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의 건축 코드 2021.8

2023. 2. 8. 09:10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Mise-en-Scène 
Architectural Code

 

미장센(Mise-en-Scène)은 영화나 연극 등에서 사용하는 배경에 대한 총체적 표현을 말한다. 원래 무대장치 일체를 말하는 것이었으나, 점차 확대되어 배우의 배치, 의상, 무대장치, 조명, 분위기 일체를 연출하고 계획하는 총체적 구성을 말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영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Putting on Stage(무대에 배치한다.).”
 
미장센을 잘 다루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의 몰입도를 강화하고 긴장감을 증폭시키는데 천재적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학적 측면이 다분히 강한 미장센은 배우들의 연기에 추가 설명하는 역할이나 복선이나 암시 같은 보조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제3의 배우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을 보는 내내 알프레드 히치콕이 떠오른 건 이런 미장센의 역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미장센을 적극 활용하는 감독이나 영화들은 무수히 많다. 영화사의 시초에 나오는 프리츠 랑의 영화들뿐만 아니라,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에서도 활용되었다. 영화의 발전과 더불어 미장센은 점차 확장성을 가지게 되는데, 화려한 라스베이거스 쇼의 무대장치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야기 구조의 한 축을 형성하기도 하고, 음악과 같이 화려한 1950~1960년대 뮤지컬 영화의 배경처럼 다뤄지기도 한다. 배우이자 무용가인 프레드 아스테어의 현란한 탭댄스도, 혼연일체로 구현된 배경 장면이 있었기에 몰입도가 컸던 것 같다. 상징과 기호의 대가인 피터 그리너웨이가 그런 미장센을 영화 전체에 활용한 감독이 아닐까 한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는 화려한 영상미와 더불어 은유와 상징으로 영화의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간다. 그가 감독한 작품으로, 고전화되어버린 오래전 영화 <건축가의 배(The Belly Of An Architect, Il Ventre dell'architetto, 1987)>,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 1982)>,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 1989)>, <필로우북(The Pillow Book, 1996)> 등이 있다. 그의 영화는 충분히 토론할 가치가 있고, 인문적 비평 대상이 될만한 자극을 준다.

영화 <깊고 푸른 밤> 포스터 ⓒ 동아수출공사
영화 <황진이>의 한 장면. 우리나라 영화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미장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런 상징과 은유를 건축교육에서도 매우 유용한 도구로 사용했다. 그의 영화구조에서 보이고 함축적으로 다뤄지는 이면의 이야기는, 설계수업에서 상업적 공간을 풀어나가는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상업공간들은 브랜드라는 개념이 있어서, 브랜드의 상징성을 디자인으로 전환해서 소비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런 개념을 훈련하는 간접 도구로 영화의 미장센 분석은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다.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하나의 장치에 숨겨진 의도와 상징을 활용해서 연출한다. 심지어 조명과 리드미컬한 화면 구성까지 영화 관객의 심리적 흐름을 이끌며 주도하고 있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가 교과서적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에는 이런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우리나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에서 영화의 미장센이 강조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1960년대 황금기 시절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 열악한 제작환경에서도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긴 한다. 다분히 리얼리즘 경향이 없지 않지만, 틈틈이 표현이 강조된 영화들도 있긴 하다. 최근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의 초연작이 대표적이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에 등장하는 배경은 다분히 미장센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우리나라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연출된 미장센을 분석할 만큼은 아니었다.

사실 이야기 중심의 영화, 특히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에서는 미장센보다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의 사실적 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장센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인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작품들을 보면 지극히 사실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은 일본 영화의 대가인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도 유사하다. 물론 미장센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징과 은유로 큰 역할을 하는 미학 중심의 영화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하다. 오즈 야스지로처럼 잔잔하게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보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우리나라 이창동의 영화들은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어 상대적으로 미장센은 약하다. 아! 이런 유의 영화감독으로 홍상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나라 영화의 이런 흐름은 1980년대 들어 조금씩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미장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1984)>이나 <황진이(1986)>를 언급할 수 있다. 이런 흐름에서 한국적 미장센을 전면에 등장시킨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데, 차갑고 미니멀한 배경으로 이야기의 끈적함을 다소 제거한 이재용 감독의 <정사(1998)>, 우리나라 도시 공간을 풍자와 유머로 다룬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2000)> 등이다. 더불어 박찬욱 감독이 영화에서 다루는 미장센은 이미 세계 영화사에 남을 만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미술감독이다. 미술감독들은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보강하고 강화시키는 미장센을 창조하고 이끌어내는 주역들로, 올드보이의 류성희 감독이 대표적이다.

최근 우리나라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역시 이런 미장센 연출에 합류했다. 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건축이 제대로 묘사되거나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축작품이 등장하는 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장소 섭외의 어려움이나 건축을 보는 안목의 모자람도 한몫했을 것이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주택의 모습. 스카이캐슬은 성공에 대한 욕구를 이미테이션화된 이탈리아 풍의 주택과 중첩시키는 등 이야기 구조와 공존하는 건축적 배경을 잘 보여준다. ⓒ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주택의 모습. 스카이캐슬은 성공에 대한 욕구를 이미테이션화된 이탈리아 풍의 주택과 중첩시키는 등 이야기 구조와 공존하는 건축적 배경을 잘 보여준다. ⓒ JTBC


이런 관점에서 최근 방송된 드라마는 깜짝 놀랄 만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드라마에서도 미장센이 전혀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단한 화제가 되었던   <스카이캐슬 (Sky-castle)>은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와 공존하는 건축적 배경을 보여주었다. 허영과 속물적 성공에 대한 욕구를 이미테이션화된 이탈리아 풍의 주택들과 중첩시킨 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놀이동산의 테마 건축 같은 이탈리아 모사품 주택들은 공예적 정교함이나 가치는 제거된 채, 상업적 판매 상품으로 주택이 만들어진 전형적 사례다. 이런 사례를 은유적으로 등장시킨 <스카이캐슬>은 드라마에 숨겨진 성공 욕망을 드러내는 보조장치였다. 물론 그것까지 연출에서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석하고 비평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무릎을 칠 만한 것이었다.
골목길을 잘 다룬 <경이로운 소문(2020)>이나 개발의 뒤안길을 우울하게 다룬 여러 드라마에서는 작은 공간에서 확장되어 도시로 이어지는 관찰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한발 나아간 드라마로 <마인(2021)>을 흥미롭게 보았다.

<마인>은 건축적 접근이 매우 강렬하고 명확했다. 더구나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게 건축의 구성과 장치를 이야기 도구로 활용한 점에서 매우 탁월했다. 무엇보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인 뮤지엄 산이 주인공의 집으로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미메시스에서도 촬영되었다. 국내외 건축적 가치가 있는 배경이 이토록 많이 나온 국내 영화나 드라마는 기억나질 않는다. 섭외도 탁월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 나온 건축의 완성도를 드라마 마니아들에게 선보인 점이 내심 반가웠다.

특이한 것은 안도 타다오나 알바로 시자의 간결한 건축적 표현들이 가상의 최상위 재벌들의 공간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전 같으면 클래식 장식이 뒤엉킨 유럽의 고전 건축 장식들이 난데없이 흩뿌려진 배경이었을 텐데, 이 드라마에서는 장식이 배제된 간결한 공간으로도 충분히 적합하게 최상류층을 설명했다.

건축과 영화의 접점을 언급하고 비평하는 입장에서 드라마 <마인>에 주목한 또 다른 이유는 전체 시리즈가 진행되는 내내 어색한 배경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뮤지엄 산이나 미메시스뿐만 아니라 블루 더 카페 같은 상업공간 등 여러 배경 장소의 공통점은 간결함이었다. 중간톤의 인테리어나 건축의 구성은 폭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형식보다 뭔가 조용하고 잔잔한 느낌으로 제격이었다.

이런 색감과 구성은 드라마가 절정으로 이르는 단계에서 시청자의 감정을 억제할 수 있었다. 드라마 전개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중심 코드가 작용한 듯 보였다. 마치 드레스 코드처럼 이야기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공간을 선택하고, 디자인의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질적이거나 어색함이 없었던 이유다. 때로는 전체 흐름에서 튕겨져 나갈 수 있는 건축도 정밀하게 조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꿈보다 해몽일지 모르지만, 이야기의 기승전결 곳곳에 수많은 복선과 이미지 암시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드라마 <마인> 효원 家 포스터. ⓒ tvN


감상의 대상에서 영화는 일종의 테스트 북 같은 역할로도 활용될 수 있다. 미장센의 구성과 심리적 관계를 분석해 보면 현실 세계에도 적용할 요소들이 충분하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한다면, 또 그런 건축을 기획하고 디자인한다면 지금부터 영화를 진지하고 섬세하게 관람하길 바란다.
Good Luck!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