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스토리(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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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kitsch)의 감성 2023.8
Sensibility of kitsche 가족여행으로 강릉에 갔다. 경포 해변을 걷다가 재미있는 벤치를 발견했다. 함께 간 가족 한 명이 거기에 앉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싶은 모양이다. 벤치 위의 하트 장식은 그곳을 포토존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저곳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분명 바다의 수평선과 모래사장, 파란 하늘이 멋진 배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벤치는 마치 관광지의 호객꾼처럼 그런 사진을 찍어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벤치를 기획한 주최 측은 아마도 ‘포토존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어떤 디자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촬영하도록 만들까? 평범한 벤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
2023.08.17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분 2023.7
The justification of ‘form conforms to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이 유명한 건축/디자인계의 경구를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아, 이 말은 진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은 직관적이다. 직관은 논리적 사유와 추리를 거치지 않고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 말은 디자인의 이치를 함축적이면서도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다. 어떻게 기능을 따르지 않는 형태가 있을 수 있을까? 국물을 안전하게 담을 수 있는 숟가락을 보라.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보라, 적은 에너지로 잘 굴러가는 바퀴를 보라. 그 어떤 사물에서도 기능에 적..
2023.07.21 -
서촌의 간판 글씨들 2023.6
Signboard letters of Seochon 내가 사는 곳은 관광지로 유명한 서촌이다. 나는 직업병으로 이 동네를 걸어 다니며 끊임없이 간판 글자를 보고 그 글씨가 왜 그런 모양인지 생각해 보곤 한다. 서촌의 간판은 한국 어느 도시의 간판과 다를 바가 없다. 서촌의 간판문화가 표준이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 동네들의 간판문화가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서촌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간판 디자인을 모아봤다. 샘은 게스트하우스 간판이다. 글씨가 벽 위에 지붕을 얹은 집의 입면 같다. 하우스답다. 주점 앵두꽃은 마치 앵두꽃이 핀 것처럼 예쁘고 봄기운처럼 들떠 있는 것 같다. 특히 ‘꽃’이라는 글자의 쌍기역은 꽃 속에서 올라온 수술 같은 인상이다. 이 간판은 캘리그래퍼 강병인이 쓴 것이다. 술&노래방바 간판은 술 ..
2023.06.21 -
음악의 형태와 이미지 2023.5
Forms and images of music 친구들과 LP바에서 음악을 듣다가 각자 스마트폰에 음악파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음악 파일만 스마트폰으로 옮기고 그 음악 파일의 이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 스마트폰의 음악 앱을 보니까 특정 노래를 재생해도 이미지는 텅 빈 채로 있었다. 나는 이미지가 없는 음악 파일은 스마트폰으로 옮기지 않는다. 일단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음악 파일은 그 음악이 실린 앨범의 이미지를 찾아내 연결해 준다. 그렇게 아이튠즈(애플의 음악 관리 앱)에 저장된 모든 앨범이 이미지로 채워졌을 때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만약 이미지가 없는 앨범이 하나라도 있으면 조화가 무너진 그림처럼 영 찜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2023.05.16 -
대문자 vs 소문자 2023.4
Capital Letters vs Small Letters 어느 대학에서 글꼴의 진화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라틴 알파벳은 대문자가 먼저 태어났고, 기원후 3세기 무렵에야 소문자가 나타났다. 로마인들은 글자를 쓸 때 두 개의 기준선을 그은 뒤 그 안에 글자에 채워 넣었다. 그런데 3세기 무렵부터 그 기준선 밖으로 뛰쳐나가는 글자가 생기면서 소문자가 탄생했다. 예를 들어 b, d, f, h, k, l은 평균선 위로 글자 선이 올라간다. 평균선 위로 올라간 부분을 ‘어센더(ascender)’라고 한다. 반면에 g, j, p, q, y는 평균선 아래로 선이 내려간다. 아래로 내려간 부분을 ‘디센더(descender)’라고 한다. 그에 따라 소문자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게 되었다. 어센더가 있는 글자, 디..
2023.04.18 -
물리적 이미지 vs 가상공간 속 이미지 2023.3
Physical Image vs Cyberspace Image 1980년대에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극장엘 가든지 아니면 주말에 TV에서 해주는 영화 프로그램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TV 채널은 3개밖에 없어서 주말에 해주는 영화도 3편이 최대치다. 극장에서 개봉하거나 TV에서 해주는 영화 이외에는 볼 길이 없었다. , , 같은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걸작들은 그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잡지에 실린 스틸 이미지로만 아는 영화가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비디오가 대중화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새로운 통로가 생겼다. 하지만 대중적인 영화 위주로 출시되는 비디오로는 나 같은 시네필(Cinephile, 영화 애호가)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디..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