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이야기(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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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없는 척하지 마세요” 2020.7
“Don’t pretend there’s no problem” 올해 여든 여덟이 되신 우리 엄마는 다섯 살 어린애 같을 때가 많다. 잇몸이 퉁퉁 부어 치과에 갔는데 이를 뽑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진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을 치셨다. 엄마를 모시고 간 동생은 허둥지둥 진료비를 내고,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엄마를 잡으러 뛰어야 했다. 평소에는 무릎이 아파 거북이 걸음이던 엄마가 얼마나 날쌔던지 동생은 따라가느라 땀을 다 흘렸다고 한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치과에서 왜 도망 갔어?” “무서워서.” “애기도 아니고 뭐가 무서워?” “아유, 윙 소리만 나도 무서워. 이제 살 만큼 살았어,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 앓던 이가 저절로 흔들려서 빠지고 어금니까지 성치 않으신데도 엄마는 치과..
2023.01.17 -
“우린 겨우 이런 일로 행복합니다” 2020.6
“We’re just happy with this small matter”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담임 선생님이 아침 조회에 낯선 얼굴의 학생을 데리고 들어오는 일이 가끔 있었다. 교실에 가득찬 70명 가까운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잔뜩 긴장한 표정의 전학생을 쳐다보았다. “오늘부터 우리 반에서 함께 공부하게 될 전학생이다. 반갑게 맞아주길 바란다. 저기 빈 자리 보이지? 거기 앉으면 되겠네. 들어가기 전에 자기 소개하고 들어가.” 전학생은 어느 학교에 다니다 온 누구라고 이름을 겨우 더듬더듬 얘기하고는 들어가 앉는다. 그러면 나는 종일 새로 온 아이를 궁금해 했다. 얼굴이 참 예쁘네, 공부는 잘 할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할까? 동생이 있을까? 저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어땠을까? 매일..
2023.01.16 -
“#STAY HOME 조금만 더” 2020.5
“#STAY HOME A little more” #자발적 자가격리의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 94세의 일본의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熊谷守一)는 30년 동안 자신의 정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살았다. 30년 동안 낮에는 정원의 나무와 풀벌레, 개미, 송사리들을 관찰하고 밤에는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모리에게는 정원이 곧 세계이고 우주였다. 화가 모리의 말년을 담은 영화 「모리의 정원(モリのいる場所)」에서 모리의 부인은 말한다. “여기에는 많은 나무와 벌레가 살고 있으니까요. 이 정원은 남편의 전부예요.” 모리는 52세에 이사한 집에서 45년을 살다가 1977년에 죽었다. 60대 중반부터는 정원 밖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자가격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미리 실천한 타샤..
2023.01.13 -
쓰레기도 족보가 있다 2020.2
Waste also has genealogy “우리 아버지는 내가 고 3 때도 밤 12시 넘어서 공부한다고 불 켜놓고 있으면 불 끄라고 호통을 치셨어.” “정말? 왜?”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말도 안 돼. 대학 입시는 어쩌라고?” “혼자만 공부하는 것처럼 유난 떨지 말라는 거지. 게다가 우리 누나, 형들이 다섯 명 다 대학 갔잖아. 나 하나 못 가도 그만이었을 거야. 당장 전기요금 고지서가 더 큰 문제지.” “하긴 우리 엄마도 맨날 전기 코드 뽑아 놓으라고 성화였어. 지금도 그러시고.” 여섯 남매 중의 막내인 친구가 소환한 30여 년 전의 기억에 다른 친구들이 맞장구를 쳤다. “어디 전기뿐이야? 우리 엄마는 전화 통화 조금만 길어지면 끊으라고 얼마나 야단을 했는데.” “맞아 맞아! 걸려온 전화 ..
2023.01.10 -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가 필요하다 2019.12
Everyone needs someone 지금의 내 나이에 죽어버린 선배의 1주기 추모식에 갔었다. 학생운동을 거쳐 오랜 세월 노동운동에 헌신하다가 병을 얻어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가 살던 선배였다. 납골당이 있는 추모공원에 마련된 제례실에 조촐한 제사상을 차려놓고 선후배와 가족들이 둘러 앉았다. 모인 이들의 대다수가 죽은 이보다 나이가 많았다. 선배는 죽어 나이가 멈추어 버렸는데 나만 나이가 들어, 나도 선배와 동갑이 되었다. 길지 않은 생애의 약력을 읽고 선배의 친구가 추모사를 낭독했다. 둘러 앉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선배와의 인연이나 추억을 이야기 했다. 이른 아침 비행기로 내려온 후배는 추모식 내내 훌쩍거렸다. 덩치가 산 만한 녀석이 “형 좋아했어요. 지금도 좋아합니다.” 겨우 두 마디를 어렵게 말하..
2023.01.07 -
다시 여자, 다시 남자 2019.11
A Woman Again, A Man Again “나는 몇 년 전부터 와이프가 무서워….” 거의 30년 만에 만난 선배가 말했다. 선배는 몇 달 전에 23년 동안 운영하던 사업을 접고 은퇴한 상태였다. “왜요?” “자꾸 지적질하고, 큰소리로 야단치고 그래서.” “하하 설마 무섭기까지야 할까?” “정말이야, 그래서 몇 달 전에는 진지하게 얘기했어. ‘난 네가 무섭다’고.” “그랬더니 뭐래요?” “깜짝 놀라더라고. 내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이야기 하고 나서는 야단 안 맞아요?” “며칠은 좀 덜하더니 다시 마찬가지야.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자유롭게 내가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살겠다고 선언했어.” “자유롭게 사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요?”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갔어, 미리 말 안 하고..
2023.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