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현실 그리고 소망 사이 2023.1

2023. 1. 19. 19:20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Between advertising, reality and hope

 

# 광고 1
광고가 계속되는 내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영상과 소리만으로 꽉 채워진 광고가 있다. 전파를 탄 지 2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기고 10주 만에 4,000만회를 넘기며 화제가 된, KCC의 아파트 브랜드 스위첸의 ‘내일을 키워가는 집’ 광고 영상이다. 
광고는 ‘놀멍.’이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불멍’이나 물이나 숲을 멍하니 바라보는 물멍, 숲멍을 본떠 만든 단어다. 노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며 고요한 마음 상태가 되라는 뜻으로 읽힌다. 놀멍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영상은 인위적인 연출이나 배경음악, 광고 멘트를 모두 생략하고 40초가 넘도록 어린이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시끌벅적하게 뛰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들의 소리보다 한 옥타브쯤 높이 올라가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 위로 ‘아이들은 조용히 클 수 없다’는 한 줄 자막이 뜬다. 
KCC는 “어른들의 기준에서 조형미를 앞세워 조경의 일환으로 만드는 놀이터가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싶은 모험 가득한 놀이터를 만들어,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노는 소리가 세상을 더 가득 채우게 만들자는 마음으로 이번 캠페인을 준비했다”고 밝히고 있다.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신나게 놀았던 곳. 언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던 곳이었던 놀이터는 점점 옛날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아이들은 빡빡한 학원 스케줄로 놀이터에 갈 시간도 없이 바쁘고, 어른들은 놀이터 부지를 주차장으로 변경하는 등 놀이터의 존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고 KCC의 광고 관계자들은 진단하고 있다. 놀이터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웃음소리가 우리의 내일이 자라는 소리라고 생각한 스위첸은 이 소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돌려주기 위해 아이들에게 직접 원하는 놀이터에 대해 듣고 그 의견을 반영하여 ‘꿈꾸는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자막)     아이들은 조용히 클 수 없다.
             SWIZEN
             KCC 스위첸

 

KCC 스위첸_TVCM:내일을 키워 가는 집 편_기업PR_2022

 


# 광고 2
달력을 바꾸자마자 설날이 코앞이다. 명절이면 미혼 자녀를 둔 부모들의 단골 레퍼토리인 결혼 독촉 잔소리가 떠오르는 광고가 있다. 남들은 다 갔는데 혼자서 외롭지 않겠냐는 주변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관대로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는 결혼정보회사 가연의 광고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많이 해야 매출이 늘어나는 결혼정보회사인데도 ‘결혼이 선택인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막)     나중에 너만 혼자인 거 아니야?
             친구들은 다 갔다며
             외롭진 않겠어?
Na)       해본 적 없지만 알고 있다. 
             이런 말에 떠밀려 결혼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걸. 
             결혼이 선택인 시대, 
             더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의 결혼가치관대로. 
             가치, 가연.

 

가연_TVCM_나의 결혼 가치관 편_2021

 


# 현실
2021년 우리나라의 결혼 건수는 19만 2,507건,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3.4세, 여자 31.1세다. 10년 전인 2011년 32만 9,100건과 비교하면 42%가 감소한 숫자다. 국내 혼인건수는 2012년 이후 10년 연속 감속 추세에 있다. 2011년의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2세, 여자 29세였다. 10년 만에 결혼연령이 두 살 정도 더 늦어졌다. 
지난 12월, 열 명쯤 되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인 직원들을 모아 결혼에 대한 생각을 듣는 집단심층면접(Focus Group Interview)을 진행했었다. 결혼적령기가 몇 살이냐는 질문에 단 두 명만 30대 초반이라고 대답했다. 나머지는 모두 30대 중후반이라는 대답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30대 중후반이 결혼적령기라고 대답한 사람 모두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초혼연령이 점점 더 늦어질 것을 예고하는 대답이다. 
결혼하는 숫자가 줄어든 당연한 결과로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 또한 급격히 줄고 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40만 명 대를 유지했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에 30만 명대로 떨어진 뒤 2020년에는 27만 2,337명으로 30만 명 대가 무너졌다. 2021년에는 26만 600명까지 하락했고, 2022년에는 25만 명 대도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여자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22년에도 1명이 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1분기 0.86명, 2분기 0.75명, 3분기 0.79명에 불과하다. 2018년부터 5년 연속 0명대를 기록 중이다. 참고로 2020년 기준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1.59명 수준이다. 1명 이하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통계를 보고 나니 결혼정보회사의 광고가 안쓰럽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나오는 광고 영상이 다른 나라 얘기처럼 아득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서른 이쪽저쪽에 있는 내 아이들이나 친구의 아이들도 대부분 미혼이다. 

# 소망
새해가 밝았다. 매서운 추위에 더해 지구촌 곳곳의 경제 전망도 어둡다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리니 새해가 되어 설레는 마음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언제부터인가 새해 결심을 하지 않는 대신 특별한 새해 소망 또한 가지지 않고 있다. 대신 별 탈 없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음에 고마운 마음이 나이가 들수록 더해진다. 해가 가고 오는 일이 무덤덤해지는 나이가 된 탓이고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살던 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루어지지 않아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소망을 몇 가지 마음에 품었다. 그 중 하나는 즐겁고 행복한 결혼식에 자주 초대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놀멍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부고장보다 청첩장을 더 자주 받았으면 좋겠다. 거실 창 너머 보이는 놀이터에 텅 빈 적막 대신 꼬맹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은 두려움 없이 결혼을 하고, 어린이들은 왁자지껄 몸을 부딪치며 노는 세상… 더 늦기 전에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lPec2ERomC4
KCC 스위첸_TVCM:내일을 키워 가는 집 편_기업PR_2022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oaE_i62KYo
가연_TVCM_나의 결혼 가치관 편_2021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