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안개 속에서 방향을 찾아야 할 때 2020.11

2023. 1. 26. 09:16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인 註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적 요건이다. 모든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함을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 외로 건축설계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경제적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시장구조에 대한 이해부터 마케팅, 세금 등 전반에 대한 학습이 절실하다. 실제 현장에서 요청하는 점도 이 부분이 크다. 
대부분 건축사 시험을 합격한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경영 과정의 전반이다. 건축사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이름으로 설계를 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의 ABC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사를 등록하고,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고, 사무실을 확보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생소하고 난감하다. 세금을 내야하고, 4대 보험을 가입하고, 각종 비용을 어떻게 지출하고 기록해야 하는지……. 건축사로서 당혹스러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실질적 프로세스보다 시장 전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경영 관점의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는 방법 외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함은 향후 대한건축사협회의 숙제가 될 내용들이다.
이런 이해 아래 이번 건축담론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생각해보는 이해의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시장에서 가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계비부터, 인건비, 각종 지출 등의 균형에 의해 구성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 인정되는 설계비는 이런 수요, 공급의 균형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지불할 충분한 의사가 있는 가격에 의해 공급자의 인정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다만 업역의 전문적 안정성과 특징으로 제도적인 최저 설계비 한계는 제안할 수 있지만, 이는 담합이나 기타의 불공정거래로 인정될 수 있어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건축 담론은 이런 초보적 시장에 대한 이해부터, 실제 고군분투하면서 운영하는 작은 건축사사무소 경영자들의 경험담을 게재한다. 그리고 이런 건축환경에 대한 시선과 돌파구를 위해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건축 경영을 강조하는 학문적 흐름도 이야기했다. 분명한 것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려는, 이미 경영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들에게 실질적 경영 학습 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01 Time to take a course buried in the fog

 

최근 한 부동산 전문가와 대화를 했다. 향후 5∼10년 사이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묻자 “정말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파트, 상가, 오피스, 주거시설 등 여러 영역에서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란 점은 확실하지만 실제 어떤 방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변할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유명 대학 인근에 있는 주거 시설처럼 절대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은 공간도 코로나와 온라인 수업 진행 등으로 큰 영향을 받은 것처럼 섣부른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전략 방향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 게 건축사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숙명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짙은 안개가 낀 상황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상황과 유사하다. 본고에서는 경영학계에서 발전되어온 여러 방법론 가운데 미래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론 3가지를 소개한다.

① 폐기학습

새로운 지식을 그릇에 채우는 활동이 학습(learning)이라면 그릇에 담긴 지식을 비워내는 게 바로 언러닝(unlearning), 즉 폐기학습이다. 상황이 급변할 때에는 학습보다 폐기학습이 더 중요하다.

벌과 파리의 실험이 폐기학습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평소 벌은 파리의 지능을 압도한다. ‘무리 지능(swarm intelligence)’ 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벌이다. 놀라운 협업 체계와 효율적인 프로세스로 생존과 번식을 이어간다. 반면 파리는 지능 측면에서 벌에 미치지 못한다. 벌과 파리를 동시에 유리병에 가둬놓고 유리병의 입구를 빛이 보이는 쪽으로 향하게 하면, 파리보다는 벌이 먼저 병에서 탈출한다. 벌이 빛이 보이는 쪽에 출구가 있다는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병의 방향을 반대로 바꾸면, 벌보다 파리가 더 빨리 탈출한다. 벌은 빛이 보이는 쪽이 출구라는 기존 지식에 의존해 계속 빛이 있는 방향으로 돌진하지만, 파리는 별생각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운 좋게 병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언러닝은 기존 지식과 솔루션이 잘 통하지 않는 급격한 환경 변화 상황에서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기반의 거대 유통업체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 수많은 공급업체와의 네트워크, 탁월한 인재와 거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온라인 시장에서는 거대 오프라인 기반의 업체보다 신생 스타트업이 주도한 오픈 마켓이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프라인과 완전히 다른, 온라인의 특징에 부합하는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거나 시도하지 못하면서 많은 오프라인 기반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기존 방식의 비즈니스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온라인 사이트 개설 정도의 점진적 혁신에 머물렀다. 반면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오픈마켓은 누구나 온라인 내에 상점을 개설할 수 있게 하면서 거래의 안전성을 강화했고 로켓배송이나 샛별배송 같은 혁신적 배송 정책을 실행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담으려면 폐기학습이 선행해야 한다.

② 시나리오 플래닝

미군에서 나온 방법론이 기업으로 전파돼 경영 방법론으로 발전한 게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강대국들이 핵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핵 전쟁을 억제하거나, 핵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전무한 상황에서 미군은 고민에 빠졌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개발한 방법이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전통적인 접근법은 특정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예측을 포기한다. 대신, 몇 가지 중요한 변화 동인을 찾아내고, 이 동인들이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해서 최소 2개 이상의 시나리오를 작성해본다. 그리고 개연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선정해 우리 조직의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 이후 건축 공간의 변화와 관련한 시나리오를 작성해본다면, 백신 조기 개발 여부와 온라인 기반 활동의 확산 여부에 따라 총 4가지의 시나리오를 작성해볼 수 있다. 즉, △전염병의 조기 종식과 오프라인 활동 회복 △전염병 조기 종식과 온라인 중심 활동 △전염병 지속 상황에서 오프라인 활동 회복 △전염병 지속 상황 속에서 온라인 중심 활동 지속 등 4가지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각 시나리오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전략을 모색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보고 대책을 마련해보면 불확실한 미래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실제 미군으로부터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전수받은 로열더치셸은 전담 부서를 만들고 다양한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오일 쇼크 같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해 오히려 위기 속에서 더 큰 성장을 이뤄냈다. 이후 많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토대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③ 애자일 경영

민첩함을 뜻하는 ‘애자일(agile)’은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비롯됐다. 보통 치밀한 기획을 한 뒤 역할을 나눠 체계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뒤 테스트를 거쳐 시장에 출시하는 게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이다. 하지만 애써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자 일군의 엔지니어들은 전혀 다른 접근을 했다. 치밀하게 기획해서 제품 개발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뒤 고객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을 신속하게 개발해 고객에게 들고 가 반응을 살피며 고객의 피드백을 근거로 추가 개발 계획을 진행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이런 접근이 확산되면서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게 애자일 기법이다. 예를 들어 신제품 세탁기를 개발한다고 하면, 기업 내의 개발팀이 회의와 토론을 거쳐 개발 방향을 정하고 6개월, 혹은 1년에 걸쳐 비밀리에 제품 개발을 완료한 뒤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성대하게 제품 런칭쇼를 하는 게 기존 방식이다. 하지만 애자일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세탁할 때마다 세재와 섬유유연제를 넣는 게 불편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인공지능으로 세탁물량에 맞게 세제 등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기능을 고객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가설을 세웠다면, 해당 기능만 갖춘 시제품(prototype)을 일주일만에 뚝딱 만들어서 고객들을 만나 반응을 살펴본다. 만약 긍정적 반응을 하는 고객이 많으면 계속 추가 개발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가설을 세우는 게 애자일의 핵심이다.

애자일 조직을 만들려면 실무자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빠르게 검증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상부의 승인을 얻게 하면 신속한 대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애자일은 가설을 수정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역량이 커지고 성공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 기존 가설이 잘 먹히지 않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신속하게 시장에서 빠르게 실패하고 유연하게 방향을 수정하도록 하는 게 애자일의 핵심이다.

전례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리더라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여러 방법론을 혼합해서 활용해야 한다. 기존 가정이나 지식에 의존하기보다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가능성 높은 하나의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여러 시나리오를 작성해 대비하고, 현장에서 가설 수립과 발 빠른 수정을 해나가는 체제를 갖춘다면 보다 효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글. 김남국 Kim, Namkuk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김남국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경영 전문지인 DBR(동아비즈니스리뷰)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글 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지금 당 장 경영전략 공부하라>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namku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