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2021.1

2023. 1. 30. 09:2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여전히 위기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원래 건축사들의 삶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50~60년대 국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형성될 때쯤, 점차 제도와 책임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건축사 제도 역시 탄생돼 정착되었다. 19세기 영국도 산업화시기에 건축사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건축사 자격제도는 분명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긴 전문자격이다.
초창기 건축사는 비교적 소수였기 때문에 존재감도 상당했다.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건축사를 요구하는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자 숫자는 건축사에게 높은 경제적 지위를 선사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간에 무한 성장이란 없는 법. 성장이 지체되면 자격자 수급 시스템도 같이 연동해야 하지만, 건축사 시장은 이런 조절 시스템이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급격히 개인 건축사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건축사 공급체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이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대학은 오히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건축시장 안정은 시장 참여자인 건축사에 대한 적절한 수급 조절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서서 대다수 건축사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설계비를 더 많이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장 구조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사 시장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 시장도 아니어서 경쟁을 통해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을 구성하는 참여자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 시장은 야만이 판치는 정글경제가 되어 버린다.
현시대, 현 상황에서 과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과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신년 담론에서는 새해를 맞는 각 세대별 건축사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02 Why am I doing this work?

 

새해는 신축(辛丑)년이다. 작년 경자년 말에 찾아보다 알게 됐는데, 눈에 쏙 들어왔다. 건축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자는 다르지만, 한글 표기가 같으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작년에 기회가 적었던 신축(新築)이 올해는 많아지길 바란다.  

매년 말이면 방송에서 그 해를 결산하며 기념할 만한 ‘10대 사건’을 나열하곤 한다. 필자도 덩달아 스스로의 한 해를 정리하며 10대 사건을 기록해 기념하곤 했는데, 2020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멈춰버린 일상에서 기념할 만한 사건이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비단 필자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팬데믹뿐 아니라 국내의 혼란스러운 정치와 경제, 그로 인한 사회 문제까지 가중되는 속에서도 시간은 시나브로 흐르며 2021년을 맞았고, 또 한 살을 먹게 됐다. 빽빽하게 채워졌던 이전과는 달리 삶은 텅 빈 여백만 남았다. 아니 ‘여백’이 아니라 그냥 ‘공백’이었다. 이런 시기가 또 언제 있었는지 오십 중반의 시점에서 돌아보니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없길 바라지만 한 치 앞을 못 보는 범부가 미래를 어찌 알겠는가.

그런 속에서도 코로나19 덕분에 얻은 소득이 있었는데, 여력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목수’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야 작은 공방에서 뭔가를 만들며 재능을 계발하게 됐다.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고, 아내와 함께 산책과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별히 내면 깊은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이 모든 게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바쁘다는 핑계, 또는 실제 분주함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상황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편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위상도 완전히 달라졌다. k-방역이라 부르는 질병 관리 능력을 비롯해 그 이전의 k-pop, k-movie 등 k-culture가 널리 이름을 날리고, 스포츠에서도 축구의 손흥민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했다.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발군의 능력자들이 나타나고 희망과 빛을 주기도 했는데, 언젠가는 ‘k-건축’도 세계인들의 입에 회자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수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사이먼 사이넥의 책이다. 당시 이 책을 손에 든 뒤 쉬지 않고 연속 2 회독을 했었다. 필자의 독서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고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영어 제목은 <Start with why>였다. 한 줄로 요약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2010년부터 ‘조아저씨’와 ‘Archijoe(아키조)’란 닉네임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창의교육의 범주에서 건축을 가르쳐 왔다. 더불어 방송과 온라인은 물론이고 기업이나 관공서 등 오프라인에서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생활 속 건축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가끔 하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건축설계와 더불어 또 하나의 직업으로서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고, 호응을 얻으며 지금껏 달리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강사들이 실직하거나 전업을 했으며, 필자 역시 앞으로 가르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회의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11년간을 돌아볼 때 특별한 지원 없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소명감’이었다. 어차피 이리 사나 저리 사나 한번 살다 가는 인생인데, 하늘이 내게 부여한 역할을 잘 수행하다 가면 그게 잘 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선택한 일이었다.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

좋은 건축문화의 시작은 건축사의 역량이 아니라 건축주의 소양이다. 아무리 능력 있는 건축사가 최선을 다해 멋진 계획을 할지라도 건축주가 수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건축주의 건축에 대한 이해와 소양은 그만큼 중요하다. 필자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축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재 집행 능력을 가진 중장년을 위해서도 병행해야 하겠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 차세대를 위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건축주가 많아지면 좋은 건축물도 많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축사에게 기회가 많아진다. 필자는 이 일을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일이든 기대 수익자가 먼저 일을 하고 투자를 한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그럼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의 수익자는 누구일까? 그 첫 번째 수익자는 국가다. 나라에 좋은 건축물이 많을수록 관광객도 많아지고 그에 따른 경제적인 면은 물론 기타 부가적인 효과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특수한 때이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오히려 봇물 터지듯 해외 관광도 시작되리라 본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는 이유는 그곳에 있는 건축물들을 실제로 보고 거기 살았던 이들의 삶의 향기를 느끼며 스토리를 듣고 체험하기 위함이다. 건축은 사유재산이자 공공재산이기에 좋은 건축주를 키워내야 할 국가의 의무는 분명하다.

두 번째 수익자는 국민이다. 안전하고 편리한 건축물에 살게 되면 그만큼 삶의 질도 높아지고 수명도 길어진다. 행복한 일상의 공간에서 일의 효율도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국민 모두가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건축에 대해 배우고 알수록 유익이 커진다. 좋은 건축주가 많아지게 되면 세 번째 수익자는 건축 관련 단체와 종사자들이다. 실질적인 사업의 범주가 확장되는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와 회원들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수익자는 필자다. 관련 교육이 많아지면 필자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건축주 만들기 프로젝트>는 지난 11년째 아직도 혼자 하고 있다. 사실 역부족이다. 그래도 소명이라 믿고 쉽지 않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라’가 안 하니 ‘나’라도 한다는 심정으로 하고 있다. 먼저 생각한 사람이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일에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래서 국가와 국민, 그리고 관련 단체들이 모두 힘써 좋은 건축주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시길 바란다.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 낮은 데 있는 감은 다 따고 손이나 막대기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감은 잘 익어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뿐인데, 그나마 몇 개 안 되면 다 떨어지고 난 뒤 아쉬울 뿐이다. 하늘에서 감이 지금보다 더 많이 떨어지게 하거나 딸 감이 많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은 감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감을 따기 위해 감 따는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감나무가 많아야 한다.

우리에게 감나무는 누구일까? 대한건축사협회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인 ‘미래인재 육성’의 미래인재는 누굴 의미하는가? 후배 건축사를 배출하고 예비 건축사를 키우는 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진짜 감나무인 좋은 건축주를 육성하는 일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건축문화 구현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우리의 미래 먹거리와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오랜 꿈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건축문화 선진국이 되는 것이고, 필자는 그 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결국 좋은 소양을 가진 건축주가 많아져야 한다. 허황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린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한 세대 후 건축주가 될 시기에는 필자의 오랜 꿈이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고 있다. 역사 속에서 한 세대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건축문화 선진국을 향한 작은 오솔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에 함께하는 이가 많아지면 길도 넓어지고 더 빠른 시일에 그날이 올 것이다.
2021년은 신축(辛丑)년이다. 독자 여러분 모두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생각하며 소처럼 꾸준하고 끈기 있게 목표를 신축(新築) 하시길 바란다. 현재뿐 아니라 후대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는 긴 안목으로 멋진 인생을 건축하며 튼튼하게 지탱해 줄 지정과 기초도 잘 놓으시길 권한다.

 

 

 

 

 

글. 조원용 Cho, Wonyong 다이아몬드 건축사사무소 · 아키조TV

 

조원용 다이아몬드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 아키조TV

 

책 ‘건축, 생활 속에 스며들다’의 저자이며, KBS2 TV특강, EBS특강,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 KBS 여유만만 건축인문 학 특강 등 다수의 TV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안산대학교 건축설계과 겸임교수, 경원대학교 건축학과 외래 교수,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외래교수 역임하였고, 현재 다이아 몬드 건축사사무소 대표, (주)창의체험 대표이사, (사)환경미 술협회 환경건축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archicw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