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비즈니스가 윤리적이어야 할까? 2021.6

2023. 2. 6. 09:2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이번 건축담론의 주제는 경영 윤리와 관련된 것이다. 의외로 건축계 사람들은 경영이라는 말을 낯설어 한다. 그리고 본인들의 일이 비즈니스의 영업과 전략에 해당된다는 것도 인지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화가처럼 개인의 창작 욕망에 끌려서 작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건축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창작을 바탕으로 기술자로서 책임도 가지고, 경영자로서 윤리 의식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영업을 통한 이윤창출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건축사는 창작 예술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 계약하는 조직관리인이자 경영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건축대학에서는 창작 예술인으로서, 기술장인으로서 건축학도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창업하지 않고,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어서 급여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창업해서 누군가와 고용 계약을 맺고 그 사람의 시간을 사용한다면,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비즈니스적인 사고는 절대적이다.
비즈니스적인 사고의 핵심은 ‘개인이 아닌,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의 태도와 자세’다. 건축사사무소 개설은 말 그대로 건축사로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순간부터는 사업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업역 특성상 도제 방식의 건축사사무소 운영도 존재하지만, 계약사회인 현대는 계약에 의한 행동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자기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비즈니스 사고에 입각해서 해야 한다. 이는 단지 금전적 대차대조표를 맞추는 것 이상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일찍이 경영학을 창조한 피터 드러커는 경영 윤리와 철학을 강조했다. 데일 카네기는 기업 내·외의 인간관계론을 설파했다. 경영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운영이다. 철학적 바탕 아래에서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차대조표를 위해서 마케팅도 알아야 하고, 경쟁에 관해 이해해야 한다. 필립 코틀러가 마케팅에 평생을 집중하고, 마이클 포터가 경쟁에 대한 이론을 집대성한 것도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고민이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순간 건축사는 비즈니스 기업인의 태도와 윤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담론이 건축사 또는 예비 건축사들(건축대학생, 건축사보)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


02 Should business be ethical?

 

목표와 수단의 차이
경영학부 학생이나 MBA 과정 수강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가끔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질문을 해본 경험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삶의 목표가 대부분 물질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목표는 노동 없이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수 십 억 혹은 수 백 억 정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페라리 같은 고가의 자동차도 가끔씩 등장한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려운 경영학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런 목표를 가진 이유에 대해 너무나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이런 목표를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목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큰 목표로 꼽은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이다. 돈을 집에 쌓아놓고 있다고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돈은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때 그 가치를 발휘한다. 즉, 돈을 벌었다고 해도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면, 정작 돈을 벌고 난 후에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페라리 역시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자신이 잘 나간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거나, 빠른 속도를 체험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수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페라리를 원한 학생에게 속도를 즐기는지 물어봤더니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페라리는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우위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은 목적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이런 목적을 가지면 불행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한국 최고 부자였던 고 이건희 삼성 회장도 전 세계 부자 순위로는 70∼80위 정도에 그쳤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기는 힘들다.
수단을 중시하는 방식의 사고는 경영학에도 팽배해있다. 경영학 원론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 혹은 ‘주주이익 극대화’라고 아직도 가르치고 있다. 옛날 사고방식인데 수단과 목적이란 관점에서 보면 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익이란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 싶은 그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불행해질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사라지는 것”
돈 같은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 싶은 목적을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면 인생도 달라지고 기업도 달라진다. 대체로 목적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타인, 혹은 사회에 대한 기여와 연결된다. 당뇨병 치료제를 만드는 기업인 노보 노르디스크는 당뇨병을 세상에서 없앤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목표는 노보 노르디스크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킨다. 당뇨병이 없어지면 회사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망하게 된다. 이 회사 CEO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와의 인터뷰에서 “당뇨병이 없어져 회사가 망하면 우린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면 되죠”라고 말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아낌없이 조직도 희생할 수 있다는 자세였다. 이런 생각을 가진 회사의 재무적 성과는 어떨까.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노력해온 노보 노르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 관련한 혁신을 주도했다. 결국 이 회사 CEO는 HBR이 재임 기간의 재무적 성과를 위주로 평가한 글로벌 100대 CEO 랭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윤리가 경영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노보 노르디스크의 사례는 과연 일반화가 가능할까. 폭력과 비행으로 얼룩진 경영 관행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주주이익을 장기적으로 창출한 동인도회사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계에서 윤리가 기업 성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오랜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다. 윤리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어서 기업 성과와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관시켜서도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물론 선한 기업이 더 큰 성과를 낸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도 많다. 기업이 성과를 잘 내기 때문에 잉여 자원이 생겼고, 덕분에 기부활동을 열심히 하는 등 착한 기업이 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윤리는 성과 창출의 ‘원인’이 아닌 ‘결과’로 봐야 한다.


환경 변화와 윤리의 중요성
여러 견해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경영환경이 변화하면서 윤리의 중요성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비윤리적인 기업도 동인도회사처럼 높은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영 환경에서는 윤리 없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이윤 창출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군부 쿠데타로 집권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이 불가능한 것처럼, 비윤리적 기업이 지속 성장하는 건 거의 기적의 확률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네트워크다. 세상의 사람과 사물이 모두 연결된 상황에서 비윤리적 관행이나 행동은 언젠가 드러난다. 기업 조직의 가장 깊숙한 비밀 영역인 오너의 행동이 지나치게 비윤리적일 경우, 블라인드 같은 앱을 통해 전 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들도 금방 알 수 있는 시대다. 촘촘히 연결된 시대에 윤리의식이 부족한 조직은 폭탄을 안고 생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정적 영향을 막기 위해서만 윤리가 필요한 건 아니다. 윤리의식은 가장 큰 혁신의 원천이다. BTS를 만든 방시혁 대표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세상에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고객인 10∼20대 청춘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윤리적 목적을 가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BTS는 목적 자체가 달랐다. 세상에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 아이돌은 많지만, BTS는 청춘들에게 진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 다른 아이돌 그룹은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는 30∼40대의 유명 작사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었지만, BTS는 청춘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기에 BTS 멤버들에게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도록 했다. 실제 10대∼20대로 구성된 BTS 멤버가 청춘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BTS 멤버들이 청춘을 대변하는 가사를 쓴 것은 아니었다. 가식적이거나 남들 앞에서 자신을 쿨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가 뚜렷하게 보이는 가사들이 많았다. 방시혁 대표는 “진심을 담지 않은 가사들은 모두 ‘빠꾸’ 시켰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춘들이 진짜로 경험하고 있는 고통과 불안, 불만 등을 담은 가사가 나왔다. 그리고 이런 가사는 전 세계 청춘들에게 위로와 공감이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BTS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리액션 영상에 오열하는 전 세계 청춘들이 많이 목격되는 것은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의식에서 나온 전략 덕분이다. 윤리는 가장 큰 혁신의 원천이다.
환경과 조화로운 건축
건축계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건축사 승효상 대표는 필자가 제작에 참여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빈자의 미학’이라는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사유재산이어도 내 집이 이웃집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절제해야 하고 주변과의 조화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축주가 자기 돈으로 집을 짓더라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요구를 할 때 건축사가 과감하게 반대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건축주가 건축사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해당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사례를 통해 그의 철학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실제 한 건축주는 풍수지리적 이유를 들며 길 가까이에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요구를 들어주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특히 옆집에 위압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승효상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건축주는 내 땅에 내 돈으로 집을 짓는데 왜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느냐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건축주는 몇 년 후 더 큰 프로젝트를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건축주는 자꾸 승효상 대표의 주장을 떠올렸고 결국 그의 생각이 더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앞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선도한다. 앞선 생각의 가장 큰 조건은 윤리다. 윤리성이 부재하면 화려한 구호나 수사,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된 미래 전략도 결국 진실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된다.

 

 

 

글. 김남국 Kim, Namkuk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김남국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경영 전문지인 DBR(동아비즈니스리뷰)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글 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지금 당장 경영전략 공부하라>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namku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