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7. 09:1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erm@Architecture 07
Brick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벽돌은 특정한 건축계획과 무관하게 범용의 재료로 생산된 최초의 건축 재료일 것이다. 물론 특별한 계획과 특별한 요소에 사용할 목적으로 주문 생산되는 벽돌도 있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벽돌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될지 정해지지 않은 채로 대량 생산된다. 어느 정도 잠재적 수요가 확보되어야 생산이 가능하고, 잠재적 수요는 도시에서 발생한다. 그러니 예부터 벽돌 공장은 도시 주변에 위치했었다.
어린 시설 벽돌건축을 처음 접한 동화책이 있었다. 바로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다. 그때는 몰랐지만, 건축을 전공하고 우리의 전통건축이 대부분 나무와 흙 그리고 지푸라기를 사용한 것을 보면서 이 동화책이 불편해졌다. 아기돼지 삼형제가 각자의 집을 짓는 동화 속 배경은 비도시지역이다. 벽돌로 집을 지었던 셋째는 멀리 떨어진 도시지역에서 벽돌을 구입하고 운반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산업화와 글로벌 경제 기준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탄소 배출량과 친환경성을 중요시하는 21세기의 기준에서는 첫째와 둘째의 건축재료 선택이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벽돌이 나쁜 재료는 아니다. 건축 밀도가 높은 도시지역에서는 벽돌만 한 재료가 없었다. 유럽의 여러 도시와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는 오랜 기간 벽돌이 유용한 건축 재료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령왕릉이나 전탑에서도 볼 수 있지만, 수원화성 축조에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세기 후반에 들어 집옥재 같은 궁이나 주요 관공서 건축물에 적용되면서 민간 건축에서도 벽돌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벽돌이 건축에 많이 사용되지 않았었고, 널리 사용하게 된 것도 오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벽돌에 관한 용어는 유난히 부족하고, 적절하지 않은 것이 많다.
쌓기 방법에 대한 용어부터 살펴보자. 영식, 불식, 미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쌓기 방식은 벽돌을 이용한 벽체가 힘을 받는 내력벽 구조일 때 쌓기 방식이다. 지금은 구조 벽 역할을 하지 않는 치장 쌓기로 마감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겉모습이 같다고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할까? 그렇지만 모두가 치장 쌓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겉모습에 따라 ‘OO 식 쌓기’라고 칭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다. 문제는 불식 쌓기 또는 프랑스식 쌓기라는 용어의 적합성이다. 우리가 불식 쌓기 또는 프랑스식 쌓기라고 부르는 이 용어의 영문표기는 flemish bond다. flemish는 프랑스가 아니고, 영국과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플레미쉬 flemish 지역을 지칭한다. 지금의 벨기에 북부와 네덜란드 남부지역에 해당한다. 예부터 지대가 낮아 ‘홍수가 잦은 땅’이란 의미인 Flanders라고 불렸다. Flanders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등장하는 ‘플랜더스의 개’ 이야기의 바로 그 플랜더스(Flanders)다. 어떤 과정으로 플랜더스 지역의 flemish bond가 프랑스식 쌓기라고 우리에게 소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나 발해의 건축양식을 중국식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플레미쉬 쌓기를 프랑스식 쌓기라고 잘못 지칭하는 것은 바로 잡히길 바란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모르타르가 있다. 시멘트, 모래, 물을 배합한 것을 mortar라고 하는데, 우리는 몰탈, 모르터, 모르타르 등으로 부르고 표기했었다. 교육부에서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것은 그대로 한글 표기하는데, mortar는 이 원칙에 따라 ‘모르타르’라고 부르고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벽돌을 쌓을 때 사용되는 모르타르는 두 종류가 있다. 아래 벽돌과 윗 벽돌을 붙여주는 쌓기 모르타르가 있고, 입면에서 벽돌과 벽돌 사이를 채워주는 줄눈 모르타르가 있다. 쌓기 모르타르는 벽돌과 벽돌을 견고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줄눈 모르타르는 벽돌과 벽돌 사이로 빗물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과 시각적으로 외관을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쌓기 모르타르를 다룰 때는 대부분의 조적공들이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는데, 줄눈 모르타르를 다룰 때는 조적공마다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다.
영어권에서는 줄눈을 joint라고 통칭하는데, 줄눈 모르타르를 시공하는 도구를 brick jointer라고 한다. 이 brick jointer의 단면 형상에 줄눈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brick jointer를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조적공이 직접 jointer를 제작해서 자신만의 줄눈 모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본어에서는 이 도구를 고데(こて)라고 부른다. 여성분들이 머리를 다듬을 때 사용하는 ‘고데기’와 같은 이름이다. 고데(こて)는 ‘누르다’는 의미로 일본에서는 다리미나 인두, 미용기구, 모르타르를 다루는 흙손을 모두 고데(こて)라고 칭한다. 우리의 건축용어로는 ‘줄눈흙손’ 정도가 가능하겠지만, 이 도구를 칭하는 명칭이 따로 없다. 철물점에서 “고데 주세요”라고 하면, 줄눈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brick jointer 즉 줄눈흙손을 챙겨준다.
우리 건축용어에 마땅히 brick jointer나 줄눈흙손을 지칭하는 명칭이 없다 보니, 다양한 줄눈의 디테일도 없는 것 같다. 방대한 건축용어를 일러스트와 함께 집대성한 Francis D.K. Ching의 책에서는 7종류의 줄눈을 소개한다. 국내에서도 장기인 선생의 ‘한국 건축 대계-석조’에서 무려 15가지의 줄눈을 소개하고 있다. 1900년대를 전후하여 숙련도가 높은 중국의 조적공들이 경복궁의 집옥재와 같이 중요한 건축물을 시공하러 대거 들어왔다고 한다. 이때 영향을 받은 국내 줄눈 기술은 196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남아있었지만, 그 후의 벽돌 쌓기에서는 가장 무난한 평줄 눈만 보인다. 용어의 부재가 기술의 부재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줄눈 표현을 위해 필요한 도구의 존재를 모르니 그 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메지(目地, めじ)’는 줄눈을 지칭하는 일본어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메지라는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 일본식 표기나 용어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우리 용어가 있지만, 굳이 영어식 표기를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널리 통용되는 외래어를 무조건 순우리말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하지만 쉽고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줄눈’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메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접하면 안타깝고 속상하다. ‘메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분들의 상당수는 일본식 용어라고만 막연히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의미나 표기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벽돌이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벽돌 쌓기 명칭으로 아름다운 이름을 전해준 것이 있다. 바로 ‘영롱 쌓기’다. ‘영롱(玲瓏)’은 한자어로 옥구슬처럼 광채가 찬란한 모습이나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벽돌이나 기와를 띄엄띄엄 쌓아 장식으로 문양을 만든 담을 ‘영롱장’이라고 한다. 띄어있는 부분으로 햇볕이 들어오면 반짝이는 모습에서 영롱(玲瓏)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 이 용어는 구전이 아닌 기록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동장대의 모습과 사용한 재료 그리고 담을 쌓은 구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기와를 쌓아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장식 담을 ‘영롱장’이라고 표기했다. 현대건축에서 공극을 만들며 쌓는 벽돌 쌓기를 ‘영롱 쌓기’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나 반갑고 소중한 용어가 아닐 수 없다.
널리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눈에 띄는 용어가 하나 더 있다. ‘어금’은 본래 작은 조개들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인데, 어금니처럼 위아래가 잘 맞아 견고하게 맞물리는 것에도 사용된다. 쌓기 용어로는 ‘어금 쌓기’라는 표현을 장기인 선생의 ‘한국 건축 대계-석조’에서 볼 수 있었다. 통줄 눈은 수직 줄눈이 통으로 이어지는 줄눈을 칭하고 이와 구분되는 막힌 줄눈은 벽돌을 겹쳐 쌓아서 수직 줄눈이 위아래로 연속되지 않는 것을 칭한다. 이 중에서 수직 줄눈이 위-아래 벽돌의 중앙에 위치한 것을 ‘바른 쌓기’라고 하고, 양쪽의 간격을 다르게 쌓는 것을 ‘어금 쌓기’라고 했다. 지금의 우리들보다 막힌 줄눈의 종류를 세분하여 각각을 용어로 구분한 것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경복궁 옆 서촌에서 이 ‘어금 쌓기’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금 쌓기는 벽돌의 마구리 방향과 길이 차이로 인해 모서리 부분에서 단초가 만들어진다. 표준 크기의 벽돌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데, 최근 길이 방향이 길어진 형태의 벽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어금 쌓기가 만들어지기는 모습을 여러 현장에서 목격했다. 외래어를 비롯해서 잘못된 용어 사용이 많은 현실이기에 ‘어금 쌓기’처럼 사라져 가는 용어가 발굴되어 적절하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료와 구법 그리고 구축하는 도구가 다양해지면, 그만큼 건축적 표현도 다양해질 것이다. 재료의 명칭과 건축 용어가 적절하고 바르게 사용된다면 분명 우리 건축계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식 쌓기나 메지처럼 잘못 사용되어 널리 퍼진 용어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 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 (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 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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