube.com/watch?v=drcO2V2m7lw&feature=youtu.be 나
이키_ For once, Don’t Do It_온라인 홍보영상_2020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v=K6pEm2IHieA&feature=emb_logo
SK텔레콤_5G에 다다르다_런칭 편_2016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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