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대 건축사사무소(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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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마을 _ 대전 철도관사마을
Disappearing village Railway official residence village in Daejeon 도시는 시간과 함께 흔적을 남기며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 시작과 성장 그리고 쇠퇴와 소멸 도시 속에 남겨진 역사적 존재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 이 모든 과제를 다양한 모습으로 접근하여 진행 중인 마을. - 재개발 그리고 보존과 재생에 관한 갈등 이는 대전역 인근에 위치한 소제동 철도관사마을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 철도관사마을(대전시 동구 소제동 일원)에는 총 1,312세대 2,052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총면적은 360,000제곱미터이다. 100년 전의 도시구조와 그 당시의 옛 마을과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
2023.02.07 -
사라지는 마을돌산마을 2021.6
Disappearing village Dolsan Village 가난이 머물다 간 흔적은 마음을 멍들게 할 때도 있지만 한참을 오다가 뒤돌아보면 전이되어버린 좁쌀 같은 생의 암 덩어리를 향한 치유의 손길 빈 신작로 길 위를 구르는 바람 소리에 가만가만 물어보면 가난처럼 귀한 유산도 없단다 -이충재 詩, ‘가난 유산’ 中 전체 5만 5,000제곱미터 산기슭에 300여 채의 무허가 촌락, 부산의 대표적 빈민가인 문현동 돌산마을(부산시 남구 돌산1길 16)이 60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곳은 황경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황령마을이라 불렸고, 돌들로 형성된 절벽 중간에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돌산마을이라 불렸다. 일제 강점기부터 형성된 공동묘지 터에 한국전쟁의 피난민들이 모여 만든 주거..
2023.02.06 -
사라지는 마을삼덕(三德) 2021.5
Disappearing village Samdeok 명칭 유래 삼덕(三德)마을은 천주교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덕목인 믿음[信], 소망[望], 사랑[愛]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져 ‘신망애(信望愛)’라는 석 자로 요약된다. 형성 및 변천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위치한 삼덕마을은 1961년 2월 5일 국립용호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음성 한센인의 자립촌으로 조성되었다. 음성 한센인의 자립을 위해 용호동 본당(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이 자체 기금으로 당시 동래군 일광면 이천리 임야 약 1만 3884.30제곱미터(4,200평)를 구입하고, 추가로 부지 1,537.19제곱미터(465평)를 매입하여 택지를 조성하였다. 같은 해 3월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건평 약 20제곱미터(6평) 규모의 주..
2023.02.03 -
앤텔로프 캐니언 2021.4
Antelope Canyon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서부 5대 캐니언 중 하나로서, 사암 고원의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길이 8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협곡이다. 그 모양이 다채롭고 신기한 형상이 많으며, 특히 빛과 어우러진 사암에 남겨진 물의 흐름 잔상이 매우 다채롭다. 사진작가들은 이곳을 ‘눈과 마음, 영혼에 축복을 내리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빛과 색깔, 형태가 어우러져 시시각각 변화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며, 위쪽은 진한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빛나지만 아래쪽으로 갈수록 빛이 약해지면서 어두운 푸른색과 보라색으로 변한다. 빛과 색의 대조와 협곡의 벽에 비춰지는 빛의 효과는 영혼의 깊은 내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글.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2023.02.02 -
사라지는 마을산복도로 위 아파트, 부산 영주 시영·시민아파트 2022.12
사라지는 마을 산복도로 위 아파트, 부산 영주 시영·시민아파트 북항과 부산항대교, 신선대 부두, 동구와 중구 그리고 영도 일대까지 내려다보 이는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73-1 일원과 산1-200에는 부산 최초의 시영 및 시민아파트인 영주아파트가 있다. 부산은 일제 강점기 이후 항만도시로 변화되 면서 자연스럽게 몰려온 항만 노동자와 철도 노동자, 해방 후 귀환 동포, 그리고 6·25전쟁의 피난민들로 인한 갑작스러운 도시 변화로 이에 따른 주거지 형성이 문제화되었다.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은 해안 도시의 특성상 도심과 주변 고지대 는 과밀화되고 결국 이들은 움막이나 판잣집을 지어 산 중턱에 무허가로 무분별 하게 정착하면서 많은 산동네가 형성되었다. 그 당시 산동네의 모습은 도시의 미관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2022.12.21 -
사라지는 마을5·18민주화운동의 근거지, 광천 시민아파트 2022.11
Disappearing village _ Gwangcheon Citizen Apartment, the base of the May 18 Democratization Movement 광천동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광주천 옆에 새로 방죽을 쌓았다고 해서 새방천 혹은 신방천이라 불렸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일제의 잔영을 없애기 위한 잠정적 조치로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일제 강점기에 광천정이라 부른 이름을 취락동이라 고친 후 1947년에 광천동이 된다. 일제 강점기에 종연 방직공장이 있었으며, 광복 후에는 다양한 종류의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광천공단으로 불리며 공장근로자들의 거주지를 이루었고, 6.25전후 피난민과 도시빈민들의 판자촌이 많았던 대표적 광주의 달동네였다. 광천 시민아파트는 광주광역시 서구..
202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