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 2021.1

2023. 1. 30. 09:2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여전히 위기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원래 건축사들의 삶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50~60년대 국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형성될 때쯤, 점차 제도와 책임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건축사 제도 역시 탄생돼 정착되었다. 19세기 영국도 산업화시기에 건축사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건축사 자격제도는 분명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긴 전문자격이다.
초창기 건축사는 비교적 소수였기 때문에 존재감도 상당했다.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건축사를 요구하는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자 숫자는 건축사에게 높은 경제적 지위를 선사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간에 무한 성장이란 없는 법. 성장이 지체되면 자격자 수급 시스템도 같이 연동해야 하지만, 건축사 시장은 이런 조절 시스템이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급격히 개인 건축사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건축사 공급체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이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대학은 오히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건축시장 안정은 시장 참여자인 건축사에 대한 적절한 수급 조절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서서 대다수 건축사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설계비를 더 많이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장 구조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사 시장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 시장도 아니어서 경쟁을 통해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을 구성하는 참여자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 시장은 야만이 판치는 정글경제가 되어 버린다.
현시대, 현 상황에서 과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과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신년 담론에서는 새해를 맞는 각 세대별 건축사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01 The last 10 years & The next 10 years

 

2021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 건축사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10년의 시작이다. 8년간의 대한건축사협회 임원 활동의 경험과 30년 건축사로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건축계 10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건축계의 가장 큰 이슈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대한건축사협회 회원이라면 ‘연 2회 건축사 자격시험’과 ‘건축사협회 의무가입 제도’를 꼽을 것이다. 지금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정책적 이슈지만 2021년에도 건축계를 뜨겁게 달굴 사안들이다.

이 두 이슈의 공통점은 건축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사안에 대해 건축계 내에서도 이해를 달리하는 다수의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이슈만큼은 아니지만 올해의 경우 건축 환경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해체 감리제도 도입과 건축물 관리법의 시행,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50억 이상 공사에 대한 설계자의 설계안전보건대장 작성, 건설안전특별법 발의 등인데, 이제 건축사는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산업안전 재해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또한, 동네건축 활성화를 위해 지금까지 입찰로 행해지던 소규모 공공발주 중에서 1억 이상의 설계비인 경우 설계공모가 의무화됐고, 설계의도 구현에 대한 대가기준이 제정되어 일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슈들은 건축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건축계의 이해 측면에서는 입장이 같다. 사실 건축계의 여러 문제들은 건축 생태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들이며, 건축계의 이해를 달리하는 건축계 내부의 이슈와 건축계의 이해를 같이하는 건축계 외부로부터의 이슈로 구분되는 것 같다.
지난 10년간 건축계의 과제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지난 10년간 건축계의 가장 큰 이슈거리는 아마도 공영감리제일 것이다. 통념적으로 설계자가 감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때,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여 시장을 확대하고 건축사 상호 간에 윈윈을 하자는 취지에서 제도 개선이 추진됐다. 2012년부터 공론화되어 처음에는 협회 내부에서만 자치적으로 시행하다가 2016년 법제화 되었다. 사실 시작은 경쟁 심화로 설계수주가 어려운 건축사들이 많아지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취지였는데, 이것이 법제화까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건축계와는 관계없이 소규모 건축물의 부실공사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정부 차원에서 감리 강화를 추진한 것이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감리분리의 대상은 종합건설업 면허 없이 건축주 직영이 가능한 660제곱미터 이하의 건축물이 대상이었다. 이는 건축주 직영 시공에서 부실시공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개정 과정에서 감리분리의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여, 건축계에 치유되지 않는 큰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그 후유증을 앓는 중이다. 그러나 허가권자 지정감리제가 시행되면서 감리대가가 요율대로 적용되며 정상화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무소에 실질적인 도움을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도 남겼다. 그런데 이 법이 2017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에 따라 건축주 직영공사 범위가 200제곱미터로 축소되며, 공영감리제 대상이 대폭 줄어들며 실효성을 잃게 되었다. 당시 대한건축사협회 주도하에 새건축사협의회와 한국건축가협회가 TFT를 구성하여 함께 국토부에 공동 대응함으로써 어렵게 현재의 허가권자 지정감리제 건축법 개정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 개정 시 허가권자 지정감리 대상은 설계의도 구현을 의무화함으로써, 현장에서 배제된 설계자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건축계 단체 간 합의에 의해 처음으로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그다음으로 영향력이 컸던 법 개정은 2017년 정동영 전 국회의원이 발의하여 개정된 건축사법(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에 의해 공공발주사업은 법정 대가기준을 의무적으로 준수하여 발주하게 되었다. 법 개정 후 초기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지금도 조달청 내부지침에 따라 5% 낙찰률을 미리 적용해 설계비를 공개하는 등 많은 개선의 문제가 있으나, 설계대가 정상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다음은 2018년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 의해 동네건축, 생활SOC사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건축방향과 정책이 나온 것이다. 이로 인해 소규모 공공건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설계비 1억 이상이면 설계공모로 의무적으로 발주하게 제도화되었고, 국가예산도 대규모 기간산업에서 소규모 공공건축으로 재편되며 공공 건축시장이 확대되었다. 특히 금년의 경우 코로나와 강력한 부동산 규제 등으로 민간 건축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은 반면, 공공부문 시장은 활기를 띠며 그나마 건축시장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국건위는 이러한 취지의 일환으로 여러 법에 나뉘어져 있는 공공건축의 기획, 발주, 설계 등의 제 규정들을 하나로 묶어 일관된 운영이 가능하도록 공공건축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현재 이 법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 이렇게 좋은 취지로 추진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도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총괄 건축가, 공공 건축가라는 용어를 법률적 정의 없이 사용하고 있고, 직접 이해당사자인 건축사들이 ‘건축사의 유사명칭 사용금지’라는 건축사법 위반 소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소통 없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건축계의 아킬레스건이기는 하지만 건축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제는 ‘건축가’ 명칭에 대한 법률적 정의를 내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위의 세 가지가 지난 1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정리하고 보니, 모두 먹고사는 문제와 관계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협회 의무가입을 추진하는 것도 빈사 상태의 건축 생태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고, 연 2회 건축사시험제를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이 관철되려면 사회적 요구와 부합되어야 함과 동시에, 끝없는 노력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절대적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이 관철되려면 사회적 요구와 부합되던지, 끝없는 노력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절대적 조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년간 추진했던 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이 마침내 국회 발의가 이뤄지고 개정 건축사법에 대한 국토부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도 건축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 국민의 안전이라는 명분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단체 간의 소통에 의한 합의로 사회적 명분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의 경제는 이제 약육강식이 당연시되는 미국식 야수 자본주의에서, 공정보다는 평등이 우선시 되고, 성장보다는 지속성을 강조하는 유럽식 사회적 자본주의로 재편되고 있다. 적자생존이 당연시되던 ‘올드노멀 시대’에서 생태적 순환과 삶이 중요시되는 ‘뉴노멀 시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인식해 대정부 활동을 해야 한다. 문제가 산적해  있고 갈 길은 멀지만 인내심을 갖고 머리를 맞대 꾸준히 건축계와 함께 고민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준수한다면 건축계 앞으로의 10년은 더 밝은 미래가 보장되리라고 확신한다.

 

 

 

 

 

 

 

글. 박성준 Park, Sungjoon (주)건축사사무소 우리공간

 

 

박성준 (주)건축사사무소 우리공간·건축사

 

박성준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해군 시설장교, (주)일건건축사사무소를 거쳐 1994년부터 지금까 지 (주)건축사사무소 우리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건 축사회 이사, 대한건축사협회 이사를 거쳐 지금은 대한건축사 협회 특임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건축사의 지역 참여와 주거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동네 건축인모임 협동조합’ 이사장 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시 사회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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