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이야기(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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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의 기쁨을 아는 몸 2022.12
I am the one who knows the joy of making kimchi "나 김장해야 돼서 헬스장에 며칠 못 와.” “몇 포기나 하는데 며칠씩이나 못 나와?” “여섯 포기!” “아이고 이 언니, 겨우 여섯 포기하면서 김장한다고 그렇게 엄살이야?” 한 여인이 큰 소리로 수선을 떨었다. “여섯 포기가 얼마나 많이 하는 건데 그래… 작년에는 세 포기 했어. 그거 하는데도 무지하게 힘들었어.” 언니라고 불린 여인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세 포기가 김장이야? 그건 그냥 평소에 해먹는 김치지. 난 김장 60킬로해요! 처음의 여인은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깔깔거렸다. 며칠 전 동네 헬스장의 탈의실에서 오고 간 대화였다. 넓은 평상이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탈의실은 옛날..
2022.12.21 -
봄 꽃 피면, 봄 술 한 잔 2019.4
When spring flowers bloom, what about a spring drink? 봄이다. 햇살은 다사롭고 꽃 향기가 골목을 떠다닌다. 그리고, 봄바람이 분다. 4월에 부는 바람은 살랑살랑이다. 꽃샘바람처럼 매서운 대신 부드럽고 다정하 다. 밖으로 나오라는 봄의 손짓 같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고 바람에 흔들리며 걷고 싶다. 4월이 되면 제일 먼저 김소월의 「바람과 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이 시에서 소월은 속삭인다. 이 봄, 마음이 이토록 흔들리는 건 내 탓이 아니라고, 저녁 어 스름이 찾아오면 술 생각이 나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모두 꽃향기 때문이고 봄바람 때문이라고 「바람과 봄」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
2022.12.16 -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에도 내 심장은 식지 않는다” 2019.3
“Even her cold voice does not cool down my heart” 눈보라 치는 산에서 한 남자가 독백한다. 굳은 표정, 눈을 만지는 손이 외롭다. 그 날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새 하얀 눈이 모든 숲을 덮었다. 가장 아름답게 별이 반짝이던 모든 것이 완벽한 겨울이었다. 겨울이 아니라면 준비해 간 도시락을 펴놓고 먹었을 나무 테이블과 의자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눈 덮인 등산화의 지퍼 고리에는 반지가 하나 매 달려 있다. 자막에 보이는 시간은 오전 11시. 카메라가 빠져서 보니 남자는 테이블 위에 조각처럼 서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손을 모아 입김을 불어 보 고 패딩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쓴다. 독백이 이어진다. 벌써 세 시간 째 끝없는 기다림 기다릴 준비는 되어있..
2022.12.15 -
미안해요, 사랑해요 2018.12
I'm sorry, I love you 까만 화면에 ‘미안해’라는 자막이 생겨난다. 뒤를 이어 나타나는 자막이 예사롭지 않다. ‘아침 마다 울게 해서 미안해 숙제 같이 못 해줘서 미안해’ 세 줄 자막이 생겨난 뒤에 배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텅 빈 자동차 안이다. 아무도 앉지 않은 운전석과 조수석이 보인다. 그 위로 자막이 계속 흐른다. ‘맨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잠시 모든 자막이 사라졌다가 조금 더 큰 크 기의 자막 한 줄이 나타난다. ‘일하는 엄마라서, 미안해’ 겨우 자막만 읽었을 뿐인데 눈가가 뜨 거워진다, 목구멍으로 왈칵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2015년에 제작된 기아자동차의 카렌스 광고의 이야기다. 또각또각 여자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차 문이 열린다. 일과 육아, 살림이라는 ..
2022.12.10 -
“밥이 답이다!” 2018.10
"The rice is the answer!" 전국의 들판에서 벼 베기 소식이 들려 온다. 8월에 벌써 수확해 추석 명절에 출하된 조생종 벼 를 제외하면, 지금 많은 논의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벼는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은 통일신라 때 만 해도 귀족식품으로 인식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물가의 기준이요 봉급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귀중한 존재였다고 한다. 지금은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잡곡밥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귀리니 보리는 물론 렌틸콩, 퀴노아, 햄프시드 같은 희한한 이름의 곡식들을 쌀에 섞어 먹는다. 하지만 70년대만 해도 쌀이 부족해서 건강과 상관없는 이유로 혼식을 장려했다. 쌀소비를 줄이기 위해 분식을 ..
2022.12.08 -
이 여름, ‘시간을 달리는 남자’에게 배달시키고 싶은 것 2018.08
During this summer, I want to deliver it to 'the man who runs the time' 집을 나서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했다. 창 밖의 쨍한 하늘과 쏟아지는 햇살은 111년 기상청 관 측이래 최고로 뜨거운 날씨를 예고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을 열자 찜질방에 들어 선 듯한 열기가 훅 끼친다. 양산을 받쳐들고 걸었다. 보도블록에 전기장판을 깔아놓은 뒤 온도 를 최고로 올려놓은 것 같다. 혹시 상상력이 더위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잠깐 지금이 한겨울이라고 생각해 봤다. 옷깃을 아무리 여며도 파고드는 한기를 막을 수 없어 잔뜩 웅크리 고 걷는 나. 마른 잎 한 장 달려있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들. 얼어붙은 빙판길에 행여 미끄러 질까 조심스러운 발걸음...
202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