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가벼운 이야기 2021.1

2023. 1. 30. 09:2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새해를 맞아 여전히 위기 한가운데 있는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원래 건축사들의 삶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50~60년대 국내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전반적인 체계가 형성될 때쯤, 점차 제도와 책임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었고, 그에 따라 건축사 제도 역시 탄생돼 정착되었다. 19세기 영국도 산업화시기에 건축사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건축사 자격제도는 분명 사회적 요구에 의해 생긴 전문자격이다.
초창기 건축사는 비교적 소수였기 때문에 존재감도 상당했다.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건축사를 요구하는 시장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비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자 숫자는 건축사에게 높은 경제적 지위를 선사했다. 하지만 어떤 분야이든 간에 무한 성장이란 없는 법. 성장이 지체되면 자격자 수급 시스템도 같이 연동해야 하지만, 건축사 시장은 이런 조절 시스템이 어느 순간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 건축시장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급격히 개인 건축사 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건축사 공급체계를 조절해야 할 시점이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건축대학은 오히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건축시장 안정은 시장 참여자인 건축사에 대한 적절한 수급 조절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서서 대다수 건축사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혹자는 설계비를 더 많이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시장 구조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건축사 시장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약자 시장도 아니어서 경쟁을 통해 질적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장을 구성하는 참여자 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 시장은 야만이 판치는 정글경제가 되어 버린다.
현시대, 현 상황에서 과연 건축사들은 어떤 생각과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신년 담론에서는 새해를 맞는 각 세대별 건축사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04 A simple story 

 

00. (들어가며)

‘건축계의 과제, 비전,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원고 의뢰가 이제 개소한 지 3년 남짓한 애송이 건축사에겐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아직 '건축계'의 판을 읽을 만큼의 식견이 내겐 없는데……. 고민 끝에, 애송이답게 눈치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보기로 한다.

01. (나의 시작)

사실 난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을 꿈꿔본 적은 없었다. 건축사는 나에게 건축 전공자로서 마무리 지어야 할 ‘유종의 미’였고, 새해 첫날 다짐하는 다이어트 같은 밀려있는 ‘숙제’였다. 실제로 서울에서 건축사사무소를 다니다가 큰돈을 준다는 말에 혹해서 아무런 대책 없이 사표를 던지고, 집장사를 꿈꾸며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백수 시절을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정미소에 대한 건축적 제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왔다. 다른 이들에겐 철거해야 할 그저 그런 낡은 건물이었겠지만, 내 눈엔 녹슨 빨간 양철지붕마저 너무 사랑스러운, 감성 돋는 오브제였다. 욕심이 생겼다. 회사를 그만두기 바로 직전에 대구 삼성창조캠퍼스를 통해 리모델링을 ‘진하게’ 경험했었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군수님께 정미소에 대한 제안사항을 말씀드렸고, 흡족해하셨고, 내 인생에 최초로 ‘수주’라는 것을 해냈다. 흥분되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나름 고액 연봉을 받고 있으나 설계공모로 지쳐있던 후배까지 꼬드겨서 내려오게 만들었고, 그렇게 둘은 2.5평 남짓한 선배 사무소 내 작은 회의실에 야심 차게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관공서 수의계약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일이라서 건축사가 필요했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나로서는 선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건축사에 대한 절실함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했다. 겨우 수의계약(금액은 짐작하시겠죠) 한 건으로 소속 건축사도 없이 스튜디오를 오픈하다니.

02. (어쩌다 재생)

오래된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은 굉장히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무분별한 개발행위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재생과 리모델링은 나에겐 가치관과 부딪치지 않으며 건축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였다.

하지만 ‘경영인’으로서는 피해야 할 분야다. 리모델링 사업은 공사비가 적게 든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낮은 공사비가 책정된다. 공공건축 대가 기준이라는 것이, 공사비의 요율로 책정되기 때문에 이에 따라 설계비도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어쩌다 산정 근거에 의해 1.5배 적용을 해준다 해도 설계비가 드라마틱 하게 올라가지 않는다. 출발부터 잘못되어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재생사업이 그러하듯이 초반에 책정된 공사비는 증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예산 확보가 가능하면 다행이다. 아니, 다행인가? 공사비는 예산 확보로 늘려주면서, 낮은 공사비에 따라 책정된 설계비는 그대로다. 규모나 사업범위가 줄면서 설계비를 깎는 경우는 봤어도, 예산 확보로 공사비가 올라갔을 때, 설계비를 올려주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그냥 업무만 늘어나는 것이다. 반대로, 예산 확보가 절대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맞춰서 해 달라 하면, 그 때부터 건축사사무소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애써 그려놓은 디자인 다 지워가며 그냥 그런 건물로 마무리 짓고 납품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리모델링은 현장의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납품 이후에도 설계변경이 계속 수반된다. 

그래서 리모델링이나 재생 쪽 설계용역은 아무리 작은 건물도 1년 안에 손을 털기가 쉽지 않다. 사업 측면에서는 당연히 손실을 입는다. 왜 건축사들은 리모델링이나 재생사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몰랐었다. 단지 ‘귀찮고 어려우니까’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회사를 운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스튜디오로 일을 하던 첫해, 후배와 둘이서 1년 동안 리모델링 용역 2개를 진행했다. 열정적이었던 그 시기에 우리가 가져가는 돈 ‘따위’에는 개의치 않았다. 업무범위도 아닌데, 인테리어, CI까지 만들어가며 ‘오버’를 했다. 주말도 없었고, 거의 매일 새벽 4시까지 일했다. 사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결과물이 좋을 수밖에 없었고, 인정받았고,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새 직원이 4명이나 되는 건축사사무소의 ‘경영인’으로서 이제는 ‘운영’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내 만족으로만 일을 할 순 없다. 그렇게 나 역시 점점 리모델링 사업을 기피하고 있다.
 
03. (갑자기 결론 ; 과제와 비전)

몇 해 전부터 도시재생이 뜨겁다. 그 재생사업 안에는 지표적으로 성과를 내기에 쉬운 하드웨어 사업으로 거점 시설들이 몇 개씩 들어간다. 보통은 신축으로 발주를 한다. 발주처의 의지가 있는 곳은(어쩌면 사업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재생사업에 의미를 더하며 낙후 건물 리모델링으로 발주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단독 건으로 건축사에게 발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사업은 도시 쪽 엔지니어링 회사에 건축사사무소를 묶어서 정비 사업에 속한 형태로 발주되기도 한다. 그렇게 건축사가 주도해야 할 업무가 이쪽에서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형편없다. 그 건축사를 탓할 순 없다. 대가에 맞게 딱 그만큼의 업무를 한 것이니.
앞으로 리모델링·재생사업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정책적인 장려에 따라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 떠오르는 시장을 건축사의 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업무량에 맞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사비 요율과는 독립된 대가기준을 별도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렵다면, 발주처가 의지하는 조달청 공사비 정보광장 혹은 AURI에 리모델링·재생사업에 대한 공사비 사례를 별도의 카테고리로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청 많은 건축사가 배출되고 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은 더 심해질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용역비로 일을 진행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고, 발주처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나 역시 시작은 그랬다. 인맥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를 보여주기 위한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야 했으니까. 너무 뻔한 결론이지만, 정당한 업무대가를 보장해 줘야 한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신진 건축사’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건축사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으로,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힘들게 공부하는 건축학도들이 자신의 건축사사무소 개소를 꿈꾸는 날이 오면 좋겠다. 

 

 

 

 

 

 

글. 이충미 Lee, Chungmi 진짜노리 건축사사무소

 

 

이충미 진짜노리건축사사무소·건축사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주)희림 종합건축사사무소, (주)삼우 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2018년 진짜노리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담양 천변리정미소 리모델링, 담양 해동주조장 문화재생사업 을 시작으로 인문학가옥(담양구관사) 리모델링, (구)담양읍교 회 리모델링 등 재생프로젝트부터 담양호 관광단지 공공화장 실, 담양 청소년문화의집,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센터 신축까지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reallpla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